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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복형제들
이명랑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코메디언 중 박수홍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게 3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다른건 기억이 나질 않고 그 중 하나가 '가난' 이었다는 것이 기억난다. 나는 연예인 중에서 누구도 그 처럼 그렇게 가난이라는 것을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하지만 그 무게만큼은 충분하게 인정을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를테면 연예인의 가난이란 것은 최진실양의 김치 수재비 처럼 조금은 신파적인 분위기를 내기 마련인데 박수홍이란 사람은 잘은 몰라도 충분할 정도로 가난 해 보았으며 적어도 앞으로는 가난하지 않게 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어제밤 빗소리에 잠이 깨서 케이블 체널을 돌리다가 노숙자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타리를 봤다. 0.7평의. 흔히 쪽방이라고 불리우는 공간에서 가족까지 이루며 사는 사람들 (한 부부는 간난쟁이가 있는것도 부족해서 둘째를 임신 한 상황이었다.) 을 보았다. 사실 나는 가난이 죄는 아니라던가. 가난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라는 말에 동조하지 못하겠다. 내가 본 가난은 모두 죄였으며 분명 부끄러웠다. 뭐 찢어지게 가난하면서 가족을 이루고 거기다 아이까지 낳는 사람들을 나는 돌을 맞을 망정 혐오한다. 생명이란 다 소중한거고 세상에 태어나서 어떤 훌륭한 인물이 될지 모른다고? 출발선상부터 0.7평 쪽방에서 시작한 아기가 얼마나 잘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이 한 20년 전이기만 해도 가능하다. 그때는 정말 가난해도 죽으라고 들고 파고 노력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꿈을 이룰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남들 학원다니고 과외다니는걸 자기 노력만으로 따라 잡는건 내 생각에 천재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하게 태어나면 신께서 불쌍히 여겨 천재로 태어나게 해 주시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혼자 가난한것도 모자라서 자식에게까지 대물림을 하고. 자기 몸 만큼, 아니 어쩌면 자기 몸보다 더 귀할 그 자식을 출발선상부터 남들보다 10km는 족히 뒤에서 출발시키는 것. 나는 그게 사랑인지 뭔지 정말로 잘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가난에 대해 주절주절 길게 얘기한 이유는.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이들이 쪽방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두 가난하고 남루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 시장통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 난 사실 그런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오로지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겪고 있는 저마다의 가난이었다. 사람들에게 쥐어터지고 밤에 잠도 못자며 일을 부려먹어도 다 떨어진 운동화 한켤레 사 신을 돈이 없는 인도 노동자 '깜댕이'. 남편에게 죽도록 얻어맞으면서 다방 레지를 하는. 그러면서도 탈출을 꿈꾸기에 2만원 3만원에 몸을 파는 중국 여자 '머저리'. 온 몸이 굳어가는 병을 앓으면서도 TV시청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협동합시다 아저씨에게 몸을 내어주되 그것마저 임의롭지 못해 입으로 정액을 받아야 하는 '춘미 언니' 거기다가 무당인 엄마에 이어 신이 내릴뻔 한 것을 피해. 아버지의 말처럼 '영원히 멀리 도망' 간 곳이 하필이면 시장통이며, 협동합시다 아저씨의 배려로 밤에는 인도 노동자 '깜댕이'와 함께 냉동창고가 있는 지하실에서 자고 낮이면 과일상회에서 과일을 팔고 하루 3천원을 받는 주인공 '영원' 이들의 공통점은 가난하지만 선량한 도 아니고 가난하지만 꿈이있는 도 아니며 그저 가난한. 그것도 정말 최하위 5% 안에 들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작가 이명랑은 자신이 자란곳이 시장이었고 (전작 삼오식당이 그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밝혔듯) 그 시장통의 온갖 인간군상들을 다뤄보고 싶은 원대한 꿈 내지는 목표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비춰진 것이라고는 그들의 너무도 확실한 가난 그것 뿐이었다. 전작 삼오식당에서는 그래도 가난이라는 것 만으로는 다 묶여지지 않은 (즉 그렇게 까지 가난하지는 않은) 인간 군상들이 존재했었는데 이 작품은 뭐라 더 입도 떼기 힘든 가난과 남루 거기다 비참의 비빔쑈가 펼쳐진다. 읽는 내내 인간이 정말 이렇게까지 해서도 살아야 하는가. 속된 말로 혀라도 확 깨물거나 접싯물에 코라도 박지 않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더 떨어질곳 없는 곳 까지 떨어지면서도 살아서 숨쉬고 먹고 자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인간도 결국 동물이고 동물은 짐승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뭔가 생각하고 표현할 줄 알며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우는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존엄성 같은건 스스로 지켜야 하지 않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살기 위해서 누군가의 흙뭍은 구두를 혀로 핥았다 따위의 스토리는 내게 전혀 감동이 아니다. 거기서 나는 인간의 질긴 생명력을 느낀다기 보다. 인간의 비루함과 비겁함을 느낀다. 죽음이 아니라면. 살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악취나고 모멸스런 짓 마저도 끝끝내 다 해치울 수 있으며. 그게 당연하다는 식의 얘기들을 접할때 마다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이 밀려든다.
이 책에서 중국인 '머저리'는 주민등록증을 따기 위해. 자신을 다방 레지로 부려먹고 또 날마다 두들겨 패며 인간취급을 해 주지 않는 한국인 남자를 견딘다. 거기다 잔인하게도 그녀는 희망 씩이나 품는다. 시장통의 사내들에게 2만원 3만원에 몸을 내어주면서 그 돈을 챙긴다. 남편에게 들켜서 흠씬 두들겨 맞고서도 만원만 가지고 어떻게 해 보려던 남자를 찾아가서 남편에게 이른다고 말해 기여이 만원을 더 받아온다. 비록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으로 설정을 해 두었지만 나는 그녀가 나오는 대목을 '그냥 소설이며 더구나 한국 사람도 아니래잖아' 하며 넘길수가 없었다. 왜냐면 나도 같은 여자이고. 동조하지는 못할 망정 여자의 마지막 수단은 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몸을 자기 맘대로 할 권리. 그리고 지킬 권리도 가난하지 않을때의 얘기인 것이다. 그 기본적이고도 당연한 권리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가난' 이라는걸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이들의 가난에 너무 물려버려서 다른건 생각도 안난다. 그리고 영원이라는 여자아이의 캐릭터가 너무 비현실적이며 그녀의 과거 또한 급히 끼워맞춘. 마치 가난한 농부에게 시집온 촌색시의 장농안에 든 색동이불처럼 들떴다는 것도 별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이들이 정말 미치도록 가난했고 그들의 삶이 시장통이었다는 것. 그래서 나는 더더욱 시장에 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전부이다. 그 만큼 이 책에 등장하는 '가난'의 아우라는 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