전출처 : stella.K > [펌]태양의 화가 - 빈센트 반 고흐

태양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그의 일생은 가난 했다. 

하지만... 그가 죽은지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그는 신이 되어 돌아 왔다.

 

1853년 3월 30일,

 빈센트는 가난한 네덜란드 시골의 

엄격한  개신교 목사 테오도루스 반 고흐 Theodorus van Gogh (1822~85)와

외향적인 안나 코르넬리아 반 고흐-카르벤투스 Annaornelia van Gogh-Carventus (1819~1906)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고흐의 아버지
Theodorus van Gogh (1822~1885)
 
 
고흐의 어머니
Anna ornelia van Gogh-Carventus (1819~1906) 
 
1869년 7월 숙부의 권고를 받은 빈센트는 테르스테크가 새로 지점장을 맡은 헤이그의 
 구필 화랑에서 판화와 복제화를 파는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빈센트는 열성적이고 세심하며 유능한 직원이었고, 칭찬받을 만한 모범 청년이었다. 
헤이그 시절은 그의 삶에서 가장 밝은 시절이었다.
 
1872년부터 아우인 테오가 화랑에서 함께 일하게 되자 빈센트 는 몹시 행복했다.  
그해 8월 학교를 다니다가 일시 귀향한 테오에게 보낸 짧은 편지를 쓴 것이 
 그 후 그들 사이에서 평생을 두고 오간 편지의 시작이었다.
 

 
고흐의 유년시절
  
하지만.. 그는20살 때부터 인생의 갖은 좌절을 맛본다. 
하숙집딸 로젠니 로이어에게 구혼했다가 거절 당한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 
첫번째 좌절이었다. 
22살, 그는 기독교 실체에 미술품 거래를 혐오한다는 이유로 직장에세해고 당한다. 
25살이 된 고흐는 신학공부를 하다 그만두고 전도사로 벨기에의 보리나주로 간다. 
그는 지하갱도 300m에 일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고흐는 일주일에 몇명씩 죽어나가는 비참한 이곳에서 전도를 하기 보다는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도왔다.
 
보리나주의 탄광을 소재로 소설을 쓴 에밀 졸라는 소설 속에서 그를 젊은 예수라 묘사했다. 
고흐는 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나눠 주었다. 
하지만, 그의 전도사 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품위를 떨어들이다는 이유로 1년만에 전도사 직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26살,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데생기법 책과 물감을 부탁하다.
 
 
 
고흐의 동생 Theo 
 
구필화랑의 유능한 화상이었던 동생 테오는 고흐에게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고 매달 고흐에게 
돈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동생으로 부터 받는 돈은 평생동안 고흐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고흐는 죽는날까지 테오에게 668통의 편지를 보냈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 
 
전업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고흐는 헤이그, 그렌트 등지에서 거의 독학으로 수업하며  
그림들을 그렸다. 하지만, 정식 그림 수업을 받지 못한 그의 그림은 데생이나 색체 구연에서 
기초가 되어 있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고흐의 드로잉
 
『양배추와 감자가 있는 고요』
(1881년 12월, 이튼.판넬의 종이 Amsterdam, Van Gogh Museum )
 
 
아무도 그의 그림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여인의 사랑도 받지 못했다. 28살 때에는 이종 사촌인 케이에게 구혼 했지만 거절 당했고, 
아버지와 친척들에게 근친상간을 하는 놈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이사건으로 인해 안그래도 문제아 취급 받게 되던 그는 가족을 포함한 주위의 모든 
사람들로 부터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게 된다.
29살에 고흐는 헤이그에서 알콜중독자에 매독 환자였고 임신중이었던 매춘부 씨엔을 
만나게 된다.
 
고흐는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동거를 시작한다. 
이즘, 고흐와 고흐 가족간에는 건널수 없는 골이 생겨있음을 고흐가 쓴 편지에서 알 수 있다. 
 
" 부모님은 덩치만 크고, 털투성이의 
 지저분한 개를 집안에 두기를 싫어하는 것처럼, 
나를 집에 들이는걸 꺼려한다. 
그들이 계속 개를 집에 두는 이유는 그개가 좋아서가 아니라. 
억지로 참고 있을 뿐임을  개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개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개로 남아있을 것이고, 
 가난 할 것이고, 
화가가 될 이다. " 
- 1883년 12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씨엔 
 
씨엔과의 생활은 비참했다. 
테오가 보내주는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고흐는 방세를 내고, 땔감을 사고 물감도사야 했다. 
몇일이고 굶어야 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결국 고흐는 씨엔과 결별하고 부모의 집으로 돌아 온다.뇌넨 목사관,
 이곳에서 고흐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누에넨의 교회』
(1884년 10월, 누에넨 . 오일 캔버스.
Amsterdam,Van Gogh Museum,Netherlands)
 
 
뇌넨에서 머무는 2년동안 200여점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림의 대상은 뇌넨의 풍경 
그리고, 늘 애정을 가져왔던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에 초기 대표작 감자 먹는 사람들.. 
이시기 뇌넨에서 수십번 반복된 작업끝에 그려졌다.
 
고흐는 아름답고 이상화된 시골 풍경 보다는 거친 손마디를 가진 농촌사람들에 힘든 
일상을 영원히 남을 그림으로 포착하고 싶었던 것이다.
  
 『감자 먹는 사람』
(1885년 4월, 누에넨. 오일 캔버스.
Amsterdam,Van Gogh Museum,Netherlands)
  
 
그러나, 고흐는 고향에서나 타지에서나 한푼의 돈도 벌지 못하는 무능력자였고  
변변한 친구도 없이 마을 사람들로 부터 따돌림을 받아야했다. 
그에게 남은 것을 외로움과 그림 뿐이었다. 
이후 5년 동안 벨기에의 안톤 그리고 파리를 거치면서 
 가난과 그의 그림수업은 계속됐다.
 
 
『A Pair of Shoes』
(오일 캔버스, Vincent van Gogh , 1885) 

1885년 파리에서 그의 그림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것은 바로 
인상파 화가들이었다. 화상으로 성공한 동생 테오를 통해 고갱, 모네, 로트렉,피사, 드가등 
인상파 화가들을 만난것이다. 고흐는 인상파 그림에서 충격을 받았다. 
 
 
『프롬나드』모네. 
 
그들의 그림에서는 빛과 공기가 만져졌다. 무엇보다도 인상파 화가들은 고전 회화 기법을 깨고 
주관적인 시선으로 사물을 그린 최초의 화가들이었다. 
인상파와의 만남을 계기로 고흐의 그림은 획기적으로 바뀐다. 
어두웠던 그림은 점덤 밝아 지기 시작한다.
 
 
『A Pair of Shoes』
Vincent van Gogh, 오일켄버스 , 1885 
 
오랬동안 고집하던 고흐 스타일이 자리를 잡아 갔다. 오랜 반복과 시행 착오 끝에  
고흐는 그만의 색깔을 찾은 것이다. 점점 빛나기 시작한 그의 그림들
그리고, 폭발할 듯한 광기는 프랑스 작은 마을 아를에서 그 절정을 맞는다.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1887년 여름, 파리. 오일 캔버스.
 Detroit Detroit Institute of Arts United States)
 
 
 
 
『아를의 도개교』
1888년 3월, 아를. 오일 캔버스.
Otterlo Kroller-Muller Museum Netherlands

 
 
『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 9월, 아를. 오일 캔버스.
Otterlo Kroller-Muller Museum Netherlands
 
 
 
『노란집』
1988년 아를, 오일 켄버스
 
고흐는 아를에서 2년간 머물렀다.  
서른 셋, 여전히 가난하고 고독한 화가였던 고흐는 자신의 방을 바뜰리에로 만들며 
화가 공동체를 꿈꾼다. 그 작업에 일환으로 그는 고갱을 그의 집으로 초대했다.
 
 
『고흐의 방』
1888년 10월, 아를. 오일 캔버스.
Amsterdam, Van Gogh Museum Netherlands
 
 
 
 고갱의 초상화
1893년 고갱 작. 오일 켄버스
 
 
그러나, 공동 작업 2개월이 지난 어느겨울 고갱과 심하게 타툰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른다.
 
 
『귀를 자른 자화상』
1889년 1월, 아를. 오일 캔버스.
ALondon Courtauld Institute Galleries United Kingdom
 
 
병원에 입원을 하게된 고흐는 이듬해 1월 노란집으로 돌아 왔으나 
그에겐 환각 증세가 남아 있었다.  
고흐를 불안하게 여기던 주민들은  그를 경찰에 고발했다.  
고흐는 3월 말까지 아를 요양원에 감금 됐다. 그러나, 고흐는 이시기에도 
끝임없는 그림에 열정을 보였다.
 
 
『아를 요양원의 정원』
1889년 4월, 아를. 오일 캔버스.
Winterthur Collection Oskar Reinhart Switzerland
 
 
" 이제 참을수 없는 환각도 사라졌고, 
악몽을 꾸는 일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나를 바로 정신병원에 가둬 버리던지, 
아니면, 온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수 있게 내버려 다오.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때 부터 약속해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것이다.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보네겟지,  
돈은 꼭 갚겠다. 아니면 
내 영혼을 주겠다."
 
-1889년 1월 ,귀를 자르고 한달뒤 쓴 편지
 
고흐는 아를에 있던 2년동안 간질 발작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무려 200점의 그림을 그렸다.
  
 
『열 두송이 해바라기』
1889년 1월, 아를. 오일 캔버스.
Philadelphia Philadelphia Museum of Art United States
 
 
 
『우편 배달부 조셉 룰랭의 초상』
1889년 4월, 아를.오일 캔버스.
 
 
그는 마지막 정점을 향해 타오르고 있었다. 
1890년, 프로망스 지방의 쌩래미 요양원을 거쳐 마지막 귀착지 오베르 쉬아지에 정착했다. 
그가 오베르로 간것을 정신과 의사 이자 화가인 가셰박사로 부터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의 우울증과 간질은 점점 심해져 가고 있었다.
고흐가 가셰 박사의 집에 도착한 며칠 뒤  
평론가 알베르로 부터 생애 처음으로 그에 그림에 대한  찬사를 받았다.
 
 
『Daubigny's Garden』
1890년 7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Collection R. Staechelin
-평론에 실렸던 그림-
  
그리고, 이 평론이 실리기 6개월전 그는 그림을 그린후 처음으로 
 유화 작품 한점을 400프랑에 팔았다.
 
 
『붉은 포도 나무』
1888년, 아를
-안 블로슈라는 여류화가 에게 팔린 그림-
 
 
고흐는 비로소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오베르에서 보낸 기간은 겨우 70일 뿐이었다.  
고흐는 70일 동안 77점의 유화와 30점의 드로잉을 남기고 이곳 오베르에서 가슴에 
권총을 쏴 자살했다.
 
 
『오베르의 교회』
1890년 6월, 오베르.오일 캔버스.
Paris Musee d'Orsay France
 
 
1890년 5월 27일, 당시 고흐의 나이는 서른 일곱이었다. 
오베르, 아를, 암스테르담 고흐는 자신이 거쳐 간곳에 선물을 주고 떠났다.  
하지만,  그는 죽은 이후에도 불행했고, 또 다른 불행을 만들었다.  
고흐는 자살을 했기 때문에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고 식당에서 장례식을 치뤘다. 
테오는 침울해 있었고, 장례식에 온 사람들에게 고흐의 추억이라며 고흐의 그림을 나눠 주었다. 
그후로 6개월뒤, 고흐에게 화가로의 꿈을 꾸게 했고, 친구이며 형제였던  
동생 테오는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인해 33살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다.  
고흐와 테오는 같은 곳에 나란히 뭍혀 있다.  
이렇게 고흐의 신화는 완성 됐다.
 이렇게 남긴 고흐의 유작들은 모두 동생 테오의 미망인 요한나 반 고흐에 소유가 된다.  
그녀는 남편 테오와 고흐사이에 오간 편지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들..- 
 
고흐가 죽은 뒤 14년뒤 둘사이에 오간 편지들을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그에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여러 작가들에 의해 계속 소계된다. 
20세기에 이르러 고흐의 작품은 가격과 양 면에서 최고의 가치를 인정 받기 시작한다.  
 
 
『Irises』
1889년 5월, 아를
 -1987년 11월 12일 소더비 경매에서
 경매가격 3억 2천만 프랑 (786억원)에 팔렸던 그림-
 
 
 

『의사 가셰의 초상』
1890년 6월, 오베르. 오일 캔버스.
Private collection
-1990년 일본인 사업가 료에이 사이토에게 984억원에 팔렸던 그림-
 

빈센트 반 고흐..  
그는 횡하지만 번득이는 눈을 가지고 신이 되어 이렇게 다시 살아서 왔다.
 

『자화상』
1889년 9월, 쌩레미.오일 캔버스.
Paris Musee d'Orsay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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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반 고흐를 위한곡 -
                                               Don Mclean - Vincent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Shadows on the hills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Refrain}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Starry, starry night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Colors changing hue
Morning fields of amber grain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Are soothed beneath the artist's loving hand

{Refrain}

For they could not love you
But still, your love was true
And when no hope was left inside
On that starry, starry night
You took your life as lovers often do
But I could've told you, Vincent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Starry, Starry night
Portraits hung in empty halls
Frameless heads on nameless walls
With eyes that watch the world and can't forget

Like the strangers that you've met
The ragged men in ragged clothes
The silver thorn, a bloody rose
Lie crushed and broken on the virgin snow

Now I think I know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Perhaps they never will


별이 많은 어느 날 밤, 
팔레트를 파란색과 회색으로 칠해봐요. 
그리고 내 영혼의 어두운 면조차 볼 수 있는 그런 눈으로 
이 여름날을 잘 살펴보세요. 
 
눈처럼 하얀 린넨의 세상 위에다가 
언덕에 생긴 그림자들이나 
나무들, 또는 수선화를 그려보고 
겨울의 차가움이나 그 바람조차 유채색으로 그려봐요. 
 
나 이제서야 
당신이 내게 뭘 말하려 했는지 이해할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신이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고통받아왔는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두요. 
사람들은 당신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안았죠. 
어떻게 듣는지도 몰랐을거에요. 
하지만, 아마도, 이젠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일지도 모르겠네요. 
 
별이 총총하게 박힌 어느 밤, 
빈센트의 푸른 눈속에선 
밝고 화려하게 반짝이는 선명한 색깔의 꽃들과 
보라빛 안개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구름들이 비춰지죠. 
 
황갈색의 농작물로 가득찬 아침의 들판은 
그 색을 바꿔가고, 
고통으로 가득찬 상한 얼굴은 
화가의 그 부드러운 손에 의해 다시 곱게 변해가죠. 
 
나 이제서야 
당신이 내게 뭘 말하려 했는지 이해할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신이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고통받아왔는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두요. 
사람들은 당신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안았죠. 
어떻게 듣는지도 몰랐을거에요. 
하지만, 아마도, 이젠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일지도 모르겠네요.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할 수는 없었지만, 
당신의 사랑은 진실한 것이었죠. 
그리고 그 어떤 희망도 남아있지 않았던 
별이 많았던 그 밤, 
당신은 연인들이 종종 그렇게 하듯, 당신의 생명도 앗아가버렸죠. 
하지만요, 빈센트, 나 당신에게 해야 할 말이 있어요. 
이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운 당신을 그렇게 만들어버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요. 
 
별이 총총한 이 밤에, 
빈 벽에 초상화들이 걸려있네요. 
이름도 없는 벽에, 액자도 없이 걸려있네요.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런것들을 절대 잊지 않으면서 말이에요. 
 
당신이 만났던, 그 낯선 사람들, 
누더기 옷을 걸쳤던 초라한 남자, 
깨끗한 눈위에 던져서 부서졌던 
은빛 가시를 가진 피빛 장미, 이런 것들을 잊지 않으면서요. 
 
나 이제 
당신이 내게 하고자 했던 말이 뭐였는지 이해 할 것 같아요. 
당신이 온전하게 살기 위해 얼마나 고통받았었는지, 
그리고 또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었는지. 
당신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죠. 지금도 들으려 하지 않네요. 
아마.. 앞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자료 출처 : KBS 수요기획 『고흐, 돈을 만나다』 
                                           황혜옥의 반고흐 < http://my.dreamwiz.com/skyeun >
                                            nature의 반 고흐 < http://vangogh.ye.ro >
 
 

출처:한 스푼의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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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ousitic

1,청각의, 청신경의, 가청음의, 음파의

  (음악) 전자 장치를 쓰지 않은 악기, 그런 악기에 의한 (연주,연주자)

2,(건축 자재 등) 방음의, 음파로 작동(제어) 할 수 있는, 음향(학)상의

 

내 머리 속에 이상하게 미화되어 저정된 단어들이 있다.

어쿠스틱이란 단어도  그 중에 하나다.

뭔가 근사한 뜻이 숨어 있겠거니 하고 찾아 보았더니 이랬다.

 

acousitic guitar

  (전기 기타 아닌) 보통 기타.

 

 또 어떤 말들이 숨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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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3-04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렇지만, 님의 글은 간결하고 그 안에 뭔가가 숨어있는 듯해요.^^

瑚璉 2005-03-04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원래 기타 줄이 저렇게 많았던가요?

니르바나 2005-03-04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속의 뜻을 읽는 재주가 많으신 스텔라님만의 혜안이십니다.

니르바나 2005-03-04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정무진님, 제가 볼 적에 12絃 기타 같습니다.
저도 아직 저런 기타를 쳐 본 적은 없습니다.
아울러서 새로운 서재이름 가지시게 된 일을 축하드립니다.

瑚璉 2005-03-04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2005-03-04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5-03-05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제 이름이 님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니요..
그저 광영입니다.^^

니르바나 2005-03-05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저야 말로 영광입니다.
저도 모르게 천기누설했구만요. ㅎㅎ
 

 

"황영조 선수는 분명 나보다 스피드가 한발 빠른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나무랄 데 없는 금메달의 주인공입니다.

경기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성에 있어서도 나를 압도한 금메달감 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 마라톤 종목에서 황영조 선수에 이어 은메달에 머문 모리시타 선수는 기자회견에서

이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황영조 선수를 칭찬하는 모리시타의 말에 기자들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0킬로미터 지점의 급수 지역에 들어선 순간 나는 들었던 물컵을 그만 손에서 떨어뜨렸습니다.

나는 무척 당황했습니다만, 그때 옆에서 달리고 있던 황영조선수가 선뜻 자기가 마시다만 물컵을

건네주면서 '감바레(힘내시오)' 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최근에 경제를 담당하는 부총리가 오래 전 땅투기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대통령의 영부인도 여기에서 한발짝도 자유롭지 못한 모양이다.

왜 이 양반들이 산 부동산들은 몇년 지나면 그리 쉽게 개발이 되고,

정부 보상의 대상이 되는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번에 발표된 고위 공직자 재산변동 내역중에 국회의원중 66%가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보고하였다.

국민들은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을 쳐도 그들은 언제나 꽃놀이 패를 쥔 모양이다.

증권시장이 활황을 보도하지만 내부자들의 선전에 비하면, 소위 개미군단들은 별 재미 못보고

쪽박차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가정파탄에 인생마감 소식까지 주위에서 자주 들린다.

그리고 자식에게 미리 정답을 가르켜주고 시험치르게 한 교수를 생각하면서 왜 우리 사회에 이런 일들이

반복해서 벌어지는가 고민하면서 두 선수의 행동을  교훈으로 삼아 이 이야기의 끝을 삼고 싶다.

 

정정당당하게 경기를 치른 두 마라토너처럼 아름다운 승부를 해야 서로 상생하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 모두가 윈윈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서슴없이 두 영웅이라고 말하련다.

 

황영조와 모리시타  당신들은  참으로 멋진 영웅들 입니다.


ㅡ 이 글은 위의 책 중 '황영조와 모리시타' 내용을 일부 인용하여 작성하였습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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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3-0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추천!^^

2005-03-03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05-03-04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
니르바나님~ 건강하시죠?? 이제 봄이 와서 그런가 가슴이 설레네요~~행복한 봄 되세요~^^*

니르바나 2005-03-04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스텔라님

니르바나 2005-03-04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anks a lot, madam.

니르바나 2005-03-0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행복하시죠.
이 봄은 님을 위한 마당입니다.
빛나는 청춘은 펼쳐진 봄의 꽃자락에서 마음껏 누리라고 허여받은 귀중한 시간입니다. 님의 활기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껏 나누세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만이 세계관의 전변이 아니다.

니르바나가 hiphop의 세계에 입문한 것도 세상 뒤집어질 일이다.

 

이 음반의 주인공이 자칭인지 타칭인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쏠-레게-힙합의 대부란다.

 그 이름이 Bobby Kim

 

얼마전에 저작권과 관련해서 블로그에 올린 음악들 내리느라 부산을 떤 일의 단초도

mp3 파일의 사용에 따른 음반산업과 관련된 종사자들의 수입문제였다.

내가 전인권의 신보를 산 이후에 처음 가요에 관련된 씨디를 구입하면서 생각한 것도 이것이다.

 

과연 이 음반을 사서 들을 가치가 있는가?

 

이 정도로 들을 만한 노래들로 음반을 채워준다면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도 무방한 일이다.

어제 어떤 기사에서 이 음반에 있는 세번째 노래로 활동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들고 와서 음악을 듣고 있다.

아무래도 달랑 한 곡 들으려고 사기는 좀 아까운 것도 사실이다.

 

"파아란 바다 저 끝 어딘가 사랑을 찾아서 하얀 꼬릴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가사도 낭만적이고 같이 따라 읖조릴만 하지 않은가.

고래의 꿈은 우리 모두의 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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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2-25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비킴! 정말 좋아합니다.
미친듯 살고 싶다 들어보셨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중에 하난데... ^^

2005-02-25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5-02-27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다 들어보았습니다.
앞으로 '미친듯 살고 싶다'를 들으면 체셔님이 생각날 거예요.
이 노래를 좋아하시는 분이 있다고요.

니르바나 2005-02-27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마음을 비우는 일 하나 하셨으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좋은 공부하신 셈이구요.
 

오래 전  차인태 아나운서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장학퀴즈'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나 이제나 고등학생들은 입시의 중압감으로 말 뿐인 자율학습을 밤늦도록 하다보니

텔레비젼 앞에 오래 앉아서 시청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장학퀴즈가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해서 일요일 오전 시간에 방송되었는데

모교의 학생이 출연하기라도 하면 선생님으로부터 시청을 강요 받기까지 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유익했던 방송이라고 생각되는데, 맨 상품광고만 판치던 시절에

선경그룹이 기업광고를 해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메인 MC였던 차인태 아나운서 옆에서 문제를 읽어주던 여자 아나운서의 미모를 눈여겨 보던

엉뚱한 일까지 내 머릿속에서 재생이 된다.

 

어제와  오늘 아침 시간에 걸쳐 들은 모리스 앙드레의 트럼펫 협주곡 속에는

위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이 들어 있는데 이 음반을 듣다보니 옛생각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Trumpet

 

취주악대, 소위 밴드부의 구성으로 초보자는 불기 조차 힘든 악기지만 대중음악용 악기로만 여겼었다.

트럼펫 연주자로는 우선 TBC 와 KBS 라디오 관현악단장이셨던 김인배 선생이 생각나고,

힘껏 불 때면 양쪽 뺨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던 루이 암스트롱의 우스운 모습도  떠오른다.

대중음악의 악기로만 알던 트럼펫 음악을 모리스 앙드레는 클래식의 여러가지 주법을 발현시켜

다양한 레퍼토리를 발굴하여 피아노나 바이올린처럼 독주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음반을 들으면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맑아서 투명한 소리가 금관을 통해 나오면 세사의 혼탁이 저절로 가라앉는다.

비록 멜로디는 페이퍼로 올리지 못하지만 모리스 앙드레의 트럼펫 협주곡을

최근에 筆禍사건으로 고통받으신 로드무비님께 바칩니다.

 

이 시대의 만파식적이라 여기시어  시름을 놓으시고 음악을 들어주세요. 로드무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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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2-19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저 트럼펫 소리 좋아해요.
그런데 필화사건이라니 너무 웃겨요.
남의 책 교정보다가 일어난 일인데......
아무튼 니르바나님이 이렇게 따로 페이퍼를 올리시면서까지
저를 위로해 주시니 너무나 황송하네요.
이 음반을 들으면 막힌 가슴이 뻥 뚫린다고요?
세사의 혼탁이 가라앉는다고요?
꼭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니르바나님.^^
(장학퀴즈 저도 재밌게 보던 세대예요.
어쩌다 아는 문제가 나와 하나 맞추면 동생들 앞에서 되게 잘난척했었죠.
차인태 아나운서는 왜 활동을 안하는지 모르겠어요.)

2005-02-19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5-02-19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학퀴즈 즐겨봤는데, 그만한 퀴즈 프로그램도 드물죠. 차인태 아나운서 지금 현역으로 뛰기엔 너무 늙지 않았나요? 한창일때도 그 사람 대머리될 소지가 다분했었는데 진짜 되니까 tv에서 사라져준 건 아닌지...몇 년 전 만해도 라디오에서 간간히 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도 라디오 프로그램은 맞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파란여우 2005-02-19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랑질 하나-제가 고3때 4월쯤엔가 장학퀴즈에 출연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당연히 1등은 먹지 못했구요(그렇죠 뭐.실력이 안되니...)차점자 퀴즈에서 좋은 점수 얻어서 상품으로 선경 자전거하고 오디오 받았었어요...근데, 창피해서 혼났어요. 그 후유증으로 공부를 게을리해서 일류대학을 못갔다는 핑계를 지금까지 댑니다.흐흐흐^^.로드님! 좋으시겠어요. 이리 니르바나님이 격려를 해 주시니...집에 저 음악이 실린 음반이 있군요.에휴..그날의 식은땀 나는 악몽이....--;;;

니르바나 2005-02-22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아무나 장학퀴즈에 나가지 못하는 거 알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학교 망신 시킨다고 저같은 위인은 나가고 싶어도 못나갔구만요.
차점자, 이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요.
그때부터 부상받는 인생이셨군요.
그리고 또 한가지, 확실히 파란여우님 간은 튼튼하시군요.
저같으면 오금이 저려서 문제 풀다가 실례를 했을 것 같은데요...

니르바나 2005-02-22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저도 몇년 전까지는 들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통 못들은 것 같아요.
경기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니르바나 2005-02-22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로드무비님하고 저는 코드(비록 말많이 듣는 말이지만)가 통하는 것 같아요.
트럼펫음악을 좋아하신다니 앞으로 제가 들으면 로드무비님도 함께 들으시리라 생각하며 감상할께요.

파란여우 2005-02-22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속했던 대로 레이 찰스의 Georgia On My Mind  드리고 갑니다.^^


니르바나 2005-02-23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왜 플레이가 안되나요?
애쓴 보람도 없으시게요.

파란여우 2005-02-23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컴에선 지금도 아주 잘 됩니다. 오디오 업데이트는 잘 하셨나요?

2005-02-24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2-24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2-24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