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사람들은 삶이라는 것이 험하고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런 기본적인 인식이 사람들을 지탱해준 가장 중요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경험해야 하는 쓰라림이나 환멸에 대한 가장 큰 약이 바로 삶이란 어려운 것이고 이 세상에서의 장밋빛 기대란 대부분 가당치 않다는 단단한 마음가짐이었을 겁니다. 이런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누구나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해야 한다는 기대가 생긴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입니다. 행복이란 이제, 적어도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권리로 인정됩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에 대한 집착이, 그 참기 힘든 가벼운 추구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26~27)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진주가 상처의 표시인 것처럼 작가의 스타일도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상처의 결과라는 말을 한 적이 있지요. 그는 아름다운 것이 잔혹한 것에서 나오며, 아름다운 것 자체가 잔혹하다는 말도 했습니다. 작품이란 고통받는 영혼의 숨겨진 자서전이라고도 표현했어요. 문제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크고 작은 상처, 그 상처의 아픔이 아니라 그 아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있겠지요. (28)
"이 세상에서 자기가 인정하지 않는 한 열등감은 없다." – 엘리너 루스벨트 (40)
사람 사이의 사랑이란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순수한 사랑이란 것이 자기기만이 되기 쉽다는 것을, 그래서 짧은 순간 자신과 상대방을 속일 수 있지만 결국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차라리 스스로 더 이상 속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멈추는 것이, 짧았던 환상 속에 오래 머물러있는 것이 다행한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92)
고래는 자기 아픔만 생각하고 상처와 싸우려 하기 때문이랍니다. 사람들은 밧줄을 쥐고 고래가 지쳐 죽기만 기다리면 되었다고 합니다. 고래가 미련해 보입니까? 고래만이 아닙니다. 영리하다는 사람들도 자기 상처만 끌어안고 그 상처와의 싸움에 빠져 결국 인생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특히 지적이고 예민한 그리고 자기에게 집착이 강한 사람들이 그런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196)
소설가 게오르규는 작가를 잠수함 속의 토끼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토끼는 산소의 양에 대단히 민감하기 때문에 산소가 부족해지면 즉시 죽어버린대요. 승무원들이 산소 부족으로 죽기 대여섯 시간 전에 토끼가 죽어버려서, 그 대여섯 시간 동안 승무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지요.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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