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인생 참 더럽게 안 풀리는 두 남자가 있다. 한명은 갓 스무살된 청년 그리고 또 한명은 사십줄에 접어든 중년의 남자. 그들은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인생이 엿같다는 점에 대해서는 오십보백보이다. 그런 그들이 복싱으로 다시 일어서려고 한다. 이미 똥밭에 굴러버린 자신의 인생을 다시 주먹으로 씻어 내려고 한다.

86 아시안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트였지만 마음만 좋아서 선배에게 돈 비려주고 후배에게 보증서다가 망한 강태식(최민식). 아들과 아내를 남겨두고 그는 길 한복판에서 인간 샌드백이 되어서 산다. 어느날 우연히 TV전파를 타게 되자 빚쟁이들이 몰려들고 그의 인생은 더더욱 꼬인다. 거기다 인간 샌드백이 된지라 몸도 좋지 않다. 어떻게든 아들과 아내와 다시 잘 살아보려고 하지만 세상은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이제 그의 희망이라고는 권투 신인왕전에서 우승을 하는 것 뿐이다. 깡만 남은 강태식. 나이 사십줄에 그가 온몸을 던져서 신인왕전에 도전한다.

경찰인 아버지와 할머니가 가족의 전부인 유상환(류승범) 그는 동네 양아치로 주차된 차에서 카오디오를 훔쳐 팔거나 동네에서 빌빌대는 아이들의 돈을 삥뜯고 산다. 그러다 싸움판에 휘말리고 합의를 보자는 상대측의 요구에 돈을 마련하고자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큰거 한방이다. 그러나 지지리도 운이 없는 상환은 그 일로 인해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다. 자신 때문에 늙은 아버지는 경찰옷을 벗고 노가다를 하다가 그만 사고로 죽고 몸이 아픈 할머니도 무리를 하다가 병원신세를 지게 된다. 상환은 아버지의 무덤에라도 가기 위해, 그리고 할머니의 병원에 가기 위해 우연히 소년원에서 시작한 복싱에 목숨을 건다. 젊다는것 하나 빼고는 인생 참 죽도록 안풀리는 상환은 죽기 살기로 권투 신인왕전에 도전한다.

영화는 이들 두 사람을 교차편집해서 보여준다. 태식이 엿같은 일을 겪으면 뒤이어 바로 상환이 또 깝깝한 상황을 겪고 다시 태식이 더럽게 안풀리는 인생을 보여주면 상환은 지지리도 안되는 인생을 보여준다. 그러다 그 둘이 신인왕전에서 만난다. 태식은 태식대로 상환은 상환대로 이 신인왕전에서 꼭 이겨야 한다. 태식은 아들과 아내와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 상환은 아픈 할머니를 돌보고 이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이 경기에서 승리하는것 외에는 답이 없다. 어딜봐도, 누구편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다.

영화 제목은 주먹이 운다이지만. 실은 이 두사람의 인생이 정말 울고싶은 판국이다. 어쩌면 그렇게 뭘 해도 다 안되는지. 거기다 능력과 실력이 없으면 운이라도 따라줘야 하는데 이들은 재수까지 없다. 뒤로 자빠져도 코깨지는 인생에서 이제 마지막으로 그들이 희망을 거는건 복싱이다. 이기면 좋겠는게 아니라 죽으면 죽었지 질 수 없는 시합니다. 어쩌면 이 두사람이 함께 시합에 붙은거야 말로 이들의 인생이 엿같음의 클라이막스다. 하필이면 붙어도 그런것들 끼리 붙는다. 관객은 흔히 영화에서 나오는 시합에서의 편가르기가 전혀 되지 않는다. 태식이도 상환이도 전부 불쌍하다. 그래서 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시합이란건 누가 하나 이기려면 누구 하난 져야 한다.

류승완 감독은 이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그의 장기인 액션씬 끝장나게 찍기는 증명한바 있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그의 실력은 발군의 빛을 발한다. 거기다 이들의 인생을 잡는 화면도 전혀 따뜻하거나 세련되지 않다. 마치 화면가득 진흙탕물이라도 튀긴듯 거칠고 빡빡하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뭐니뭐니 해도 이 두 사람의 대결장면. 하지만 류감독 여기서 약간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다. 영화내내 하던 교차편집을 하고 또 하고, 거기다 그 감동적이고도 뻔한 음악이란. 절정은 라스트 씬이다. 둘은 각자의 가족을 껴안고 부비고 눈물흘린다. 물론 당연히 그래야 하겠지만 화면을 반 딱 나눠서 보여주는 그것은 여태 이들을 동정했던 관객들을 냉정하게 만든다. 아무리 당연한 감동이라 하더라도 주는 입장에서 너무 신파로 나가버리면 한발짝 물러서게 된다.

이 영화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류승완이 이젠 타협을 했다느니 본인의 스타일을 잃어버렸다느니. 하지만 나는 그라도 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마니아층이 열광을 하면 뭣하나. 영화는 한두푼이 드는 작업이 아니다. 거기서 투자자를 받고 영화를 찍어 개봉을 하려면 대중성이 있어야 한다. 처음에야 그저 영화를 하고싶은 마음에 사비털고 개런티 안줘도 되는 지 동생을 시켜서 찍는게 가능했었겠지만 그라고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어떻게 타협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까지 류승완 감독은 비교적 잘 해 나간다. 하지만 막판에 이르러 그는 정말로 감동을 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압박감을 느낀것 같다. 투자자가 원했는지 영화사 사장이 원했는지 아니면 감독 그 자신이 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되었건 영화는 상당히 진부해져 버린다. 류감독이 조금만 더 자기 스타일을 지켜나갔다면. 그래서 끝부분에서 조금만 더 해오던대로 했으면 훨씬 좋을뻔 했는데 아쉽다. 그러나 욕을 할 생각은 없다. 그가 감독이기 이전에 예술가이기 이전에 먹고 살아야 하는 인간이다. 품위 유지도 해야하고 이제 전국에서 영화 개봉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주먹이 운다에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것이 바로 류승완의 친동생 류승범의 연기이다. 처음에야 싼맛에 형이 얼러서 시작을 했는지 어쨎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는 완전히 연기에 물이 올랐다. 최민식이라는 거물과 붙어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 청년. 정말 사랑스럽지 않을수가 없다. 그저 개성있는 조연 정도나 겨우 할 만한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연기 하나로 주연자리를 꿰어 차니 어찌 예쁘지 않겠는가. 그저 얼굴 반반한거 빼고는 시선처리 안되, 대사 안되, 몸 뻣뻣한 잡껏들 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최민식이 앞으로 나이들면 류승범이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무섭다고 했는데 충분하게 이해가 간다. 지금도 저런데 최민식정도의 관록이 붙으면 대체 류승범은 얼마나 더 귀신같이 연기를 잘 할 것인가. 최민식이라는 대 배우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고 스크린에 자신의 공간을 마련하는 배우. 이 영화는 그의 영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자꾸 보니 류승범도 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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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04-19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보니까 몸도 좋더라구요.. 으하하하하~
쓰읍.. -_-;;

플라시보 2005-04-1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낡은구두님. 그러게요. 원래는 몸이 그렇게까지 좋은편은 아니었는데 이번에 운동을 좀 한 모양이더라구요. 벗었는데 아주 그냥...흐흐^^

픽팍 2005-04-20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그렇게 좋게 본 건 아니지만 류승범의 연기 만크은 정말 흠잡을 데가 없더라구요;;오히려 최민식의 연기가 좀 밀린 듯한 기운까지 느꼈다니까요;;
글고 보니 이영화도대구 롯데 시네마에서 친구가 생일이라고 보여준 기억이 나네요
물론 이 영화 신파이긴 하지만 수애랑 주현 주연의 가족 만큼 짜증 확 솟구치는 정도의 신파는 아니라서 많이 다행이라고 생각은 합니당ㅋㅋ강추는 아니지만 살짝 추천 살추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네요

마태우스 2005-04-20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들면 로버트 드니로가 되지 않겠습니까...

플라시보 2005-04-2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픽팍님. 그죠? 정말 류승범 연기는 거의 소름이 끼치도록 멋졌습니다. 아. 롯데 시네마에서 보셨군요. (전 거기서 영화 본적이 한번도 없네요. 왜 그랬지? 흐흐)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보고 얼마 안되어서 저 영화를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요즘 내가 부쩍 권투를 좋아하게 된건가? 흐흐. 예전에 아빠가 권투시합 보면 그 옆에서 다른거 보거나 놀아달라고 징징거렸었는데..^^ 님 말마따나 강추는 아니라도 살짝 추천정도는 됩니다. (살추란 말 너무 귀여워요^^)

마태우스님. 그러게요. 아마 나이들면 그런 대 연기파배우와 나란히 할 수 있는 연기력을 가지게 될 것 같습니다.

비연 2005-04-20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배우들 덕분에 빛났었죠. 끝 장면의 최민식과 아들은 '챔프'를 모방한 듯한 기분도 들었긴 하지만...암튼 연기는 끝내 주었던 것 같습니다..^^

플라시보 2005-04-20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그러게요. 최민식도 류승범도 어찌나 연기를 잘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