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 조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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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은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이 길잡이가 되어 다른 책으로 이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문들이 계속 열렸고, 바라는 만큼 책을 읽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았다.-28쪽

책 읽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책이 초연하기 때문이라고 여왕은 생각했다. 문학에는 당당함이 있었다. 책은 독자를 가리지 않으며, 누가 읽든 안 읽든 상관하지 않는다. 여왕 자신을 비롯해서 모든 독자는 평등했다. 여왕은 생각했다. 문학은 연방이고, 문자는 공화국이라고.-39쪽

우선, 여왕이 책을 읽으면서 불안감과 낭패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끝없이 펼쳐진 책들이 여왕을 노려보고 있었고, 여왕은 독서를 어떻게 계속해나가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여왕의 독서에는 체계가 전혀 없었다. 한 권을 읽으면 그 책에 따라 다음 책으로 이어졌고, 두세 권을 동시에 읽을 때도 많았다. 메모를 시작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갔고, 그 뒤로는 늘 손에 연필을 들고 책을 읽었다. 읽은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와 닿은 구절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었다. 책을 읽으며 메모를 한 지 일 년쯤 지난 뒤에야 가끔 떠오르는 자신의 생각을 시험 삼아 용기 내어 적게 되었다. 여왕은 이렇게 썼다. ‘나는 문학이 광대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 먼 국경으로 여행하고 있지만 국경에는 절대 다다를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출발도 늦었다. 결코 따라잡지 못하리라.’ -58쪽

어둠 속에서 여왕은, 문득, 자신이 죽으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종속되어본 적이 없는 여왕도 죽고 나면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를 바 없어질 터였다. 책 읽기는 그것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글쓰기는 그것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독서 때문에 인생이 풍요로워졌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여왕은 분명, 그렇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똑같이 확실하게, 그와 동시에 독서 때문에 인생의 모든 목적이 말라붙었다고 덧붙였을 것이다. 한때 여왕은 자기 의무를 마음에 깊이 새기고 최선을 다해 의무를 수행할 각오를 품은, 확고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책 읽기는 실천적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이 늘 문제였다. 여왕은 늙었지만, 여전히 실천가였다. -117쪽

책은 행동을 촉발하지는 않습니다. 책은 대개 자신이 이미 하기로 마음먹은 바를, 어쩌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하기로 마음먹은 바를 확인시키기만 하죠.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려고 책을 찾습니다. 말하자면 책은 책으로 끝나는 겁니다.-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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