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오랜만에 세로쓰기로 조판된 책 한 권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책의 첫 출판이 1971년이다보니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일어나는 종이먼지가 코를 자극해서
재채기와 콧물이 쌍으로 터져 나옵니다.
이를 꾹 참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세로쓰기 조판 433 페이지의 책을 읽는 것은
몸에 심히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읽은 책의 저자이신 혜당스님께 生에 일대 전환을 가져다 준 책이라
헌책방에서 검색하여 쉽게 구입했습니다.
생각있으신 분들은 이 기회에 일독하시기를 감히 권해봅니다.
다만 앞서 이야기한 책먼지 알러지가 심한 상태에서
과연 어떻게 읽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떠오른 생각은 이렇습니다.
' 책에 향을 피워 훈습하기"
오래 전에 출간된 책 제목으로 사용했던 불경 구절인 "향싼 종이에선 향내나고"가 떠올라
책을 한장씩 넘기며 알로마 향으로 코팅했습니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향수를 몇방울 뿌릴까도 생각했지만
청담스님의 인생관을 밝힌 책에는
아무래도 이게 더 나을까 싶어서요.
그 청담스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
하는 이 나는 살고 싶어할 줄 아는 생명이기 때문에
살고 싶어할 줄 모르는 허공이나 물질과는 판이한 것이다.
원래 <나>라는 이 생명은 질량도 차원도 지식, 사랑, 신앙도 아무런 조건도 없이
깨끗이 살아 있는 것이다.
또한 살고 싶어하는 것은 나의 절대권한인 것이다.
따라서 이 권한만은 절대 신성 불가침한 본능인 것이다.
그 누가 감히 침해할 수 있겠는가?
왜?
생명이 없는 곳에는 나도 너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진리도 하늘도 부처도 시비도 선악도 없으며,
성공도 실패도 아무 것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죽음과 어둠과 적막,
그것들만이 영원토록 저 사막에 뒹굴려져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생명은 과학, 철학, 종교 등,
일체 문화의 원천이며 또한 온 우주의 생명인 것이다.
최근에 불거진 우리 사회의 문제들도 "과연 생명인가"하는 거울에 비쳐볼 때에
어쩌면 쉽게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