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가 DVD로 출시된다면 구입을 할지도. 그만큼 이 드라마는 내가 최근들어 가장 재미있게 (라고 말하기에는 김하늘이 나온 그 드라마도 만만치 않았다만) 본 드라마였다.  

노희경의 드라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 폐인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 부터. 분명 노희경 드라마에는 폐인이라 불리울 만한 마니아들이 존재했었다. 물론 드라마 작가로서는 마니아 드라마라는 다소 시청률과는 무관한 인기가 좋을수만은 없겠지만 늘 비슷비슷한 것들의 향연인 TV드라마 속에서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어필하는 드라마가 존재한다는 것은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 없다.  

일단 예전의 노희경 표민수 표 드라마가 얼마나 재미있고 좋았는지에 대한 얘기는 접어두겠다.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그 콤비의 드라마 중에서 이 드라마가 가장 좋았으니까.  

이 드라마에서는 시작 초 부터 송혜교에 대한 연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말해서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물론 그녀는 연기력에 비해. 그리고 활동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면이 없잖아 있다. (그리고 그 과대평가는 정말이지 너무 이뻐버려서인거지) 순풍 산부인과에 나올때만 해도 송혜교는 예쁘장하고 통통하고 말 빨리 하는 신세대 탈렌트 정도였는데 가을동화와 올인 같은 작품 덕택에 갑자기 대스타로 둔갑하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애초부터 그녀에게 엄청난 연기력을 기대하지 않았다. 활동 기간은 길었지만. 스스로 조용히 쌓아올리는 시간을 주지 않은건 어쩌면 대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녀에게 연기력 보다는 그 예쁜 얼굴을 비추는 것으로 만족했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여기에서 송혜교가 특별히 드라마에 누가 될 만큼 연기를 못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사정들을 이래저래 봐 주지 않아도, 여기에서의 송혜교는 귀여운 구석과 독한 구석. 그리고 냉철했다가 와르르 무너지는. 그러니까 드라마 여주인공으로써는 꽤나 다채로운 내면을 소유하고 있는 여자 역할을 그럭저럭 잘 했다고 본다. 첨부터 끝까지 착하고 지고지순하기만 하면 되는 겨울연가라던지. 그저 곰 세마리 부르면서 귀여움만 떨어도 다들 잘 봐줬던 풀 하우스에 비해. 여기서 그녀가 하게 된 주준영이라는 여자는 현실에서 살고있는 우리들 만큼이나 갈팡질팡하는 여자가 아닌가 말이다.  

연기력 논란이라면 나는 오히려 현빈에게 그 혐의점을 발견했다. 현빈은 알다시피 그리 길지 않은 경력에 비해 연기를 잘 하는 연기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의 현빈은. 늘 그랬던건 아니지만 때로는 너무 정형화되고 구태의연한 연기를 보여줬다. 캐릭터를 너무 모범적으로 분석해서인지 아니면 연기 좀 했다 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쪼' 가 붙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에서의 그는 내내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였었다. 자꾸만 인위적으로 느껴졌고 어쩐지 이 역할을 버거워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했다. 물론 극중 역할이 송혜교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이중적인 면을 갖고 있고, 그걸 겉으로 드러내는 편인 주준영에 비해 그가 맡은 역은 보여지는 자신과 실제의 자신이 꽤나 다른 캐릭터이긴 하다만. 어쩐지 그것 만으로는 핑계를 대기가 부족해 보인다.  

이왕 연기력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조연들의 승리이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의 대외적 주인공은 송혜교와 현빈이지만 나머지 인물들에게도 주연 만큼의 무게가 실려있다. 그 점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이다.) 말이 조연이지 이들은 전혀 조연스럽지가 않다. 주연을 위해 억지로 짜 맞춰진듯한. 주인공을 위해 한없이 희생하거나 아니면 이유도 없이 주인공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드라마용 성격파탄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배종옥의 경우. 그녀의 재발견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이 드라마에서는 매력적이었다. 우리나라 여배우들은 나이들면 갈길이 딱 두 가지이다. 그다지 예쁘지 않고 연기에 치중한 배우인 경우에 맡게 되는 역할은 주인공의 엄마나 아줌마.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스스로는 물론 대중도 인정하지 않을만큼 놀랍도록 젊은 외모를 유지하면서 드라마보다는 CF에 치중하면서, 어쩌다 한번씩 굉장히 비싼 출연료를 받고 자기 나이보다 훨씬 어린 역할을 하는 것. 사실 이 드라마에서 배우 역인 배종옥 역시 후자 까지는 아니지만 지 나이를 망각한채 젊고 이쁜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여자로 주변인들에게 비춰진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이 여자에게는 삶이, 일이, 사랑이 있었고. 또 제일 중요한 진심이 있었다.  

극중에서 멋있다라는 말을 가장 자주 듣는만큼. 이 드라마에서 배종옥은 끝내주게 멋있게 나온다. 보톡스를 맞았는지 자가 지방을 이식했는지 아무튼 주름하나 없이 놀랍도록 젊고 예뻐서가 아닌. 그녀는 정말 말 그대로 멋있는 여자였다. 극중 캐릭터를 위한 과감한 의상과 큼직한 악세사리를 그녀만큼 자기 몸처럼 소화하는 배우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다들 장미희의 의상과 악세사리를 갖고 난리던데, 아름다웠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모든게 장미희 일부처럼 녹아들었다고 보여지진 않는다.) 쿨하다는 말을 찌질하다는 말 보다 더 싫어하는 나 이지만. 그래도 쿨한 누군가를 꼽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없이 이 드라마에서의 배종옥 역할을 꼽고 싶다. 그녀는 환상속에 살지도 그렇다고 너무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하지만 두 발은 분명 땅을 디디고 섰고 두 눈은 앞을 똑바로 내다보는 그런 똘똘한 여자이다. 그렇다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혼자 고고한척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누군가의 눈에 천박 내지는 싼티로 보일 정도이니까. 

또 하나의 조연중 빛났던 사람을 꼽자면 극중 작가로 나왔던 김여진이다. 김여진은 정말 여기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하나도 과장되지 않고. 하나도 가식적이지 않은. 정말 이 여자 실제로 존재하는 작가인것 같다는 느낌을 발휘한건 비단 노희경이 자신의 직업과 똑 같은 캐릭터를 노련하게 탄생시켜주어서 만은 아닐 것이다. 극중에서 가장 촌철살인의 대사를 내뱉고 (내가 뽑은 베스트의 대사는 거의 이 여자 입에서 나왔다.) 또 극중에서 스스로를 냉정하게 바라보다가도 또 연민에 빠지기도 하는. 자기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가장 실제같은 인물이었다. 여느 작가라면 분명 김여진의 역할을 쿨한 여자로 그렸겠지만 여기서의 김여진은 절대 쿨하지 않다. 남의 연애사 얘기에 환장하고 (글을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극중에서 보면 이 작가는 정말 재미있고 듣고싶어서 듣는것 같다.) 울기도 잘 울고. 사는것도 약간은 구질스럽고. 아무튼 내가 만약 작가로 살았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에 비해 온에어의 송윤아는 너무 편협하고 희화된 캐릭터였다. 물론 내가 겁나 재밌게 본 드라마라 씹기는 불편하다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가장 좋았던 장면은 송혜교와 김여진. 그리고 배종옥이 모여서 그냥 노닥거리는 장면이었는데. 아...정말이지 우리들이 노는걸 작가가 어디서 훔쳐본건 아닐까 싶었다. 약간 무심함을 과장하며 괜히 폼 잡다가 시선이 자기에게 집중되면 못 이기는척 하며 청중들을 향해 자신의 얘기를 날려주시는 송혜교. 어디서 어떤 얘기가 흘러나오건 절대 휩쓸리지 않고 자기 중심을 잡으면서도 결코 남들에게 위화감을 심어주지 않는 배종옥. (특히 왕언니랍시고 아가들아 인생이란 말이지 등의 훈계스런 장면이 없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자신의 얘기는 별로 없지만 남의 얘기를 듣고싶어 미치는. 또 그걸 약간은 과장되고 호들갑스럽게 표현하며, 늘 오늘 놀고 죽자의 정신으로 그날의 수다나 술자리에 임하는 김여진. (굳이 나누자면 내가 이 타입인것 같다.) 송혜교의 올망졸망한 얘기. 배종옥의 똑 부러지면서도 느긋한 얘기. 그리고 김여진의 정말 죽음인 추임세까지. 이런 장면들은 너무 소중해서 내 집 한 구석에서 무한재생을 시키고 싶을 지경이었다. 

나는 이 드라마에서 현빈과 송혜교가 연애를 하고 키스를 하고 그러다 헤어지고 만났다를 반복해서가 아닌. 드라마의 등장인물들 모두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본 것 같다. 되게 멋있지도 근사하지도 않지만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그들. 보면 볼수록 자꾸 정이 드는 그들. 정말 드라마를 만드는 일이 그들이 사는 세상과 비슷하다면 나는 왜 애진작 드라마쪽에 하다못해 막내 스텝으로라도 구르지 않았을까 뼈아프게 후회할 것이다.   

쓰다보니 얘기가 너무 길어져서 빠졌지만 여기에 잘 나가는 PD -이름은 모르겠다만 예전에 시트콤에서 이해영 상대역으로 나왔던- 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다른 인물들에 비해 조금은 과장된 감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뭐랄까 제대로 된 나쁜 남자는 이런 남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나쁘다는게 아니라. 나쁜 남자는 여자에게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참 나쁘다는 것을 보여줘서 좋았다. 그리고 원로 여배우 트리오도 만만찮게 좋았고. 그 여배우 하나에게 징징대는 파마머리 -CF에서 인상적이었던- 배우도 좋았다. 신인인것 같은데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발군의 캐릭터 해석력과 연기력을 보였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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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9-01-10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드라마 좋아했는데,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 등장인물들이 모두 사랑스럽죠? 현빈과 송혜교는 또 어쩜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으흐 보기만 해도 좋더라구요!

마노아 2009-01-1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노희경씨 책을 보면서 드라마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보니 또 빠심이 충전되고 있어요. 저도 송혜교 연기가 왜 논란이 되는지 참 이해가 안 갔어요. 김여진씨랑 윤여정씨 참 좋았답니다. 아, 그리고 겨울연가는 최지우가 주연이었고 송혜교는 가을동화 주연이었어요. 전 가을동화는 못 봤지만^^

2009-01-10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선생 2009-01-11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재밌게 본 드라마에요. 일하면서 모니터 화면에 쪼끄맣게 창을 띄우고서라도...
님이 잘 기억못하는 그 PD 손규호 PD로 나온 배우는 엄기준이랍니다. 제가 참 좋아라하는 배우죠. 뮤지컬도 하고 연극도 하고. 요즘 이 배우가 너무 좋다했더니만 남편이 또 바뀌었냐 하더군요. ㅋㅋㅋ

보물선 2009-01-12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서 받아놓은 파일 그대로 소장하고 있지요~ 나중에 또 볼라구요*^^* 뽀글머리 파마한애는 최다니엘입니다. 정말 이드라마의 모든 캐릭터는 하나하나 살아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