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율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늘 그대로라니까. 바뀐 게 있다면 우발 살인이 늘었다는 거지, 살인자와 희생자가 서로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살인 사건 말이야. 우발 살인율이 얼마나 높은가를 보면 어느 지역에 사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 수 있지. -178쪽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라는 책을 읽어보신 적 있나요? 그 책에 토끼 마을이 나오거든요. 인간들에 의해 길들여진 토끼들의 마을이죠. 인간들이 토끼를 위해 음식을 마련해 주기 때문에 식량은 충분해요. 식량을 주는 사람들이 이따금 덫을 놓아 토끼 고기를 먹으려고 드는 것만 빼면 토끼 천국이라고 할 수 있죠. 살아남은 토끼들은 절대로 덫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덫에 걸려 죽은 친구들에 대해 말하는 법이 없어요. 그들은 덫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는 듯이 죽은 동료들이 아예 살았던 적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히 행동하기로 무언의 약속을 한 셈이죠. 뉴요커들이 마치 그 토끼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여기 사는 건 문화든 일자리든 간에 이 도시가 주는 뭔가가 필요해서죠. 그리고 이 도시가 우리 친구나 이웃들을 죽일 때 우리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보죠. 그런 기사를 읽으면 하루나 이틀쯤은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곧 잊어버리는 거예요. 잊어버리지 않으면 그 일에 대해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지 않으면 이 도시를 떠나야 하는데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우린 마치 그 토끼들 같아요. 그렇죠? -249쪽
최고의 보드카는 말이지, 메스 같은 거야. 숙련된 외과의사의 손에 들린 예리한 메스 말이야. 뒤끝이 깨끗하다니까. -270쪽
죽음에 이르는 800만가지 방법이 있다… 호텔 방 창문에서 뛰어내리기만 해도 간단히 죽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종류의 일을 시도해 본 적은 없다.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으로 보인 적도 없다. 겁이 너무 많거나 불굴의 의지를 가졌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나의 지독한 절망이 생각만큼 절실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여하튼 계속해서 살아가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356쪽
지난 2년 동안 내가 지레 늙어 버렸는지, 이 도시가 점점 더 추잡해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요즘 사람들은 아주 성급하게 방아쇠를 당기는 것 같거든. 전에는 그래도 이유가 있어서 죽였는데 말이야. 지금은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으면 죽인다고. 죽이지 않는 것보다 죽이는 게 빠르지. 무의식적으로 행동한다니까. 너한테 하는 말이지만, 난 그게 무서워. -364쪽
순간순간 알코올의 끈질긴 유혹에 시달리고, 스치듯 가까이 선 죽음을 의식하면서 혼자 쓸쓸히 이어가는 삶.-4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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