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부드러움의 이야기
무라카미 류 / 한뜻 / 1997년 9월
평점 :
품절


여동생이 서울에서 내 집에 올때면 꼭 책을 한권씩 빌려간다. 그래서 여동생은 내 집을 명절 도서관이라 부른다. (대게는 명절날 내려온다.) 늘 내게서 책을 빌려가던 여동생은 어느날 이 책을 권했다. 구입하기 위해서 알라딘을 비롯해서 오프라인 서점까지 뒤졌으나 이 책은 그 어디에도 품절이라는 딱지만 달고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내 서재 페이퍼에다가 호소를 했고 진/우맘이란 아이디를 쓰시는 알라디너가 책을 보내 주셨다. (이자리를 빌어 다시 감사드립니다.)

한때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미쳤었고 여동생은 무라카미 류에 미쳤었다. 내가 하루키에 미친 이유는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때문이었고 여동생이 무라카미 류에게 미친 이유는 코인로커 베이비스 때문이었다. 나도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스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었다. 하지만 그 이외의 류의 책들은 뭐랄까. 나로써는 도저히 따라갈수 없는 책들이었다. 감정적으로 이해도 가지 않았으며 읽고 나면 뭔가 머릿속이 끈적한것이 꼭 본드를 쏟아놓은것 같았다.

우울과 부드러움의 이야기 역시 읽고 나니 머릿속이 끈적거린다. 류의 책 답게 역시나 헤시시와 엑스터시와 코카인과 가학적 섹스와 학대와 마조히스트가 난무한다. 솔직히 다 읽고 나서도 대체 뭘 말하려는 것인지를 잘 모르겠다. 그냥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거의 죽을때까지 접해보지 못할 위에 나열한 단어들과 함께 뒹굴며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의 감상 뿐이다.

책의 대강 줄거리는 이러하다. 미치코라는 여성이 뉴욕에서 홈리스로 산적이 있는 야자키를 인터뷰하게 된다. 야자키라는 자는 흔히 홈리스들이 그렇듯 돈이 없어서 홈리스가 된건 아니다. (홈리스가 된 이후에도 지갑에는 아멕스 골드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레이코라는 여성을 잊지 못해서 잠깐 홈리스가 되었으며 현재는 돈 많은 독립영화 제작자이다. 미치코는 야자키를 인터뷰 하면서 점점 그에게 성적매력을 느끼게 된다. 야자키는 자기가 사귀었던 레이코와 게이코라는 여성과 어떻게 코크를 흡입하고 가학적 섹스를 했으며 얼마만큼의 샤토 무통을 마치 에비앙 마시듯 마셔댔는지를 얘기한다. 향정신성 의약품은 손도 대보지 않았으며 지극히 평범한 성생활을 하고 샤토 무통처럼 비싼 와인은 마셔보지 못한 나로써는 그것들이 어떤 것인지 상상도 가지 않지만 아무튼 미치코는 그를 점점 좋아하게 된다. 그러다가 인터뷰 마지막날 야자키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책에서 말 하려는 것은 상대방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중 상대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정보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긴 나도 나보다 엄청나게 똑똑하거나 잘난 남자를 보면 은근히 끌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량이며 또 사회에서 인정 가능한 정보이지 야자키처럼 각종 마약과 온갖 섹스에 관한 정보는 아니다. 그런데 미치코라는 멀쩡한 엘리트 여성은 야자키가 전에 사귀었던 레이코와 게이코라는 여성을 학대했던 얘기를 들으며 그에게 반해버린다. 그리고 마침내는 야자키에게 레이코나 게이코보다 훨씬 더 심한 정도의 학대를 받을것을 알면서도 그를 따라 나선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여동생에게 대체 왜 이 책을 권했느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아까부터 계속 통화중이라서 연결이 되질 않는다. 그녀는 이 책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참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코인로커 베이비도 결코 노멀한 스토리의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읽을만 했었는데 이 책을 비롯한 류의 다른 책들은 참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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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7-2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홈리스의 경험이 여자에게 어필할 수도 있군요.

클리오 2004-07-22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대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정보량에 끌린다... 저도 동의합니다. 저는 늘 저에게 지적인 열등감을 주는 약간 삐딱한 사람들에게 홀딱 넘어갑니다. ^^(그래서 도도한 그넘들 땜에 늘 질질끌려다니며 힘들답니다. 흑...)

플라시보 2004-07-22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단 홈리스라 하더라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골드카드를 가지고 있어야 하겠죠? 흐흐.

clio님. 저도 그런 성향이 다분히있습니다.^^ (벗뜨.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서는 약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흐흐^^)

sweetmagic 2004-07-23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감 !!
처음에는 무지하게 땡기는데 샅샅히 낱낱히 간파하고 보면 별거 아닐 때가 더 많더군요.
고런 식으로 삐딱한 사람들 파헤치면 열등감에 허덕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진짜 조심해야 항 지적 덩어리들은 웃는 모습 있더군요. 대신 속으로 삐딱하게 웃구요....
- 물론 극히 제 개인적인 경험에 국한된 얘기 입니다-

a 2004-08-07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후후후후후후후훗.

플라시보 2004-08-08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웃지만 마시고 이 책을 권하신 이유나 한번 말씀 해 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