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틱 리버 - 상 밀리언셀러 클럽 11
데니스 루헤인 지음, 최필원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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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일을 겪은 사람에게 사람들은 말한다. 잊어 버리라고, 눈 한번 질끈 감으라고. 하지만 그런다고 이미 일어난 일이 사라지진 않는다. 아주 잠깐동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듯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그것들이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는 법이다.

미스틱 리버는 세 남자의 이야기이다. 숀, 지미, 데이브. 이들은 어렸을때 부터 한 동네 친구였다. 비록 아버지의 직업도 가정 형편도 달랐지만 그들은 친한 친구였다. 어느 날 세명이서 하찮은 일로 길가에서 싸우고 있는데 차 한대가 선다. 아이들은 그들이 경찰이라고 생각하고, 경찰이 자기들을 잡아가려는 줄 알고 겁을 먹는다. 그러나 그 차는 가장 순해빠진 데이브만 태우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 차는 경찰차도 또 그 안에 있던 두 명의 남자도 경찰이 아니었다. 4일 후 데이브는 그들에게서 탈출을 하고 그 사건은 그냥 뭍혀져 버린다. 그러나 데이브도 지미도 숀도 어른들처럼 이 사건을 그냥 잊어버리지는 못한다. 데이브는 당사자의 공포가 남아있고 숀과 지미는 데이브가 아니었으면 자신들이 그 차를 탈수도 있었다는 아니 적어도 그때 데이브를 구했어야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소년들이 자라서 어른이 된 어느 날 지미의 딸이 처참하게 죽은 채 발견된다. 사건 담당자는 경찰이 된 숀. 그리고 용의자는 데이브. 세 소년은 결국 다시 만나게 된다. 사건의 담당 형사, 용의자, 피해자로 말이다.

처음에는 좀 뻔한 스토리라고 생각을 했었다. 어린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다중인격이나 성격파탄자가 되어버린 범죄자의 얘기는 이미 헐리우드 영화에서 너무 많이 써먹었다.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건 그건 다중인격 아니면 성격파탄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미스틱 리버는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룰에서 벗어났다. 데이브가 다중인격인것 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아니다. 이 책은 읽지 않고서는 도저히 느낌 전달이 불가능한 책이다. 느린듯 전개되면서도 일은 빠르게 진행되고, 사건이 여기 저기서 갑자기 터지는듯 보이지만 실은 과거로 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온 것이다. 추리문학상을 받은 소설이지만 단순하게 추리소설로 보기는 힘들다. 이 책은 지미의 딸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가에 촛점이 맞춰져 있는것이 아니다. 마치 버터플라이 이펙트처럼 그때, 세 아이들이 놀다가 한 아이가 납치된 그 시점부터 모든게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납치된 아이가 탈출함으로 인해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온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냥 눈을 질끈 감고 보지 않고 있었던것 뿐이었다. 그것은 납치되었던 데이브 뿐 아니라 지미와 숀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데이브는 머리속에 언제나 그 일을 생각하고 있었고 지미와 숀은 잠시 잊고 있었던 것 뿐이다. 그 일에 끝임없이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그들은 연관을 지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책은 거의 680페이지가 조금 넘는 실로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하지만 1권의 중반부로 넘어갈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그리고 끝나는 그 순간까지 처음의 호흡을 절대로 놓지 않고 계속해 간다. 이게 바로 작가의 힘이 아닌가 한다. 간혹 시작은 정말 좋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약해지는 작가들이 있는데 데니스 루헤인은 큰 굴곡없이 꾸준하게 밀고 나간다. 그래서 책을 놓는 그 순간까지 책을 처음 잡고 읽었을때의 흥미와 긴장감을 독자로 하여금 내내 지속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미스틱 리버는 영화로도 나왔는데 숀 역을 케빈 베이컨. 지미역을 숀펜. 데이브 역을 팀 로빈스가 맡았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이들을 모델로 대입시켜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영화를 진작에 보고 싶었지만 책을 먼저 읽느라 아직 보지 못했다. 오늘 책을 다 읽고 내가 한 일은 영화표를 예매하는 일 이었다. 책이 재밌다고 해서 영화가 재미있으리란 법은 없지만 클린튼 이스트우드(감독임)가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분명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었으리라 믿는다. 아. 그리고 번역자 최필원씨 역시 번역할때 저 세 배우를 마음에 두고 번역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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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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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마주치는, 정말 나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살았던 사람들 조차도 이제는 한마디씩 한다. '대체 결혼은 언제 할꺼니?'평상시에는 스치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다가 내 얼굴을 보고 그러고 나면 자동적으로 나이가 따닥 하고 떠오르나보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회사는 그대로 다니고 있는지 혹은 새로운 취미가 생겼는지는 왜 궁금하지 않을까? 그도 저도 아니면 모르는 척이라도 해주면 얼마나 고마워... 이제 나도 드디어 노처녀 대열에 합류하였고 드라마에서만 보던 소위 결혼에 대한 닥달 비슷한것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독신주의가 아니다. 그냥 뭐랄까 어떻게 어영부영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나란 인간이 원래 목표 같은거 세워놓고 으쌰 하며 살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노력같은걸 하지 않으면 늘 현재고 과거고 미래고 비슷한 삶을 살게 되어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나를 독신이라고 부른다. 하긴. 독신 아니면 살기 힘든 열 두평짜리 투룸에 살고 있으니 독신이라고 부득불 우긴다면 그런가보다 해야겠다.

배수아의 소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제목만 보면 꼭 무슨 연애소설 같다. 사랑해마지 않던 상대방을 어느날 용기있게 지겨워 하는것. 그러면서 차버리는 것. 그로 인해 그 혹은 그녀가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자기 혼자서 누리고 사는 것. 이것이 내가 제목에서 유추해낸 소설의 내용이다. 하지만 나는 완전하게 틀려버렸다. 소설책에는 서른 셋의 독신녀들이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나처럼 어영부영 하다가 이렇게 된 경우보다는 다들 이유가 있어서 결혼을 하지 않거나 혹은 보류중이다.

그런데 그녀들은 하나같이 좀 이상하다. 마치 대학이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여고에서만 멈춘것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점심시간이면 떡볶이를 파는 매점에 달려가고 화장실 가면 손 붙잡고 함께 발맞춰 가며 누가 누구와 더 친한걸로 울고 짜고 질투하고 등등등 온갖 치기어린 짓은 다 가능한 여고시절에서 그녀들은 한치도 더 자라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글 속의 주인공들에게는 화장실 함께 가 줄 정도의 우정도 자리잡고 있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과 탐욕으로 가득찬 모습을 보여준다. 그럴듯한 외모와 그럴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결혼하지 못한것에 대한 한심한 시선을 받지는 않지만 그녀들의 내면은 정말 한숨이 푹푹 나온다. 만약 서른셋의 내 모습이 저렇게 된다면 나는 정말 지나가는 아무 남자나 잡고 결혼해 달라고 애걸복걸 하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저렇게나 심술궂고 저렇게나 멍청하고 저렇게나 머리속에서 자갈이 굴러가는 소리가 남에게까지 다 들린다면 그냥 결혼해서 시선 받지 않고 노멀하게 사는게 더 나은거란 생각이 절로 드는 소설이다. 아마 약간이라도 독신을 생각하고 있던 어린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 무서워서라도 독신같은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심어 주므로 인해 출산율이 날로 떨어지는 우리나라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이 책은 독신들에 대한 편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저러니까 아직 시집을 못갔지'따위의 말이나 주억거리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독신으로 살지도 모르는 나 같은 인간에게는 불리하기 짝이 없는 소설이다. 누군가가 저걸 그대로 믿어버리고 독신 여자들은 서로 만나서 밥이나 먹을 뿐 누가 하나 자리를 비우기가 무섭게 씹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누군가가 나가면 나간 누군가를 또 씹는 뒷담화를 위한 모임이나 하는 작자들로 볼까봐 정말 두렵다. 그리고 독신들이 별 죄책감도 없이 그렇다고 즐기겠다고 이빨 콱 깨물지도 않았으면서 그냥그냥 유부남들을 만나는 대목을 보면 혈압이 오른다. 그녀들. 차라리 못되게 즐기기라도 했으면 나는 화끈하다며 용서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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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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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때는 나름대로 젊잖게 늙은 노인이 언제나 자신의 깔끔한 방에서 조용하게 연애소설을 탐미하는 소설이려니 하고 상상했었다. 아니면 아주 성질이 괴팍한 노인이 실은 연애소설을 좋아하는 멜랑꼴리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더라 하는 내용이거나 말이다. 하지만 이건 상상밖이다. 밀림과 정글속의 노인이라니... 연애소설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아마존에서 연애소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인이 연애소설을 읽으며 사는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연애소설은 상징적이다. 또 노인이 연애소설을 읽는 부분은 그것이 제목인 것에 비해서는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노인의 생활과 노인이 처한 현실이 더 리얼하고도 길게 묘사되어 있다.

처음에는 문명속에 살고 있던 노인은 결혼을 하고 밀림 속에서 땅을 개간할 모양으로 이주를 한다. 그러나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야만의 세계에서 그는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아내가 죽고 난 이후부터 그는 점점 더 원주민에게 동화되어 그들이면서도 그들이 아닌 자 로 살아가게 된다. 이런 그가 연애소설을 읽게 된 동기는 단순하다.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자신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고 자신에게 맞는 여러가지 책을 찾아보다가 결국 아릿하게 마음 저리는 연애소설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노인의 모양새나 노인이 사는 환경 어디에도 연애소설적인 요소는 없다. 그렇지만 노인은 연애소설을 열심히 읽는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큰 시련을 만나 방황하지만 결국은 사랑으로 그 모든걸 극복한다는 류의 연애소설을 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주를 이루고 있는 내용은 노인이 살고 있는 마을에 닥친 살쾡이의 공격이다. 자연을 훼손하는 것에 대해 아무 생각없는 인간들이 살쾡이의 새끼를 죽이자 살쾡이가 인간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이 책이 왜 그렇게 많이 읽혔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문명세계에서는 똑똑하고 잘났지만 자연의 질서에 대해서는 무지한 인간이 그 질서를 흐트리고, 문명세계에서는 비록 야만인으로 보이지만 자연의 질서나 그 속에서 살아남는 법에는 통달한 인간이 그 잘못을 고쳐나가는(끊임없이 앞의 인간이 얼마나 바보인가를 설명해 가면서) 류의 이야기. 이런 얘기들은 실제로 밀림이라고는 가볼일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무척 솔깃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 왜 그렇게까지 큰 인기를 끌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정도의 책은 얼마든지 넘쳐난다. 문명세계 인간들이 역겹게 그려지는 만큼 책 속의 야만인들은 신과 자연과 하나가 되는 자연인이자 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산지식으로 가득한 지혜로운 자로 그려지는 것은 흔한 얘기이다. 나는 별로 모험을 꿈꾸지도 않고 그런 것에 통달한 인간들을 존경하는 마음도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차라리 그냥 제목처럼 연애소설에 한껏 취해서 사는 노인의 이야기였더라면 더 좋았을것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정글에서 거친 삶을 살아가지만 그 마음속에는 로멘티즘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이 남아서 할리퀸류의 연애소설에 사죽을 못쓰는 늙은 타잔 얘기는 글쎄다. 별로 와닿지 않는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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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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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기억은 없지만 모 방송국에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 단막극 형태로 해 주데 거기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남자 주인공은 아마도 강남길씨 였었는데 억세게 운 나쁜 사나이의 하루를 그린 내용이었다.

김영하의 소설책은 나는 나를 파괴 할 권리가 있다와 검은 꽃 다음 이 책이 세 번째이다. 나는 나를...은 그저 그랬었단 기억이 있었고 검은꽃은 좋긴 했지만 뒷심이 좀 딸리는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아니 뒷심이 딸린다기보다는 꼭 종영을 앞둔 인기드라마들이 흔히 그렇듯 자신이 벌여놓은 스토리 수습이 되질 않아서 어떻게든 끝을 내야겠다고 작심한듯이 보였었다.

이 책은 단편집인데 총 9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단편별로 나누어서 감상기를 적어보겠다.

1. 사진관 살인 사건 : 한 사진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죽은 남자의 아내와 그의 정부를 의심했던 수사관은 끝에가서 사진관 남자가 외도를 하는 다방레지의 기둥서방이 홧김에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척 짧지만 나는 이 안에 남녀관계에 관한 모든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사진관집 여자와 사진을 맡기다가 관계를 가지게 되는 한 남자. 그들은 여자의 남편을 죽이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자신들의 불륜으로 인해 의심을 받게 될까봐 걱정한다. 혹시라도 나중에 밝혀지면 불리해질까봐 어느정도 자신들의 사이를 털어놓기는 하지만 마지막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지는 않는다. 특히 남자가 그런 상황에서 얼마나 비겁해 질 수 있는지를 잘 표현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아홉개의 단편중에 가장 재밌었다.

2. 흡혈귀 : 이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연장선상에 있다. 작가 자신이 직접 주인공이 되고 그 글을 읽은 한 여자가 편지를 보내오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픽션인지 넌픽션인지 일부러 경계를 모호하게 한 것이었는데 픽션이라고 생각하지만 왠지 넌픽션이라고 믿고싶은 소설이다.

4. 바람이 분다 : 불법 복제 디스크를 파는 남자가 어느날 여직원을 고용하게 된다. 사무실이 집이고 집이 사무실인 그곳에서 충분히 예견된것 처럼 둘은 연인사이가 된다. 하지만 여자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인물이다. 결혼을 한 것인지 다른 남자가 있는것인지 조차 이 여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왜냐면 주인공은 이미 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3.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아까도 언급했다시피 억세게 운나쁜 남자의 하루이다.

5. 피뢰침 :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자들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이다.

5. 비상구 : 아무 생각없는 스물한살짜리 남자의 한심한 인생얘기다. 별로 나쁘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얼마전에 읽은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도 이것 비슷한 단편이(단 주인공이 여자다) 있는데 두 가지가 꼭 셋트같다.

7.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 당신의 나무(9) : 이 두가지를 같이 언급하는 이유는 서로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 다 남자주인공이 여행을 하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보는 좀 정적인 소설이다.

8. 고압선 :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를 다시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여자를 사랑하면 할수록 점점 희미해지다 마침내는 투명인간이 되어 버린다.

끝으로 김영하의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할까 한다. 사랑얘기라고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몇몇개의 단편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사랑에 관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김영하가 그리는 사랑은 절대 아름답지 않고 가끔은 추하기까지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걸 보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할때 진짜 사랑도 그런것 같다. 사실 영화에서 보는 그런 아름답고 이쁜 사랑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사랑이야 말로 가장 치사하고 추잡스럽지 않나 싶다. 나는 김영하의 소설속에서 사랑이라는 환상이 사라지고 대신 현실이 징그럽게 앉았는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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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므 씨의 마지막 향수
퍼시 캉프 지음, 용경식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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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냄새에 민감한 편이다. 세상에는 좋은 냄새도 많지만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내가 그 많은 냄새중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냄새이다. 인공적인 냄새로 감추지 않은 사람의 살 냄새는 사실 그리 유쾌한게 아니다. 가끔은 인공적인 향으로 감추었음에도 체취가 너무 강해 엘리베이이터 안 정도는 쉽게 자신의 악취로 채우는 인간을 나는 진심으로 혐오한다. 그래서인지 냄새에 관한 책이면 뭐든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 엠므씨의 마지막 향수도 당연하게 냄새에 관한 책이였기 때문에 끌렸다.

책의 주인공 엠므씨는 나이가 지긋하다. 그러나 언제나 단정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고 정신도 맑다. 전직 스파이였던 만큼 머리도 그리 나쁘지 않고 말이다. 그는 자신의 완벽성의 끝을 언제나 머스크향(사향노루향.사향노루가 발정기가 되면 배꼽 근처에서 이 향을 낸다고 한다.)으로 마감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머스크 향수 제조회사가 다른 제품을 내어놓는다. 몇십년동안 써 왔던 그 머스크 향수가 아닌, 패키지가 바뀌고 진짜 사향노루 대신 인공물질로 향수를 만든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차이를 거의 구분하지 못하지만 수십년동안 써 왔던 엠므씨는 단박에 알아차린다.(여기에는 그녀의 정부 이브도 한몫한다. 여자들은 대게 자기 남자의 냄새에 민감해서 종종 외도의 흔적을 찾아내기도 하니까) 엠므씨는 최선을 다해 전에 자기가 늘 바르던 향수를 찾기위해 갖은 고생을 하지만 찾아낸 향수는 자기가 남은 생동안 쓰기에는 너무나 터무니 없이 적은 양이다. 그래서 완벽한 엠므씨는 향수가 떨어지는 상황을 맞이하지 않기로 한다. 자기가 구한 머스크향 만큼만 사는것. 그것이 엠므씨가 선택한 마지막이다.

세상에는 엠므씨의 이런 집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냄새란 무척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것도 만져지는 것도 아니지만 정신과 크게 연결된 것이다. 언젠가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사귀던 남자와 헤어진후 병원에 가서 후각을 없애달라고 한다. 전에 사귀던 남자와 같은 향수나 로션을 쓰는 사람이 자길 스쳐지나가면 죽고싶을만큼 우울해 진다고. 다른 모든 흔적은 다 지울수 있지만 그 냄새만큼은 지울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깊이 공감했다. 나역시 사람을 기억할때 거의 냄새로 기억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도 동물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그 어떤 더러운 동물 못지않게 냄새가 심각하게 날 것이다. 그러나 아침 저녁으로 최소한 샴푸 비누정도는 향이 첨가된 제품을 쓰기 때문에 그나마 어느 정도는 가려지는 것이고 의복에도 섬유유연제를 부어서 세탁하고 화장을 하고 마지막으로 향수를 뿌리기 때문에 그 냄새는 거의 가려진다.

엠므씨가 집착해 마지 않는 머스크향은 나 역시 몹시 좋아하는 향이라서(머스크향은 대게 남자 향수 원료로 쓰이는데 그건 여자들이 가장 호감을 가지는 냄새라서 그렇다고 한다.)몇년째 머스크향의 바디클렌저와 비누를 쓰고 있다. 그리고 여름에는 사향 파우더를 몸에 뿌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향수를 애용하는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다른 모든것에는 아낀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몸에서 좋은 냄새게 나게하는 일에만큼은 인색하지 않다. 그 예로 엠므씨의 마지막 향수라는 책을 읽자마자 그 책 표지와 같은 색인(겉에는 노란색이지만 벗기면 빨간색이다.)빨간색 캘빈 클라인 이터니티 로즈 블러쉬를 샀다. 한정생산이라 그 값이 결코 만만치 않았는데도 말이다.

냄새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혹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단. 향수보다는 좀 극적재미가 덜하다. 향기도 없는 어린 그루누이가 커서 살인자가 되는것 보다 이미 늙어있는 엠므씨가 향수때문에 죽는 얘기는 사실 게임 자체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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