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소로스는 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까 - 세계 금융을 지배하는 수퍼리치들의 두 얼굴
니콜라 귀요 지음, 김태수 옮김 / 마티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자선은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다. 유명 축구팀은 자선경기를 열고, 기업의 성금은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 많은 사람들이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낸다. 그러나 오늘날 자선의 아이콘이 된 것은 빌 게이츠,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로버트 데이 등 거액의 기부자들이다. 이윤 창출, 자본의 축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자본주의 구조에서 누구보다 돈을 많이 버는 자본가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부와 권력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인가, 아니면 도덕적 이타심인가.

과거 포드와 같은 대기업들은 재단을 만들고 자선사업을 했다. 이들의 자선은 단순히 부의 나눔 이상의 것으로, 자선활동을 통해 산업자본의 헤게모니를 공고히 했다. 학교와 연구소를 설립해 산업자본의 인재를 양성함으로서 얻어지는 소프트 파워는 자본과 노동의 대결에서 자본의 우위를 점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노동이 물러난 자리에 새로운 도전자가 등장했다. 자본에 대항할 자는 바로 자본이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저축한 자본, 축적된 힘. 이 힘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상류사회와 자본시장에서 배제되고, 간혹 대학 졸업장도 없으며, 현장에서 고달픈 경력을 쌓으며 배운 신 금융인들은 종종 천민적인 모습을 보인다. 경제적 자본만큼이나 모든 사회적 자본도 결핍된 이들은 노동력,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타격 능력밖에 가진 것이 없는 금융계의 하층 프롤레타리아였다. 그런데 이들은 과거 격변기마다 하층 프롤레타리아가 흔히 실행했던 모호한 역사적 기능을 맡아 기관투자가라느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으면서 구조조정의 실행자가 되었고, 자본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게 된다. - p.64


산업자본과 금융계는 확고한 카르텔을 유지하고 있었다. 명문대 출신의 독일 유대계와 백인 개신교란 엘리트들은 금융업계에 확실한 계급을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80년대 트레이드와 인수합병의 길이 열리며 엘리트 계급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명문대도 나오지 못한 사람, 은행의 한직에 있던 사람들이 급부상했다. 이들은 고객의 돈을 무기로 활용하며 기업사냥을 시작했다. 경영을 소유에 복속시키고 경영진에게 주식 가치의 창출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경영 규범을 강요했다. 기업의 성장 전략보다는 단 기간의 주식 수익률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자본과 자본의 대결은 새로운 자본, 금융자본이 승리했다.

이들의 행동은 산업자본과 극소수의 엘리트 금융인들을 무찌르는 일종의 계급투쟁이기도 했다. 계급투쟁의 새로운 승자들은 막대한 돈을 벌었고 신자유주의를 예찬했다. 빈부격차는 더 심해졌다. 더 소수의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를 챙겼다. 구조조정으로 많은 노동자들의 삶이 파탄났고 제조업은 몰락해갔다. 각종 배임행위와 사기 등으로 도덕적, 경제적으로 몰락한 승자들도 있었다. 부를 거머쥔 새 시대의 승리자들, 도적남작들은 자신들의 얼굴을 새로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금융자본과 기업탈취자가 구현하는 경제 논리에 대한 이러한 광범위한 윤리적 세탁작업에는 두 가지 이득이 있었다. 우선 경제의 금융화 논리를 정당화시키면서 이 논리를 시장경제의 영역 너머로 확대한다. 정통적인 개념으로 표현하자면 사회적 관계에 대한 자본의 실제적 포섭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또한 물리적 측면에서 자선사업은 외환 투기 혹은 대량 해고를 초래하는 적대적 매입으로 축적된 더러운 돈의 세탁을 용이하게 해준다. - p.104


자선사업의 개혁, 윤리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 도덕적 자본주의를 외쳤다.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는 바로 자신들같은 상위 0.1%의 부자들 때문이라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이 역설적 행태를 저자 니콜라 귀요는 금융이 지배하는 새로운 자본 축적 시스템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라고 본다. 이들의 자선사업은 단순한 나눔이 아닌 수익성을 따지는 금융상품과 닮았다. 사회의 진보적 아젠다를 앞장서서 외침으로서 누구보다 많은 사회재산을 쌓았다. 자선에 대한 세금 공제라는 제도를 교묘하게 활용함으로써 국가권력과 행정의 통제를 피해 재분배의 본질까지 왜곡시켰다. 이들은 자선사업을 함으로서 부의 재분배에 기여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더 많은 부를 쌓는데 활용한다.

과격한 기업사냥꾼들은 이제 양심적이고 신사적인 얼굴의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이제 자선사업은 단순히 한 부자의 취미 영역이 아니다. 국가의 시스템, 사회적 책임이 사기업 혹은 개인 재산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다. 보편적인 사회복지는 줄어들고 자선사업가들의 입맛에 맞는 조건적이고 선별적인 복지가 대두되었다. 새로운 자선사업가들의 영향력은 국가의 시스템을 대신해가고 있다. 이들에게 자선사업은 영원히 자신에게 부를 가져다줄 금융제국 건설이란 새로운 통치 가능성에 대한 투자의 한 가지 방식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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