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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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만 돌아보고 있어봐야 의미 없어요. 차만 해도, 계속 백미러만 보고 있으면 위험하잖아요. 사고가 난다고요. 진행 방향을 똑바로 보고 운전해야지. 지나온 길은 이따금 확인해보는 정도가 딱 좋아요." (40)

어머니가 불쑥 "아까 오카다 씨가 한 말, 좋았어"하고 한마디 했다.
"무슨 말?"
"기어를 드라이브에 넣으면 제멋대로 앞으로 간다는 말."
나는 어머니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왠지 마음이 편해지지 않아? 기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앞으로는 가게 되는 거야."
과연 그럴까, 하고 대답하면서도 나는 내 몸에 달려 있을, 보이지 않는 기어를 드라이브에 넣어본다.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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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습니다 - 연꽃 빌라 이야기 스토리 살롱 Story Salon 2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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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일을 하고 싶지 않으신지 알려주실 수 없을까요?"
"이미 평생 할 분량의 일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하기 싫은 일도 불합리한 일도 전부 다 참으면서요. 그만큼 월급이 많았기 때문에 참을 수 있는 한 참고, 돈을 모아서 그만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할 마음은 더 이상 없습니다." (97)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사실 몸은 훨씬 더 망가져있는 법이거든요. 아직 젊다는 느낌에 분명 이런 게 안 될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안 되는 게 현실이에요. 안 될 리가 없다고, 너무 그렇게만 생각하면 본인의 몸이 불쌍하니까, 그렇게 못 하는 자기 자신을 인정해 주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조금씩이라도 나아가고는 있잖아요." (145)

자신이 이런 생활을 선택한 것은 매일을 평온하게, 남에게 가능한 폐를 끼치지 않고, 납득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 좀 더 조용히 살고 싶었다. (207)

"조금은 너 자신을 칭찬해줘도 되지 않아? 뭘 했기 때문이라든가, 무슨 일을 해줘서 상대를 기쁘게 했다든가 하는 게 아니더라도, 오늘도 무사히 지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잖아."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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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가쿠타 미쓰요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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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일반 서점이려니 생각했는데 문을 열자 헌책방만의 독특한 냄새가 났다. 며칠 전 내린 비가 그대로 남아있는 듯한, 조용히 활자가 가라앉아 있는 것 같은 그 친숙한 냄새. 그래, 헌책방은 세계 어디나 같은 냄새가 난다. 그것이 거리에 펼쳐진 좌판이라고 해도. (17)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하늘이 훤해지고 있었다. 대단해! 고즈넉한 방에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대단해. 대단해. 대단해. 그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진짜 바보다. 그 말을 되풀이하면서 깨달았다. 이 책에는 수많은 말들이 넘치고 있는데 나는 대단하다는 한마디밖에는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30)

이 책에는 엄청난 낱말이 넘치고 있는데 그것은 모두 다른 사람의 말이었고, 내 자신의 말로 바꾸면 아주 유치한 한마디로밖에 안 되는 그 기분. 자신의 낱말로만, 내 자신의 말로만 뭔가를 얘기할 수 없을까. 치졸해도 되고 재미없어도 된다. 뭔가, 뭔가 없을까. 나만의 낱말을 찾기 위해 글을 쓰고 또 썼다. (131)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든 책들이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다. 남몰래 시간을 빨아들였다 토해 내며 누군가가 읽어줄 때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138)

지에코는 이 책을 중학교 3학년 때 읽었다. 다 읽고 나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했다. 하느님,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물세 살이 된 지금도, 이 책을 만난 나와 만나지 못한 나 사이에는 역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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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게스트하우스
가쿠타 미쓰요 지음, 맹보용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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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과 함께 나의 자취가 전부 사라져버려 익숙했던 그 장소로 돌아가더라도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대화는 알아들을 수 있지만 그 어떤 말도 나를 향해 있지 않다. 아아, 돌아왔다고 안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무데도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돌아가다, 가 아니라 가다, 의 연속이다. 가다, 계속해서 전진한다, 는 것은 확실히 매력적이지만 그것이 매력적인 이유는 돌아갈 곳이 있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9)

그것은 말레이시아의 외딴섬에서 보았던 반디가 한 면에 붙어있는 거목이었다. 굉장한 광경이었다. 반디 자체는 전혀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거목에 떼지어 모여 크리스마스의 전광장식처럼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고요하게 빛나서 빨려들어가듯 사라지다가 다시 빛난다. 무수한 작은 점은 각각 그것을 되풀이하고 있고 주변의 소리라고 하는 소리는 모조리 그 빛에 완전히 갇혀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대단해, 라고 생각했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말하자면 그뿐이었다. 대단해, 그 세 글자. 대단해, 대단해,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것은 만일 나라는 것이 투명한 병이라고 한다면 그 병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대단해라는 그 단어로 가득차 넘칠 것 같은, 요컨대 나라고 하는 병은 대단함의 순도 1백 퍼센트다, 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자신조차 기가 죽을 정도로 나를 흡족시켰다. (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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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법
이강룡 지음 / 유유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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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는 공부하는 번역자가 되자는 것이다. 의사소통의 양편을 두루 살펴야 하는 고된 임무를 성실히 완수하려면 꾸준히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 출발어의 맥락을 잘 파악하려면 배경지식을 꾸준히 쌓아야 하고, 도착어인 한국어의 맥락을 잘 파악하려면 독자의 처지나 조건에 맞게 한국어 표현을 섬세하게 발굴하고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12)

번역서를 읽다 오역을 발견하면 대단한 업적이라도 이룬 양 사방에 떠벌리기보다 번역자나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내자. 그러면 다음 쇄에 수정사항이 반영되며 다른 독자는 더 좋은 번역을 접한다. 아무도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으며 공동체 구성원에게 두루 유익하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품격을 높이는 동업자 정신은 늘 유익하다. 건전한 비판이 깃든 동업자 정신이 없으면 공동체는 성숙하지 않는다. (23)

아는 만큼 자기 이야기를 반듯하게 펼쳐 놓으면 공동체라는 더 넓은 맥락 안에서 조화로운 연관이 드러날 것이다. 특수 없는 보편은 없고 보편 없는 특수도 드물기 때문이다. 나를 우리라고 확장하는 일은 늦출수록 좋다. (49)

공부하는 번역자는 지식과 지혜가 계속 성장하고 깊어지므로 최상급 표현을 써서 개념을 판단하면 나중에 자기 글에 발목 잡힐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일은 저자가 아니라 독자가 할 때 훨씬 근사하다. 저자는 최고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서도 독자가 최고 수준이라고 여길 만한 근거를 보여 주고자 애써야 한다. 최상급 옆에는 느낌표란 놈이 늘 졸졸 따라붙는데, 느낌표를 쓰지 않고서 독자에게 감탄을 전달할 표현법이 없는지 궁리해보면 문장 연습에 도움이 많이 된다…. 느낌표를 문장에 찍으려 하지 말고 독자 가슴 속에 찍자. (52)

표현 방식에는 글쓴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잡초나 잡목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면 그건 그 사람이 쓰임새로만 식물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사회 지도층’이라는 표현이 좋지 않은 건 차별을 용인하기 때문이다. (78)

노련한 궁사들은 바람이 세게 불면 표적지에 조준을 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각자 터득한 대로 오조준을 한다. 엉뚱한 곳을 향해 쏘는 것 같지만 과녁에 명중시킨다. 번역자에게도 오조준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일부러 오역을 감수하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균형이 깨진 표현을 쓴다. 모두 의사소통을 잘하려는 한결 같은 목적 때문이다. (105)

어설픈 지식이 오만을 낳는다. 뭔가 좀 알 것 같고 자신감이 싹틀 무렵이 교양을 쌓는 이에게 무척 위험한 시기다. 이때 오만하게 설치면 필화에 휘말리게 된다. 기억과 추측에 의존하지 말고 기록에 의지하여 추론하라. (121)

문장의 격을 가지런히 맞추는 건 수사법의 거의 전부다. 격을 맞춘 문장은 단정하고 자연스러우며 일관성도 높다. 격 맞추기의 최종 단계는 아마도 글과 말과 행동의 일치일 것이다. 지행합일이라는 말은 글 쓰는 이에게 최종 목표와 같은 상태다. 이 책이 지향하는 바도 그와 같다.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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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6-30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구 중 마지막 칸, 특히 와닿네요.
가장 하기 좋고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는 중요한 덕목이지요.
좋은 책 같습니다.

밤바람 2015-07-01 23:25   좋아요 0 | URL
네! 읽는 데 들인 노력에 비해 정말 많이 배운 책이었어요.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지행합일을 실천하려는 저자의 노력도 돋보였구요.

푸르미원주 2015-07-0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무리해놓으신 내용을 읽어보니, 배울 점이 많네요. 글 쓰는 이로서의 자만을 경계하는 것, 언행일치, 확인 후 글쓰기 등이요. 기억에 의한 추정이 갖는 위험을 잘 알려주는 것 같아요. ^ ^

밤바람 2015-07-05 15:29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이밖에도 새롭게 배운 내용은 훨씬 더 많은데 여기에는 반도 못 옮겼어요. 얇지만 정말 알찬 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