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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B - 세계는 죽음에 내몰린 칠레 광부들을 어떻게 구조했는가?
마크 애런슨 지음, 하정임 엮음 / 다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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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사람의 목숨에 가격을 매긴다면, 미국인이라면 10억 원이 넘을 것이고, 일본인이라면 10억 원 정도 될 것이며, 한국인이라면 10억 원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도로교통공단은 교통사고로 인한 인적, 물적피해액을 계산하고자 운전자 1명의 생명 가치를 4억 4천만원으로 계산했습니다. 잘사는 나라의 국민은 당연히 더 비싸며, 백인이 다른 인종보다 비싸고, 고위층 인사가 일반적인 대학생보다 비쌉니다. 생명의 가치가 다르다는 것은, 그것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국회의원 10명이 탄 배와 초등학생 10명이 탄 배가 전복되었을 때 해경이 한 곳만을 구할 수 있다면, 해경은 생명의 가치가 더 높은 쪽, 국회의원들을 구하러 달려갈 것입니다.
1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100억 원이 든다면, 경제적인 논리대로라면 구하는 비용이 생명의 보상비용보다 비싸기 때문에 구하지 않아야 합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세월호 인양을 반대한 이유 중 하나가 인양비용이었던 것처럼, 인원과 예산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론 경제적인 논리를 무시하고 행동합니다. 사람들은 비용편익분석에 생명의 가치를 계산해 안전장치를 추가하지 않은 포드 사를 비난합니다. 샘물교회 23명이 포교활동을 하다 납치된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에서 정부는 23명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고 약 400억 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그들을 구했습니다. 2010년에 칠레의 산호세 광산에서 광부 매몰사건이 발생하자 칠레 정부는 250억 원의 비용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광부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인리히의 법칙은 산호세 광산의 사례에서도 여지없이 적용되었습니다. 광산의 부실한 시설, 열악한 환경은 매몰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꾸준히 인명사고를 내고 있었습니다. 광산법에 따르면 광산에 대피로를 두 개 만들도록 법률로 정해 놓고 있지만, 산호세 광산에는 대피로가 한 개도 없었습니다. 산호세 광산은 대형사고가 일어날 곳이었고, 일어났습니다. 광산이 무너지면서 33명이 실종되었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살아남지 못하리라 생각되었습니다. 유일한 가능성은 대피소에 생존자가 있을 것이란 가정이었고, 대피소를 향해 드릴을 뚫었습니다. 그리고 대피소에 33명 전원 생존한 상태로 모여있다는 기적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칠레에서 일어난 사고는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영화『그래비티』를 봐도 상상하기 힘든 고독과 어둠이 땅 속에 있습니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어둠 속에서 생존자들은 처음엔 주먹싸움도 하고 절망 속에서 환각을 보기도 합니다. 대피소에 있었던 식량은 참치 통조림 20개, 복숭아 통조림 1개, 연어 통조림 1개, 약간의 과자 뿐이었습니다. 눈앞에 죽음이 찾아온 상황에서 그들을 지켜줬던 것은 신이 아니었습니다. 기도는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지켜줬던것은 민주주의였습니다. 모두가 발언권을 가지고 쟁점이 되는 사안들을 투표했으며, 모두가 평등한 대접을 받았고, 지도자를 뽑아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했습니다. 생존자들은 지하 깊숙한 곳에서 생존을 위한 공동목표를 만들었고, 단합된 목표 속에서 어둠을 이겨 냈습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금속과 미네랄은 그것들을 찾기 위해 땅속으로 내려가는 광부들과 우리를 하나로 연결시켜 준다. 그러므로 그들의 안전과 복지는 곧 우리의 안전과 복지인 것이다. 정말로 지구의 보물을 얻고 싶다면, 광부들이 매몰되었을 때가 아니라 그들이 어둠의 왕국에 들어갈 때마다 그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 p.130
사고가 난지 5년이 지난 지금, 구출된 광부 33명의 운명은 밝지 못합니다. 이들이 구출된 뒤 받게 된 위로금은 약 1200만원에 불과하며, 3명은 폐질환은 규폐증 진단을 받았고, 11명은 일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퇴직했습니다. 정신적인 질환에 걸려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습니다. 기적같은 미담은 그 시효가 만료되었고, 차디찬 경제논리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매몰사고의 상처를 안은 채 생존을 위한 투쟁을 계속해야 합니다. 인류가 문명을 시작할 무렵부터, 땅속의 보물들은 언제나 사람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고, 지구의 열기를 뚫고 광산으로 내려갈 인간은 언제나 필요했습니다. 깊이를 모르는 검은 땅 밑으로 내려가서 광석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하지만, 우리는 광부들이 가져다주는 땅속의 보물들을 이용하면서 그 보물을 캐다 주는 광부들은 무시합니다. 칠레 광부들의 기적같은 생환은 전세계에 훈훈한 감동을 전해주었지만, 그들의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기적은 기적으로 끝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