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 경제학자 우석훈이 밝힌 잔혹한 "대한민국 연봉" 이야기
우석훈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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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과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주제가 있는가 하면, 하기 힘든 주제가 있습니다. 쉽게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주제는 날씨 같은 이야기이며, 하기 힘든 주제는 정치, 종교 같은 주제일 것입니다. 정치, 종교 못지 않게 꺼려하는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연봉 이야기입니다. 연봉이 낮은 사람이건 높은 사람이건 선호하는 주제는 아닙니다. 많은 기업들은 회사의 연봉을 기밀로 하고 있으며, 직장 동료들끼리도 연봉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뉴스에서 들어볼 수 있는 최저임금 이야기나 평균월급 같은 지식이 아니라면, 연봉은 사회적 공론장에서 거론되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기피하는 연봉 이야기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제라는 것입니다.

최근 미디어에서 음식 이야기가 인기를 얻자 사람들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에서 등장한 다양한 요리기법을 따라해보고, 맛있는 음식점에 가보고, 이야기합니다. 요리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면 장기적으로 한국의 식문화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제학자 우석훈은 사람들의 관심사에 연봉이란 화두를 던져야만 우리 사회의 연봉 시스템에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연봉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기업의 실적, 노동자들의 생산성만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봉엔 사회적, 정치적 요소가 들어있으며, 합리적인 부분도, 불합리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한국 경제는 지식경제 혹은 문화경제 쪽으로 진화해온 것은 아니다. 돈을 굴리는 금융업 쪽으로 가거나, 변호사가 되거나 아니면 독점 이윤을 누릴 수 있는 대기업에 간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어느 정도 살 수 있지, 머리 많이 쓰고 재능 많이 쓰는 분야로 가서는 평균적 삶이 안 된다는 얘기이다. - p.98


우리나라 노동자 중 가장 많은 봉급을 받는 300인 이상 규모의 전문서비스업, 방송국, 대규모 금융업 업종이며, 평균 급여는 점점 내려가 소규모 복지서비스, 시설관리 및 조경서비스 분야는 가장 적은 급여를 받습니다. 중소기업보단 중견이, 중견보단 대기업이, 비정규직보단 정규직이 더 많은 급여를 받습니다. 우리는 이런 구도를 어떤 의미에선 문제제기 없이 당연한 구도라고 인지하기도 합니다. 공중파 방송국 KBS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사회복지사로서 노인들의 복지를 도와주는 노동자 중 누가 더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가에 대한 결정은 경제적 생산성보단 사회적 인식에 있습니다. 두 노동자의 급여의 차이, 대우의 차이는 사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석훈은 연봉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 철학 혹은 경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회복지서비스 노동자들이 한국 연봉 순서에서 가장 맨 아래 구간에 위치한다는 것은, 사회가 복지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철학과 정책 기조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전체 노동자의 임금 내에서 저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정도 되어야 하는가 역시 정책 혹은 사회적 영향입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나쁜 대우를 받지만,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 등 몇몇 나라는 오히려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연봉이 높기도 합니다. 성별이나 출신 지역, 학벌 혹은 계약 형태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침해하는 나라도,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습니다.

공항 리모델링 작업장에서 톰 행크스가 원래 직업을 살려 미장이로 일하게 되고, 그때 받은 일당을 모아서 공항 면세점에서 슈트 한 벌을 당당하게 산다. 공사 현장의 임시 미장이로 일하는 톰 행크스의 월급 수준은 직접 언급되지는 않는다. 다만 주인공을 괴롭히면서도 승진을 간절히 바라는 JFK 공항의 국장, 스탠리 투치보다는 시간당 임금이 더 높다는 대사가 한 번 나온다. 짧은 장면이지만 길고 긴 역사의 유래를 설명하는 장면이다. 기술이 있고 기능공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교사와 같은 대표적인 사무직과 비교해서 엄청나게 낮은 임금을 받지 않는 것, 그런 게 미국이라는 나라를 사회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 버틸 수 있게 하는 제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pp.152~153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조사한 결과는, 임금을 결정함에 있어서 합리적인 부분도, 비합리적인 부분도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연봉 조정에서 기업의 지불 능력이나 물가상승률을 신경쓰기도 하지만, 타 기업의 임금 수준이나 최저임금 인상률을 눈치본다는 것입니다. 기업의 실적이 향상되고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올라가더라도, 그 해에 최저임금이 인상되지 않았거나 동종업계의 임금이 그대로라면, 기업이 연봉을 올려줄 여력이 충분하더라도 노동자의 연봉은 변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IMF는 중산층의 위기를 분석하면서 대기업 임원들이 지위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지대로 너무 많은 연봉을 가지고 가서 연봉 총액이 줄어들게 되고, 이런 것들이 모여 결국 위기가 발생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노동자의 생산성이 높아서가 아니라, 단순히 지위가 높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는 현상은 주주 자본주의가 두드러지며 발생했습니다. 임금격차가 극단으로 벌어지는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이지만, 우리나라 역시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고연봉 업종과 저연봉 업종의 차이는 타 국가와 비교해봐도 큰 편이며, 저임금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입니다. 생산과 지대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본다면, 생산성보다는 땅을 소유하는 등 돈이 생기는 지대 쪽이 여전히 매력적인 사회가 바로 한국입니다.

해적의 급여 체계는 매우 공평했다. "선장은 모든 노획물의 1과 1/2몫을 갖고, 사무장, 목수, 갑판장, 포수는 1과 1/4몫을 갖는다. 그 외 모든 사람은 1몫을 갖는다." 이것은 선장이 일반 선원보다 4~5배 많이 벌었던 상선의 급여 체계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해적들은 약간의 누진적인 요인을 유지하지는 했지만 약탈품을 대체로 균등하게 배분하여 상대적으로 공평한 급여 체계를 도입함으로써 물질적인 불평등을 훌륭히 해소했다. -《후크 선장의 보이지 않는 손》p.116


동일한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 간에 차별이 발생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용인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찬호가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 차별을 부당하다고 외치지 않고 정규직 노동자가 될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난합니다. 대한민국 청춘들은 그런 약자들을 차별하며, 차별받지 않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합니다. 모두가 최정상의 대학만을 바라보고, 최고의 학점만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소수의 사람이 많은 연봉을 받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춘들을 기다리고 있는것은 타인에게 무시당하고 적은 연봉을 받는 직업입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의 연봉구조를 더 급가속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청년 인턴 증가, 노동 개혁법, 파견 노동 확대 등 저임금 노동을 늘리면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반면 최근 미국, 일본 등의 나라에서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리는 등 임금주도성장 정책으로 돌아섰습니다. 어떤 판단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지나야겠지만, 이런 정책의 차이는 임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우리사회엔 공사현장 노동자도 필요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도 필요하고, 사회복지 노동자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받는 연봉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연봉 개선을 위해 우리 사회의 인식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런 노동자들도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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