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영화를 본 것은 2002년 5월 27일 저녁 7시 55분이었다. (이게 기억력에 의한 것이라면 더 바랄게 없겠지만 아쉽게도 영화표에 적혀 있는 것을 봤다.) 그 이후. 비디오로 서너 차례 보고 어제는 밤에 케이블 TV에서 해 주길래 또 봤다. 그저께던가? 암튼 또 봤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몇 번만 더 보면 저 영화를 외울것 같다.
이 영화는 주성치라는 인물을 빼 놓고서는 도저히 말 할수가 없다. 주성치가 이 영화에서 감독겸 배우를 해서가 아니라 주성치가 아니었다면 이런류의 영화는 세상에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주성치의 주성치에 의한 주성치를 위한 영화인 것이다.
내가 처음 주성치를 눈여겨 본 것은 그의 92년작 아비와 아기 때 이다.(아비와 아기는 사람 이름이다.) 장학우와 함께 나온 아비와 아기를 보면서 나는 과연 주성치식의 코메디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실로 두려웠었다. 택도 아니지만 그 택도 아님에 미치도록 웃을 수 있게 만드는 주성치의 코메디는 여태까지의 코메디와는 비교가 불가능 할 만큼 차원이 달랐다. 그 이후 주성치 영화를 찾아서 보는 지경은 아니었지만 아비와 아기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가 메가폰을 잡고 출연한 영화 소림축구를 향해 끌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마치 알콜 중독자가 소주 냄새를 맡았을 때 처럼 본능적인 이끌림이었다고 나는 감히 실토한다.
주성치식 코메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 주성치를 보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그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냥 그의 외모에 대한 분석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없이 아쉽다.) 주성치를 가만 보면 절대 못생긴 얼굴이 아니다. 잘만 꾸며놓으면 아주 잘 생긴 축에 들어간다. 하지만 더 자세하게 뜯어보면 그의 얼굴에는 잘 생김만이 존재하는건 아니다.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없어보임. 궁해보임이 바로 그의 매력이다. 잘생겼지만 좀 빈궁하게 없어 보이는 페이스. 이것이야말로 주성치의 연기를 극한의 매력까지 끌어 올리는 원동력이다. 그냥 떨어진 옷 입고 얼굴에 검댕이를 칠해서 없어 보이게 꾸민것이 아니라 그의 얼굴에는 본래부터 궁한 정서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성치식의 유치찬란하면서도 비정하면서도 강단있고 택도없는 연기에 그 이상의 얼굴은 없다. 그는 얼굴에서만 그치지 않고 몸 또한 없어 보인다. 비쩍 말랐으나 근사하게 옷걸이가 좋게 마른게 아니라 못 먹어서 마른듯 그의 몸매는 그의 궁한 얼굴과 더없이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고 있다.
영화의 내용은 별 것 없다. 왕년에 축구 스타였으나 다리를 다치고 지금은 별 볼일 없는 명봉이란 자가 어느날 절대무공을 연마하고 있는 괴력의 소유자 씽씽(이름한번 죽인다.)을 만나 축구단을 만든다. 씽씽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는 과거 씽씽이 무공을 연마할때 함께했던 동료들을 그러모아서 만든다. 명봉의 다리를 병신으로 만들었던 비겁한 축구회장과의 한판승. 축구는 이제 단순히 발로 공을 차 넣기를 넘어서서 온갖 무공들의 화려한 개인기 쑈가 된다. 여기에 자기별로 돌아갔어야 할 전직 만두요리사 아매가 가세하면서 축구는 우주최강 쑈쑈쑈 가 된다.(아매가 외계인이라기 보다 그 모습이 거의 외계인틱 하다.)
이 영화는 이미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그 매력이 적날하게 파 헤쳐진바 있다. 주성치 뿐 아니라 어디가서 저런 것들을 다 모았을지 정말로 궁금해지는 궁하고도 언더적인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여 각각의 역활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소화한다. 핸드폰으로 주식의 가격을 말하던 2:8 가르마의 남자. 그는 궁한 얼굴의 극을 보여준다.(주성치는 궁하게 생기긴 해도 극은 아닌것이 동시에 잘생겼기도 하기 때문이다.) 할 말을 잃게 하는 그의 구강구조와 엄한 턱선. 선탠이 아니라 원래 그모양으로 태어난듯 거무튀튀한 피부는 어떤 특수분장도 필요없다. 그리고 출렁이는 살과 어울리지 않게 늘 눈을 감고 심각하고도 괴상한 포즈로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뚱보도 대단하다. 어떻게 그 몸매로 그런 포즈를 취하는지 신기할 뿐이다. 거기다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는 그의 배우로서의 진지한 자세를 보여준다. 그 외에도 이 영화는 개성이 넘쳐 부담스럽기까지 한 주인공들이 수도없이 등장한다. 소림축구단 뿐 아니라 그들이 시합에서 만나는 오합지졸 상대방들(특히 키 크고 손망치인가를 바지속에 넣고 나왔던 안경잡이 청년은 단연 그랑프리 감이다.) 의 외모와 연기력 또한 이 영화의 백미이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소림축구로 인해 불기 시작한 무공 열풍으로 지나가던 여자가 바나나를 밟고 한바퀴 멋지게 돈 다음 착지하는 장면, 주차를 하기 위해 차를 이리저리 빼는것이 아니라 손으로 확 밀어서 주차하는 여자. 길거리에서 양복을 입고 무공을 연마하던 남자들이 버스가 그냥 지나쳐 버리자 붕 날라서 타는 장면이 진짜 끝까지 사람 배를 째 준다. 이 영화가 성공했을때 주성치는 펑펑 울었다고 한다. 정말 그럴만 하다. 그 누구라서 이 골때리는 영화의 성공을 예견할 수 있었겠느냐 말이다.
영화의 출연진들 중에서 주성치와 개인적인 친분에 의해서 우정출연한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 중에서 수염을 붙인 장백지의 터프한 모습은. 파이란을 보며 눈시울을 적셨던 나로서는 무척 색다른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고민을 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때가 있다. 그럴때는 아비와 아기 그리고 소림축구를 연달아서 한번 봐 보길 바란다. (아비와 아기를 먼저 봐야하는 것은 아비와 아기때의 주성치의 싹수가 소림축구에서는 어떻게 그 결실을 이루었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P.S : 아비와 아기에는 주성치가 아닌 양조위가 나왔었다고 합니다. 유진홍님께서 지적 해 주셨습니다. 리뷰를 고치지 않는 이유는... 다들 아시죠? 흐흐. 네. 짐작대로 입니다. 그래도 아비와 아기도 보시기 바랍니다. 재밌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