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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를 키워주는 회사는 없다
박성희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별로 읽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책이 있었다면 첫째는 돈 벌게 해준다는 책이었고 둘째가 바로 이런 책. 즉 처세술이었다. 짧은 생각에 책 하나 읽어서 돈 번다면 누가 돈을 못 벌것인가 했었고, 처세술 책을 읽어서 처신을 잘 할 수 있을것 같다면 누가 조직에서 밀려나고 인간관계를 잘 못하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 바뀌었다. 물론 돈을 버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나 처세술을 다룬 책 한두권으로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서 단 하나라도 몰랐던 것을 건진다면 그걸로 가치가 있는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감히 책 한권으로 돈을 벌기를, 그리고 대단한 처세술을 배우길 바란다면 그거야 말로 억지일 것이다.
이 책에 관심이 갔던 이유는 제목이 공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공주를 키워주는 회사는 없다.' 내가 아는 한 여자들은 잠제적으로 공주가 되고픈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게 현실화 되는 순간은 결혼식장이다. 웨딩드레스에 면사포에 꽃에... 가만 보면 결혼하는 여자는 단 하루동안 공주가 된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그리고 인정받고 보호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어림도 없다. 여자라서 미움받고 평가절하되며 공격의 대상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아직도 회사는 여자를 꼭 필요한 인재를 뽑는다는 마음으로 뽑지 않는다. 그저 구색을 맞추려고 혹은 남자만 있으면 썰렁할까봐 등등의 이유로 크게 일이 많지 않고 언제든지 없앨 수 있는 직급에서만 여자를 뽑는다. (안그런 분야도 있지만 그건 상담원, 안내원등의 한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아무리 정신 못차리는 신입이라 해도 회사에서 공주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겠지만 아까 말한것 처럼 공주의 의미가 인정받고 사랑받고 보호받는 정도라고 볼때. 우리는 분명 회사에서 공주가 되길 바랬고 나 역시도 그랬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조직사회에서의 처세술이 존재한다. 그건 그만큼 조직사회에서 멀쩡히 살아남기가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허나 이 책이 반가운 것은 회사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것이 아닌 회사를 다니는 여자들을 상대로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남녀가 평등하니 다를바 없니 해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앉아서 오줌을 누는 존재들은 자기네들 보다 한참은 아래라고 생각한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현실이 그러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아직까지 사회생활에서는 분명 여자는 약자이다. 간혹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여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녀들을 다루는 매스컴의 기사를 한번 잘 보길 바란다. 그녀가 어떤 일을 하는가 보다 오늘 두르고 나온 스카프의 색이 야했다는둥. 메이컵이 진했다는둥의 소리만 해댄다. 남자 고위직에게 넥타이가 야했다는둥 구두가 너무 번쩍여서 눈아팠다는둥 하는거 봤는가. 아니다. 여자에게만 한다. 그렇다면 이런 공평치못한 세상에 여자로 태어났음을 한탄해야 할까? 뭐 잠깐은 할만 하다만 계속 한탄하고 앉았다고 될 일은 없다. 그 시간에 이런 책을. 그래 여자는 분명히 차별받고 있고 내가 그 차별을 앞장서서 타파할 그릇이 못된다면 일단은 그 조직에서 납짝 엎드려 살아남고 보자 라는 책을 읽는게 훨씬 낫다.
나는 처음 직장인이 될때 무척 원대한 꿈을 꿨었다. 실력으로는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체력도 남자 못지 않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회사는 나에게 실력이나 체력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난척하고 뻣뻣하고 말 잘 안듣는다고 재수없어 할 뿐이었다. 처음부터 나 따위의 실력이나 체력 같은건 관심도 없는데 나 혼자서 그걸 내 장점이라 생각하며 홀로 뿌듯해한 것이었다. 나에게 요구되는건 그런게 아니었다. 아침에 상냥한 미소로 커피를 타 주고 봄이면 알아서 화사하게 입어주고 회식자리에서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이걸 타이핑하는 지금도 저런 일을 생각하면 부들부들 떨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게 현실이었다. 나는 여직원이라기 보다는 전문직 종사자였으나 내게 요구되는 것은 여직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니 보통 여직원들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불퉁했고 불만을 토로하고 사표를 쓰고싶어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견딜꺼 조금 더 영악하게 굴어서 편하게 견딜껄 싶다. 그리고 그 방법을 알려주는게 이런 책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단점이라면 각 제목별로 너무도 짧은 예를 들어놓았다는 것이다. 차라리 책의 단원을 좀 줄이더라도 한가지 제목에 충실하게 여러가지 예를 들거나 했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많은걸 다루려고 과욕을 부린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분명 배울점은 있다. 사회 초년생이건 나처럼 직장생활을 할만큼 한 여성이건 한번쯤은 읽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신랑감을 만나 결혼할때 까지만 회사를 다닐꺼에요. 한다면야 읽을 필요가 없겠지만 쫒겨나지 않고 내가 관두고 싶을때까지 일을 할 작정이라면 알아두어야 할 여러가지 처세술들이 등장한다. 처세술은 별거 없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을 약간 다르게 보게 하는, 혹은 다르게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처세술도 그대로만 하면 부장, 사장, 회장을 보장해주는 처세술은 없다. 여태까지 내가 진리라고 굳건하게 믿었던 것들이 때로는 아닐수도 있구나를 알게 하는것. 그게 이런 책의 존립이유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