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너는 자유다 -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난 낯선 땅에서 나를 다시 채우고 돌아오다, 개정판
손미나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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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투우경기가 인간의 ‘결혼’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그 설에 의하면 소는 남자를 의미한다. 지금은 투우경기에 쓰일 소를 따로 사육하지만 원래는 야생에서 살던 소를 잡아다 경기를 벌였기 때문이다. 남성성을 뽐내며 마음껏 여자들을 범하고 원하는 대로 세상을 돌아다니며 거침없이 살던 야생의 투우는 신랑, 화려한 복장으로 물레따 속에 에스빠다를 숨기고 투우를 유혹해 결국 무릎을 꿇게 만드는 투우사는 신부, 그 어느 곳으로도 빠져 나갈 수 없이 그들을 가두고 있는 투우장은 결혼, 그리고 숨막히도록 긴장감 넘치는 투우경기는 신혼 첫날밤이라는 것이다.
결국은 투우사의 칼을 맞고 무릎을 꿇는 투우처럼 한 여자에게 정복당하고 마는 것이 남자의 운명이라나. 어리석게도 투우사의 화려한 차림과 물레따의 움직임에 속는 것도 남자들의 속성과 닮았다는 주장이다. 투우사들이 여자처럼 머리를 기르고 현란한 색과 장식의 옷을 입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기는 하지만 흥미로운 해석이다. (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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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IN 레드 문 클럽 Red Moon Club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살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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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란 연애의 본질이기도 하다고 다마키는 생각했다. 연애는 시간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은밀하게 변질되어 간다. 부패해 간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이다. 가스가 차서 한꺼번에 폭발한다. 폭발한 뒤에는 두 사람 다 제각각 내동댕이쳐져 주위를 둘러보면 눈앞에 낯설고 거친 들판이 펼쳐진다. (76)

작가란 무서울 정도로 우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믿는 존재다. (217)

소설이란 사람들의 무의식을 그러모아 이야기라는 시간축과 리얼리티를 부여해 무의식을 다시 재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74)

"…할망구이니 수수하게 늙어 가면 안심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내가 남을 안심시키기 위해 살고 있는 건 아니지. 주변 사람들이 이 사람은 틀림없이 이러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의표를 찌르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오. 그래서 빨간 옷은 여든이 넘어서 마련한 내 갑옷인 셈이죠." (312)

"진실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소설에 쓰는 바로 그 시점에 그건 픽션이 됩니다. 그걸 알고 있는 작가는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매력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만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로 착각할 픽션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작품은 모두 픽션입니다."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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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김희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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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들과 섞이는 경험은 마치 여러 개의 거울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수치스러워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고, 스스로를 꽤 좋아할 만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던 순간도 겪었다. (45)

‘가벼운 웃음으로 근심이 깨어지는’ 반복적 경험을 통해 나도 마음을 열고 길이 선물하는 우연한 만남을 기꺼이 받아안았다. 어디 온전히 ‘나뿐인 나’가 가능하기나 할까. 개별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나’는 사실은 수많은 관계의 교차점이자 흔적들의 중첩일 것이다. (46)

기쁨과 즐거움뿐 아니라 슬픔과 우울함, 비열함이 초대하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오더라도 그 모든 감정을 피하지 말고 "문밖까지 나가 웃으며 맞이하라"고.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선물에 아로새겨진 무늬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마따나 정말 큰 문제는 그 모든 감정에 문을 닫아걸고 자기 안에 갇혀 제대로 ‘살아보지 않는 것’이다. (75)

뇌 촬영을 통한 연구 결과 내가 다른 이들로부터 배제당하는 경험은 날카로운 흉기에 찔릴 때 느끼는 물리적 통증과 똑같답니다. – 정혜신 블로그 ‘그림에세이’ (77)

내가 갖고 싶은 용기는 매사를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는 강박을 버리고 삶에서 우연의 여지를 열어두는 태도였다. 예기치 않은 일에 더 많은 여지를 허용하면서 살아가기, 실수를 저지르거나 일이 잘못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래도 어디까지 한번 가보겠다고 하는 마음. 내가 갖고 싶은 용기는 그런 거였다. (251)

"낯선 이의 친절로 살아간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중에서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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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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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의욕일 터, 그런 것이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자신의 등을 밀어주듯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63)

재즈가 초밥집 배경음악이 되다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재즈라는 것은 어쨌거나, 자, 재즈를 듣자, 의식하고 진지하게 듣는 음악이었달까, 세상의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수자를 위한 예민한 음악이었다. (88)

도쿄에서도 곧잘 가지만, 재즈클럽은 역시 뭐니 뭐니 해도 본고장 미국의 재즈클럽이 제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클럽은 많지만, 가장 멋진 곳은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 칠십 년도 넘는 세월 동안 한자리를 지킨 가게이다보니 단출하면서도 상당히 낡았다. 비도 조금 샌다. 메뉴도 다양하지 않고 결코 친절하지도 않지만, 재즈를 듣는 환경으로는 불평할 여지가 없다. 아주 이상한 형태의 공간이었는데, 음향이 훌륭해서 어느 자리에 앉아도 멋진 소리로 재즈를 즐길 수 있다. 이거야말로 재즈, 라는 킥이 있는 음이다. (91)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젊을 때 세파에 시달리며 제대로 상처를 입어두면 나이를 먹은 뒤 그만큼 편해지는 것 같다. 만약 기분 나쁜 일이 있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푹 자면 된다. 뭐니 뭐니 해도 그게 제일이다. 힘내세요. (147)

인생에는 분명 그렇게 평소와는 다른 근육을 열심히 사용해볼 시기가 필요하다. 설령 당시는 노력의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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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인
쓰카사키 시로 지음, 고재운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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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신체에는 대상작용이 있다. 하나의 기관이 기능을 잃으면 다른 기관이 최선을 다해 그 구멍을 메우려 일한다. 어린 시절 왼손이 다쳤을 때도 그랬다. 곧 오른손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젓가락을 쥐고 밥을 먹을 수도 있게 되었다. (48)

뭔가 일이 일어났을 경우에 소인은 그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 유인은 그렇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말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감기에 걸렸다고 하면, 소인은 그 사람이 원래 허약한 체질이었다, 유인이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 (131)

사람의 자기 동일성은 기억에 있다. 물론 현실에는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다. 그래서 본인 기억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본질적으로는 이 세상에 나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가, 사람은 그 기억에 의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인식한다. 기억을 잃어버리면 자신이 누군지 모르게 된다. 그런 기억이 다른 기억으로 몰래 바뀌어버리면, 그런 일이 혹시 있다고 한다면, 그 순간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된다.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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