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가쿠타 미쓰요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그저 일반 서점이려니 생각했는데 문을 열자 헌책방만의 독특한 냄새가 났다. 며칠 전 내린 비가 그대로 남아있는 듯한, 조용히 활자가 가라앉아 있는 것 같은 그 친숙한 냄새. 그래, 헌책방은 세계 어디나 같은 냄새가 난다. 그것이 거리에 펼쳐진 좌판이라고 해도. (17)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하늘이 훤해지고 있었다. 대단해! 고즈넉한 방에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대단해. 대단해. 대단해. 그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진짜 바보다. 그 말을 되풀이하면서 깨달았다. 이 책에는 수많은 말들이 넘치고 있는데 나는 대단하다는 한마디밖에는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30)

이 책에는 엄청난 낱말이 넘치고 있는데 그것은 모두 다른 사람의 말이었고, 내 자신의 말로 바꾸면 아주 유치한 한마디로밖에 안 되는 그 기분. 자신의 낱말로만, 내 자신의 말로만 뭔가를 얘기할 수 없을까. 치졸해도 되고 재미없어도 된다. 뭔가, 뭔가 없을까. 나만의 낱말을 찾기 위해 글을 쓰고 또 썼다. (131)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든 책들이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다. 남몰래 시간을 빨아들였다 토해 내며 누군가가 읽어줄 때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138)

지에코는 이 책을 중학교 3학년 때 읽었다. 다 읽고 나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했다. 하느님,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물세 살이 된 지금도, 이 책을 만난 나와 만나지 못한 나 사이에는 역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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