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하우스 플라워 - 온실의 꽃과 아홉 가지 화초의 비밀
마고 버윈 지음, 이정아 옮김 / 살림 / 2010년 6월
절판


...아홉가지 화초를 갖고 있으면 누구라도 완벽해진다네. 그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욕망하는 것들을 모두 갖게 될 테니, 결국 전설대로 되는 거겠지. 하지만 반드시 아홉가지 화초를 전부 갖고 있어야 해. 한 가지 화초라도 제 주인을 만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는 있으나 아홉가지 화초가 결합해 만들어내는 마법은 아무도 꺾을 수 없다네. 그걸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말이지.-99쪽

그대가 쓰레기차 때문에 잠을 깨고서도 저 정적을 들을 수 있다면 그대는 참으로 대단한 힘을 가진 거요. 그대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초고층 빌딩들의 불빛이 전부인데도 별빛을 느낄 수 있다면 이 어찌 대단하지 않다 하겠소. 그대가 대형 쓰레기통 앞에서 숲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이 또한 대단한 능력이오. 그대를 둘러싼 환경이나 사람들이 그대에게 무엇을 보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고, 들을지 강요하도록 절대로 내버려두지 마시오. ... 아가씨 면전에 대고 다른 사람들이 지껄여대는 터무니없는 말에 휘둘리지 말고. 아가씨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자기 마음을 제대로 쓸 수 있다면 아가씨는 자유로워지는 거라고!-132쪽

명심해, 이 꽃은 아가씨보다 훨씬 더 예민하다는 걸. 하지만 참을성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최악의 상황에서도 아름다움과 은은함을 잃지 않는 꽃이지. 적응의 귀재야! 그리고 또 얼마나 우아한데. 이 꽃을 지켜보면서 그 비결을 배워봐. 아가씨가 오랜 시간을 두고 충분히 연구한다면 이 꽃이 아가씨에게 자기가 선택한 이상 어떤 상황이든 즉각 평화롭게 적응해 나가는 법을 가르쳐줄 걸세. 이 장미가 아가씨에게 뭘 말하려는 건지 이해하겠나?-134쪽

느낌으로 아는 거죠. 훤히 노출돼 있지만 확실히 보호받고 있어서 안전한 느낌이랄까. 진정되면서 동시에 흥분되는 것 같은 느낌. 한번 그렇게 느끼게 되자 결코 그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이제는 강제로 나를 옛날로 돌아가게 하려는 그 누구나, 그 무엇과도 멀리하고 있죠. 당신도 자신의 참모습을 알면 앞으로 다시는 다른 사람인 척 꾸미고 싶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참모습 대로 사는 게 이제까지 그런 척 꾸미거나 또는 꿈꾸거나 상상하거나, 되려고 노력해왔던 그 어떤 모습보다도 더 좋으니까요. -307쪽

하지만 그들이 타고난 그 모습은 수년 동안 부모님과 함께 살고, 학교에 가고, 현실에 적응하면서 덧씌워진 모습이죠. 한 해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사람은 조금씩 더 덧씌워져요. 마치 천천히 지퍼를 올려 몸 전체를 가리는 침낭처럼 말이죠. 진짜 모습이 완전히 가려질 때까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조금씩 진행되죠. 그러다 결국 침낭이 완전히 닫히면 사람들은 결코 다시 해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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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가방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3월
절판


그날 밤엔 둘이서 청주를 한 다섯 홉쯤 마셨다. 술값은 선생님이 치렀다. 다음에 같은 집에서 만나 마셨을 때는 내가 계산을 했다. 세 번째부터는 계산서도 각각, 돈을 내는 것도 각자 하게 되었다. 그후 이 방법이 이어지고 있다. 만남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던 것은 선생님이나 나나 그런 기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주의 취향뿐 아니라 타인과 거리를 두는 법도 닮아 있다. 나이는 삼십 년도 넘게 차이 나지만, 동갑내기 친구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10쪽

분노라는 것은 미묘하게 쌓이고, 작은 파도가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는 것처럼, 그렇게 쌓인 분노가 살면서 뜻밖의 장소에서 터질지도 모르는 거지요. 결혼 생활이란 그런 거죠, 그럼요.-69쪽

짐을 챙겨 왔던 길을 돌아갔다. 걷고 있는 동안에 웃고 싶어졌다가 울고 싶어졌다가 했다. 취기 탓인지도 모른다. 어디를 걷고 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취기 탓이겠지. 사토루 상과 도오루 상이 똑같은 등을 보이며 똑같은 걸음걸이로 앞서 가고 있다. 선생님과 나는 나란히 서서 함께 웃고 있다. 선생님, 도망간 사모님을 지금도 사랑하세요? 내가 중얼거리자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높아졌다. 아내는 지금도 내게는 알 수 없는 존재지요, 하고 선생님은 약간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고 나서 또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나게 많은 생물들이 내 옆에 있고 모두들 붕붕거린다. 어째서 이런 곳을 걷고 있는 걸까, 전혀 알 수가 없다. -78쪽

다카시를 만날 때면 언제나 나는 ‘어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 나이와 그에 걸맞는 언동, 다카시의 시간은 균등하게 흘렀고, 몸도 마음도 균등하게 성장했다.
나? 나는 아마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제법 어른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거꾸로 어른스럽지 못하게 되어 갔다. 더욱더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어린애 같은 인간이 되어 버렸다. 시간과 사이좋게 갈 수 없는 체질인지도 모른다. -151쪽

선생님의 의향에 신경 쓰는 일 따위는 이제 그만둔 것이다. 들러붙지도, 떨어지지도 않는다. 신사답게, 숙녀답게 담백한 교제를. 그렇게 나는 결심했다. 담백하게, 오랫동안,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리 내가 다가가려 해도 선생님은 다가가게 해주지 않는다. 공기로 된 벽이 있는 것 같다. 얼핏 보기에 부드럽고 거칠 것이 없건만, 압축되면 그 무엇이든 퉁겨내 버리고 마는 공기의 벽.-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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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만 가지 죽는 방법 밀리언셀러 클럽 13
로렌스 블록 지음, 김미옥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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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율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늘 그대로라니까. 바뀐 게 있다면 우발 살인이 늘었다는 거지, 살인자와 희생자가 서로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살인 사건 말이야. 우발 살인율이 얼마나 높은가를 보면 어느 지역에 사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 수 있지. -178쪽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라는 책을 읽어보신 적 있나요? 그 책에 토끼 마을이 나오거든요. 인간들에 의해 길들여진 토끼들의 마을이죠. 인간들이 토끼를 위해 음식을 마련해 주기 때문에 식량은 충분해요. 식량을 주는 사람들이 이따금 덫을 놓아 토끼 고기를 먹으려고 드는 것만 빼면 토끼 천국이라고 할 수 있죠. 살아남은 토끼들은 절대로 덫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덫에 걸려 죽은 친구들에 대해 말하는 법이 없어요. 그들은 덫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는 듯이 죽은 동료들이 아예 살았던 적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히 행동하기로 무언의 약속을 한 셈이죠.
뉴요커들이 마치 그 토끼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여기 사는 건 문화든 일자리든 간에 이 도시가 주는 뭔가가 필요해서죠. 그리고 이 도시가 우리 친구나 이웃들을 죽일 때 우리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보죠. 그런 기사를 읽으면 하루나 이틀쯤은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곧 잊어버리는 거예요. 잊어버리지 않으면 그 일에 대해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지 않으면 이 도시를 떠나야 하는데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우린 마치 그 토끼들 같아요. 그렇죠?
-249쪽

최고의 보드카는 말이지, 메스 같은 거야. 숙련된 외과의사의 손에 들린 예리한 메스 말이야. 뒤끝이 깨끗하다니까. -270쪽

죽음에 이르는 800만가지 방법이 있다… 호텔 방 창문에서 뛰어내리기만 해도 간단히 죽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종류의 일을 시도해 본 적은 없다.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으로 보인 적도 없다. 겁이 너무 많거나 불굴의 의지를 가졌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나의 지독한 절망이 생각만큼 절실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여하튼 계속해서 살아가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356쪽

지난 2년 동안 내가 지레 늙어 버렸는지, 이 도시가 점점 더 추잡해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요즘 사람들은 아주 성급하게 방아쇠를 당기는 것 같거든. 전에는 그래도 이유가 있어서 죽였는데 말이야. 지금은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으면 죽인다고. 죽이지 않는 것보다 죽이는 게 빠르지. 무의식적으로 행동한다니까. 너한테 하는 말이지만, 난 그게 무서워. -364쪽

순간순간 알코올의 끈질긴 유혹에 시달리고, 스치듯 가까이 선 죽음을 의식하면서 혼자 쓸쓸히 이어가는 삶.-4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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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 조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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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은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이 길잡이가 되어 다른 책으로 이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문들이 계속 열렸고, 바라는 만큼 책을 읽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았다.-28쪽

책 읽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책이 초연하기 때문이라고 여왕은 생각했다. 문학에는 당당함이 있었다. 책은 독자를 가리지 않으며, 누가 읽든 안 읽든 상관하지 않는다. 여왕 자신을 비롯해서 모든 독자는 평등했다. 여왕은 생각했다. 문학은 연방이고, 문자는 공화국이라고.-39쪽

우선, 여왕이 책을 읽으면서 불안감과 낭패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끝없이 펼쳐진 책들이 여왕을 노려보고 있었고, 여왕은 독서를 어떻게 계속해나가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여왕의 독서에는 체계가 전혀 없었다. 한 권을 읽으면 그 책에 따라 다음 책으로 이어졌고, 두세 권을 동시에 읽을 때도 많았다. 메모를 시작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갔고, 그 뒤로는 늘 손에 연필을 들고 책을 읽었다. 읽은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와 닿은 구절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었다. 책을 읽으며 메모를 한 지 일 년쯤 지난 뒤에야 가끔 떠오르는 자신의 생각을 시험 삼아 용기 내어 적게 되었다. 여왕은 이렇게 썼다. ‘나는 문학이 광대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 먼 국경으로 여행하고 있지만 국경에는 절대 다다를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출발도 늦었다. 결코 따라잡지 못하리라.’ -58쪽

어둠 속에서 여왕은, 문득, 자신이 죽으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종속되어본 적이 없는 여왕도 죽고 나면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를 바 없어질 터였다. 책 읽기는 그것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글쓰기는 그것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독서 때문에 인생이 풍요로워졌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여왕은 분명, 그렇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똑같이 확실하게, 그와 동시에 독서 때문에 인생의 모든 목적이 말라붙었다고 덧붙였을 것이다. 한때 여왕은 자기 의무를 마음에 깊이 새기고 최선을 다해 의무를 수행할 각오를 품은, 확고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책 읽기는 실천적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이 늘 문제였다. 여왕은 늙었지만, 여전히 실천가였다. -117쪽

책은 행동을 촉발하지는 않습니다. 책은 대개 자신이 이미 하기로 마음먹은 바를, 어쩌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하기로 마음먹은 바를 확인시키기만 하죠.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려고 책을 찾습니다. 말하자면 책은 책으로 끝나는 겁니다.-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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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여행자
앤 타일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예담 / 200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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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업다이크의 평가에 백번 동감, 참 좋은 작가의 참 좋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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