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는 매거진이다
유정미 지음 / 효형출판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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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잡지의 사회적 의미와 디자인적인 측면 두 가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물론 비중은 후자쪽에 더 실려있지만 전자에 대한 언급도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잡지라는 의미 자체를 아주 잡다하고도 가벼운 것들이 모인 책이라는 것에 의의를 제기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구나 우리는 잡지를 책이라는 분류안에 잘 집어넣지 않는다. 뭔가 책 하면 드는 고상한 느낌이 잡지에는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신문을 읽는다고 하면 했지 잡지를 열심히 읽는다고 자랑하는 이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우선 잡지에 관해 가지고 있는 편견중 가장 큰 것은 나이가 적지않은 여성들이 보는 이른바 두터운 여성지 일 것이다. 앞에 여성자가 붙으며 뒤에는 출판사의 이름이 붙는 그 잡지들은 그야말로 무기의 수준을 방불케 하도록 두터우며 광고의 질 만큼이나 내용도 아주 시시콜콜한 것들이다. 잡지 하면 가장 먼저 그런 책들이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많이 팔리고 그나마 짧은 잡지 역사계에 비교적 망하지 않고 오래오래 버티기 때문 일 것이다. 이제는 은행이나 동네 미장원에서나 볼 수 있지만 과거에 별로 읽을꺼리가 없던 시절에는 아줌마들의 필독서였더랬다. 그 다음. 바로 제 보다 젯밥에 관심있는 이들을 위하여 사은품을 마구 풀어제끼는 하이틴 여성지 일 것이다.

요즘 잡지들은 대부분 이 과에 속하며 주는 사은품은 화장품에서 가방까지 다양하다. 이게 우리들이 잡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게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지오그라픽 비슷한 (실제로 이름도 비슷하다)잡지도 있고 사이언스지 비슷한 잡지들도 또 인테리어에 관련된 잡지, 영화잡지등도 무수하게 많다.

물론 이 책은 잡지의 사회적 기능보다 앞서 말 했듯이 디자인적인 측면을 더 깊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앞부분에서 조금 언급한 잡지의 사회적 의미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평소 잡지를 좋아하긴 하지만 잡지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뉘앙스가 그리 좋지만은 않았고 나 역시 어디가서 잡지를 참 열심히 본다고 말 하지는 않으니까..

잡지. 책의 저자에 의하면 매거진은 시대의 흐름을 가장 빠르게 편승한다. 신문처럼 하루살이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잡지는 한달을 주기로 폐기된다. 그렇다고 해서 책 처럼 길이길이 남을 얘기를 담지는 않는다. 잡지는 가장 적당한 속도로 시대의 미학과 관심거리를 다루고 있으며 잡지 디자인은 시각 디자인의 현 주소를 가장 쉽고 빠르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이 책을 읽고나면 우리가 잡지에 관해 가졌던 조금은 가볍고 저급한 시선을 접을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잡지를 매거진이라 부를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제발 여자들도 사은품으로 잡지를 사는게 아니라 매거진을 좀 읽었으면 싶다. (물론 일년에 한번정도 진정한 의미의 독자 사은품을 반대하는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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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 맞은 영혼 -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방법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장현숙 옮김 / 궁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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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살면서 생각보다 맘을 다친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들은 지나치게 난폭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소심하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물론 남의 입장에서 본다면 난폭함이 훨씬 더 나쁘다. 그렇지만 맘을 다친자의 입장에서 보면 차라리 난폭함으로 표현내지는 표출하는 것이 더 나은지도 모른다. 그저 조용히 있기 때문에 아무도 피해를 입지는 않지만 정작 본인은 속 깊이 곪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부끄러운 집안사를 좀 들먹여야 겠다. 우리집안 사람들은 다 허허 거림서 살아서 실속은 없을 망정 사람좋단 소리는 늘 듣고 사는데 거기에 유일하게 빠지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 고모이다. 고모는 남자많은 한의원집에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고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았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였던지 고모는 시집을 가고 자식을 낳자 사람이 이상해져 버렸다. 본인은 멀쩡한데 무언가 스트레스가 있었는지 그걸 어린 남매에게 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나는 고모집에 갈때 마다 어린 두 조카가 죽도록 맞는 광경을 목격해야 했고 저 아해들이 과연 정상으로 잘 자라줄까 하는 걱정을 했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막내 여자아이가 20살이 되었다. 아이는 내 걱정대로 무척 소심하고 상처를 잘 받는, 그리고 안으로만 말려드는 달팽이 같은 아이가 되어버렸다. 내가 아무리 용기를 북돋우어 주려고 해도 그 아이 스스로가 이미 자기 자신은 나쁘다고 정의 해 버린 뒤였다.

다시 책 예기를 하자. 암튼 나는 요즘 이 책에서 필요한 부분을 그 아이에게 읽어주거나 상담을 하고 있다. 심리치료사는 아니지만 그 아이가 그대로 가만히 있는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아이는 여태까지 자기가 너무 나쁘고 엄마는 옳았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인정하기 힘들지만 자기 엄마가 나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아이는 자기가 나쁘고 못나서 엄마의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어른들도 상처를 잘 받겠지만 특히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그게 더 위험하다. 왜냐면 가해자가 나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게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른이 되어 이미 부모의 품을 떠난 후에도 피해의식을 갖고 자존감을 잃어버린채 살게 되는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책은 상처를 입은 당사자만 볼 책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 더 나아가서는 인간관계를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읽어보아야 할 책인것 같다. 우리가 혹시 우리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혹은 받지는 않는지를 말이다.

인간관계란 그저 핸드폰에 전화 많이 오고 생일날 선물이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성공하는게 아니다. (우리 고모의 경우 위 두가지로만 보면 인간관계의 끝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냥 되는데로 있으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에는 잘못된 인간관계가 주는 피해는 너무 크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피해가 절대 드러나지는 않거나 혹은 아주 나중에 엉뚱한 방향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책은 비교적 쉽게 쓰여있으며 여러가지 사례들도 많다. 이 책은 특별한 사람들이 보는것이 아니라 모두가 한번쯤은 보아야할 일반상식 도서에 해당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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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되는 법
진산 지음 / 부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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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진산마님이 드디어 책을 내셨다. 내가 처음 이 글을 봤을때가 2년 전 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마님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 했으나 삼돌이는 커녕 삼식이 삼쇠 삼덕이만 들끓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웹상에서만 보고 치울것이 아니라 철저히 외우고 복습하고자 책을 구입하기에 이르렀으니...

자. 마님이 되는 법 이란 과연 멀까?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마님 운운하냐고? 후훗...그런 의문따윈 마님이란 존재를 알지 못하는 무지랭이 같던 시절에나 할 수 있다.

마님은 결혼한 여자중 최고봉의 지휘에 오르른 자 만이 될 수 있는.. 그 어떤 정신수양자들 보다 더 큰 내공을 쌓아야만 오르를 수 있는 경지이다. 남편을 삼돌이라고 부르며' 천하를 호령하듯 삼돌이를 부리고, 흔히 밥과 빨래 애보기가 전부인 평범한 주부의 삶을 맘껏 비웃는 마님. 결혼을 한, 혹은 결혼을 앞둔 여자중 그 누구라서 이 꿈을 현실로 이루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서 바로 이 책이 나왔다. 마님이 되는 법. 삼돌이에게 해도해도 표 안나고 안하면 집구석 도그테이블 되어 버리는 가사일을 떠넘김은 물론 '아니 여자가 어디서 월월월!!'하는 따위의 민란은 생각도 못하게 하는 법. 삼돌이로 하여금 무력 혹은 기타의 이유로 마님을 받들어 모시는 것이 아니라 진정 마님을 존경하여서 받들어 모시지 아니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가게끔 하는 법. 바로 이 책 한 권에 다 들어있다.

결혼을 하지 않을꺼라면 몰라도 일단 결혼을 하고 나서는 열 남자가 잘해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랴. 정작 내 남편 삼돌군이 나를 짖밟고 서 있는데!! 결혼해서 맞벌이 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직장에 다녀와서 또 허리휘게 청소하고 애 챙기고 밥하고 빨래를 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 그녀들은 과연 얼빵해서 혹은 원도우먼이 꿈인 억척녀들이라 그런가? 아니다. 이 책. 마님이 되는 법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않은것도 자꾸 하면 당연해 진다. (앞서 든 일하는 주부들의 예를 보라. 자꾸 하니까 당연해져 버린 것이다.)

삼돌이를 부리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말한다. 계속 개기며 밀어 부치라고... 여기에 등장하는 각종 뻔뻔법 혹은 개김비법을 습득한다면 과중한 업무에 야근까지 한 남편을 향해 하루종일 뒹구르르 하드를 빨다가 '밥줘'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진산마님은 이건 너무 뻔뻔한 짓이라 했으나 스승보다 나은 제자는 늘 탄생하는 법이다.)

이 책은 결코 페미니즘을 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린 평등을 원치 않는다. 지배와 피 지배만이 있는 정글(가정)에서 평등은 무슨놈의 평등이더란 말이냐? 오늘은 내가 라면을 끓였으니 내일은 니가. 어제는 내가 양말짝을 빨았으니 오늘은 니가. 뭐 이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닐 뿐더러 쉽다 하더라도 외우기가 너무 귀찮다. 그렇담 방법은 딱 하나. 귀찮고 힘든 그 모든 일을 삼돌이에게 떠 넘기는 것이다. 결코 삼돌이로 하여금 불공정거래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면서 말이다. (눈치를 챈다면 계속 할 수도 없겠지만...)

이 땅에 아줌마 혹은 삼월이 쇤네 기타등등의 여성을 위해 태어난 책 [마님이 되는 법!] 당신도 곧 마님이 될 수 있다. 단 열심히 읽고 열심히 실천해야 한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마냥 뒹굴대며 놀아서는 마님이 될 수 없다. 댁의 삼돌이가 신경계통에 남다른 질환이 있거나 유난히 천진난만하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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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필립 K. 딕의 SF걸작선 1
필립 K. 딕 외 지음, 이지선 옮김 / 집사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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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이 있는 상황에서 영화를 만들면 반응은 두 가지 이다. 그럭저럭 잘 했다와 원작을 완전하게 망가트렸다는 것. 원작을 뛰어넘는 훌륭한 어쩌고 하는것은 영화 흥보 문구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이며 좀처럼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바로 원작의 광신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개봉한 한국영화 비천무의 경우 김혜린의 만화 원작 비천무를 가지고 영화화 했으며 개봉하자 마자 네티즌들의 열화와 같은 비난에 시달렸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들이 사랑하는 작품을 너무나 회손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사정은 어떨까?

알다시피 필립 K. 딕의 소설은 이미 블레이드 러너와 토탈리콜을 비롯해서 몇편 정도 영화화 되었다. 블레이드 러너와 토탈리콜의 경우 영화는 봤으나 원작은 보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 평하기는 힘들지만 세인들의 평가를 들어보자면 블레이드 러너의 경우는 원작을 뛰어넘는 훌륭한 어쩌고 하는 듣기 힘든 소리를 들었으며 아직까지 SF영화의 고전이자 교과서로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특히 기모노와 옥외광고 이미지는 음습한 미래도시의 전형처럼 되었다.

마니너리티 리포트에 대해서는, 먼저 영화 얘기를 해야겠다. 나는 영화를 먼저 봤으므로... 스필버그는 역시나 블레이드 러너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기모노 옥외 광고는 좀더 세련되어져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홍채로 신분을 판독해서 말한다. 누구누구씨 갭의바지가 새로 나왔습니다. 확실히 스필버그가 그린 필립 K. 딕의 미래도시는 블레이드 러너의 그것보다는 한참 밝다.

그러나 어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어린 안드로이드가 엄마를 찾아 삼만리 떠나는 내용처럼 밝은가! 원작을 읽어 본 결과 전혀 아니었다. 필립 K. 딕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우울하고도 음습했다. 스필버그가 아무리 밝게 표현을 하려고 했다지만 그 저변에 깔린 인간에 대한 끝없는 질문은 어쩔 수 없다. 마치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처럼 기억은 회손되거나 조작되기 십상이여서 나를 나라고 증명하기 어렵고 예언 때문에 현실이 되었는지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에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인지 모호하다.

어떻게 보면 SF영화나 소설들이 추구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인간 자신에 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화려한 볼거리가 장악하고 있는 천하의 매트릭스도 결국은 인간 자신의 내면 세계로 초점이 맞추어진다. 넓고 거대하고 광할한 이미지를 가지고 결국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우주에서 가장 신비롭다는 블랙홀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책과 소설이 가장 다른점을 꼽으라면 설정에 있다. 책의 앤더튼과 영화의 앤더튼(보면 알겠지만 몹시 수려한 이혼경력 2회를 자랑하는 단신)은 하늘과 땅 차이며 가족의 설정도 많이 다르다. 또 주변부 인물들도 조금씩 성격을 달리 하고 있다.
사실 영화는 썩 잘 만들어졌다. 과연 스필버그. 혹은 AI의 네버엔딩 동화틱 결론으로 인해 실망을 한 관객이라면 스필버그 답지않은 쿨한 작품이었다고 말을 할 것이다. 긴 시간이지만 지겹지 않은 영화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설은 어떤가! 영화와 많이 다르긴 하지만 앤더튼이 배가 나왔다고 해서 영화의 날렵한 앤더튼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어차피 영화의 미끈한 앤더튼은 배불뚝이 앤더튼의 잘못 태어난 클론과도 같다. 그리고 그 짧음이란... 스필버그가 2시간 30분동안 엉덩이의 외침을 막기 위해 온갖 화려한 볼거리를 등장시키느라 진땀을 뺐다면 필립 K. 딕은 너무도 짧은 책으로 우리에게 허기를 불러 일으킨다. 하나는 관중을 잡고 늘어지며(허나 재밌어서 그러는지 조차도 잘 모른다) 하나는 관중에게 맛만 보여주고 도망가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도 소설도 꼭 보고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근데 이게 말이 되나?)
여기에는 다른 단편들도 함께 있지만 그것까지 언급하지는 않겠다. 여러분들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위해 이 책을 구입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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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않는다
은희경 외 지음 / 생각의나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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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녀들이 최근에 낸 '고양이는 부르지 않을 때 온다'를 읽고 한껏 고무되어 구입한 책이다. 시기적으로 볼때 고양이.. 바로 전에 나온 책이지만 나에게는 순서가 거꾸로이다. 아무튼 고양이를 재미있게 읽은지라 나는 이 책도 재미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맨 앞에 있는 은희경의 단편(책의 제목과 같다)은 은희경의 다른 책에서 읽었던 것이었지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많은 기대를 걸었기 때문에 하나 읽은 것 쯤이야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한국의 내노라 하는 여류작가인 그녀들이 시간에 쫓긴걸까. 아니면 집단 의욕상실에라도 걸린걸까. 각각의 단편들은 마치 한권의 지리멸렬한 소설을 읽는것 처럼 맥없이 늘어져 있었다. 이 책에 과연 고양이...에서 그토록이나 갖가지 색들로 반짝이던 작가들의 작품일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오로지 흑백톤으로 윤기를 잃어버린 작품들. 물론 재미가 작품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재미라는 부분을 책읽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믿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책을 샀다는 의무감에서 읽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나마 가장 재미있는 작품으로는 제일 마지막에 실린 김민희씨의 '우리들의 작문교실'이었다. 가끔은 잘난 사람들도 실수를 하거나 슬럼프에 빠지는걸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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