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쩌다 마주치는, 정말 나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살았던 사람들 조차도 이제는 한마디씩 한다. '대체 결혼은 언제 할꺼니?'평상시에는 스치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다가 내 얼굴을 보고 그러고 나면 자동적으로 나이가 따닥 하고 떠오르나보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회사는 그대로 다니고 있는지 혹은 새로운 취미가 생겼는지는 왜 궁금하지 않을까? 그도 저도 아니면 모르는 척이라도 해주면 얼마나 고마워... 이제 나도 드디어 노처녀 대열에 합류하였고 드라마에서만 보던 소위 결혼에 대한 닥달 비슷한것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독신주의가 아니다. 그냥 뭐랄까 어떻게 어영부영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나란 인간이 원래 목표 같은거 세워놓고 으쌰 하며 살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노력같은걸 하지 않으면 늘 현재고 과거고 미래고 비슷한 삶을 살게 되어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나를 독신이라고 부른다. 하긴. 독신 아니면 살기 힘든 열 두평짜리 투룸에 살고 있으니 독신이라고 부득불 우긴다면 그런가보다 해야겠다.

배수아의 소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제목만 보면 꼭 무슨 연애소설 같다. 사랑해마지 않던 상대방을 어느날 용기있게 지겨워 하는것. 그러면서 차버리는 것. 그로 인해 그 혹은 그녀가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자기 혼자서 누리고 사는 것. 이것이 내가 제목에서 유추해낸 소설의 내용이다. 하지만 나는 완전하게 틀려버렸다. 소설책에는 서른 셋의 독신녀들이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나처럼 어영부영 하다가 이렇게 된 경우보다는 다들 이유가 있어서 결혼을 하지 않거나 혹은 보류중이다.

그런데 그녀들은 하나같이 좀 이상하다. 마치 대학이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여고에서만 멈춘것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점심시간이면 떡볶이를 파는 매점에 달려가고 화장실 가면 손 붙잡고 함께 발맞춰 가며 누가 누구와 더 친한걸로 울고 짜고 질투하고 등등등 온갖 치기어린 짓은 다 가능한 여고시절에서 그녀들은 한치도 더 자라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글 속의 주인공들에게는 화장실 함께 가 줄 정도의 우정도 자리잡고 있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과 탐욕으로 가득찬 모습을 보여준다. 그럴듯한 외모와 그럴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결혼하지 못한것에 대한 한심한 시선을 받지는 않지만 그녀들의 내면은 정말 한숨이 푹푹 나온다. 만약 서른셋의 내 모습이 저렇게 된다면 나는 정말 지나가는 아무 남자나 잡고 결혼해 달라고 애걸복걸 하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저렇게나 심술궂고 저렇게나 멍청하고 저렇게나 머리속에서 자갈이 굴러가는 소리가 남에게까지 다 들린다면 그냥 결혼해서 시선 받지 않고 노멀하게 사는게 더 나은거란 생각이 절로 드는 소설이다. 아마 약간이라도 독신을 생각하고 있던 어린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 무서워서라도 독신같은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심어 주므로 인해 출산율이 날로 떨어지는 우리나라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이 책은 독신들에 대한 편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저러니까 아직 시집을 못갔지'따위의 말이나 주억거리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독신으로 살지도 모르는 나 같은 인간에게는 불리하기 짝이 없는 소설이다. 누군가가 저걸 그대로 믿어버리고 독신 여자들은 서로 만나서 밥이나 먹을 뿐 누가 하나 자리를 비우기가 무섭게 씹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누군가가 나가면 나간 누군가를 또 씹는 뒷담화를 위한 모임이나 하는 작자들로 볼까봐 정말 두렵다. 그리고 독신들이 별 죄책감도 없이 그렇다고 즐기겠다고 이빨 콱 깨물지도 않았으면서 그냥그냥 유부남들을 만나는 대목을 보면 혈압이 오른다. 그녀들. 차라리 못되게 즐기기라도 했으면 나는 화끈하다며 용서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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