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받지 못한 죽음 - 중증 외상, 또 다른 의료 사각지대에 관한 보고서
박철민 지음 / 이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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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가 동일한 환자가 두 사람 있다. 한 사람은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최신식 치료를 받아 빠른 시일내에 퇴원해서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한 사람은 치료시설이 부족한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시기를 놓쳤고, 병원을 전전하다 치료받지 못하고 시체가 되었다. 두 사람은 중증외상환자였다. 치료받을 권리는 기본적 인권이다. 그러나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주기엔 대한민국은 아직 미숙한 점을 보이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대두되면서 경제활동인구를 지키는 것은 더 소중해졌다. 중증외상은 경제활동이 활발한 40대 이하 젊은층의 주요 사망원인 중 하나이다. 아주대학교병원의 이국종 교수는 충분히 살 수 있었지만 치료받지 못해 죽는 중증외상환자가 연간 1만 명에 달한다고 말한다. 서울대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중증외상센터를 설치할 경우 투자 대비 편익이 2배 이상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중증외상환자를 긴급히 이송해 치료할 인력과 시설 및 장비 등이 갖추어진 의료체계가 부족해 중증외상환자의 사망비율이 타 선진국보다 높은 약 32%에 이른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해마다 최소 1만 명 이상이 예방 가능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10년 동안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군 전사자는 4,407명이다. 베트남전쟁 10년 동안 사망한 군인 수의 두 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국 응급실에서 매년 '전사'했다는 것이다. - p.62 

한국의료체계가 중증외상환자에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먼저 중증외상분야에서 일하는 의사가 극히 적다는데 있다. 중증외상은 의학의 정식 과목도 아닌데다 3교대 24시간 근무를 해야하는 응급실 업무다 보니 의대생들의 선호도는 매우 낮다. 다른 어떤 곳보다 환자의 상태가 참혹한 중증외상분야는 더 힘들면서, 돈벌이도 안되는 곳이다. 의사들이 기피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다른 하나는 중증외상환자의 이송, 치료과정에서 의사와 병원의 책임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환자를 거부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현실은 언제든지 환자를 이 병원 저 병원 돌리다가 구급차 안에서 죽여도 된다. 무엇보다도 중증외상환자는 돈이 되지 않는다. 아주대병원의 경우 중증외상센터를 운영하는데 매년 10억 원 이상의 적자가 난다. 의사가 아무리 열의가 있어도 병원 경영진의 의지가 있지 않다면 환자는 죽을 뿐이다.


복수의 공무원에 따르면 '아덴만 여명'사건 이후 중증외상센터의 중요성을 알게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내가 다쳐도 수원까지 가야 하나?" 하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보건복지부와 서울대병원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후속 조치를 취한 셈이다. - p.68 

이 책은 2013년에 씌여졌다. 당시 저자는 권역외상센터 설립을 위해 노력했지만, 타당성평가에 막혀 이뤄지지 않았다. 중증외상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던 자살 항목이 빠졌고, 한국인의 목숨값을 2억 원도 안되게 책정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부처에 따라 다르지만 한 사람의 목숨값을 80~100억 원으로 책정하는 미국이었다면 타당성평가가 바로 통과됬을 것이다. 다행히 2016년 말 기준 권역외상센터는 전국적으로 7곳이 되었고,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해결이라 보긴 어렵다. 중증외상환자 문제는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자본의 논리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만이 중증외상 치료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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