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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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넘은 지금, 일각에서는 사건 초기의 동정적인 여론과 다른 여론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가 너무 과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역풍이 등장한 계기는, 정부가 보상 중 하나로 단원고 특별전형을 언급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미 보상금도 엄청난 금액인데, 대학특례는 과하다는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보상금은 국민성금의 금액과 보험금, 청해진해운의 배상금 등으로 이루어져있어 혈세 논란은 부적절하며, 특별전형 역시 기존에 다른 특별전형도 많았으며 유가족이 요구한 사항은 아니라는 점에서 유가족을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부분입니다. 다른 특별전형인 서해5도 특별 전형을 통해 인하대와 인천대, 목포해양대, 동덕여대, 관동대 등을 가는 것은 아무런 이슈도 되지 못했지만 단원고 특별전형이 이슈가 된 것은, 어쩌면 그 특별전형의 혜택에 소위 SKY라 불리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이해 초등학생들에게 "정말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 도와준다" 고 말했습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이 이야기는《시크릿》이나《꿈꾸는 다락방》같은 자기계발서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말입니다. 이 책들은 R=VD 같은 있어보이는 수식을 동원해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꿈꾸면 현실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희망을 줍니다. 이 논리에서 성공하는 것은 오직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며, 실패하는 것은 간절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기계발 사상은 현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데 한 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미키 맥기의 지적처럼, 자기계발 사상은 노동자들에게 더이상 노동자가 아니며, 스스로 기업가이고, CEO이며, 하나의 브랜드가 되라고 강요합니다. 이름 석자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예술품이며, 누구나 원하는 상품이 되는 것이 성공이라는 것입니다. 저자 오찬호는 이 자기계발의 사상 속에서 우리나라 이십대의 자화상을 봅니다.

오찬호는 이십대 청년들이 비정규직의 열악한 환경에 눈물을 흘리고, 노동자의 인권을 중시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비정규직들이 투쟁을 통해 정규직이 되는 것, 노동조합이 파업을 통해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얻는 것에 대해 극렬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그 반감의 근간에 자기계발의 이론이 있으며, 자기계발로 훈육된 이십대를 발견합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비정규직 문제, 아르바이트생의 비인간적 환경, 빈부격차 등 사회적 문제들은 그 구조적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계발을 통해 극복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비정규직들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 비정규직이 된 것이니,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요구는 분에 넘치는 요구가 되며, 아무 이유없이 실업자가 된 노동자의 문제는 평소 자기계발을 통해 실직 이후의 삶을 대비해놓지 못한 노동자 자신의 문제가 됩니다. 이십대가 보기에 공부도 안하고, 놀고먹던 그들이 요구를 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자기계발서를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책들이 개인의 개성을 사회적 기준에 맞추기를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 강요는 주로, 사회가 원하는 인재상이 이러저러하니 평소 거기에 맞춰 잘 준비하라는 차원에서 이뤄진다. 다이어트 해라, 밝게 웃어라, 심지어는 성형도 불사해라, 남이 화를 내도 참으라는 등 갖가지 주문이 나열된다. 이 모든 것은 '가장 상품성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정당화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시키는 대로 상품성을 갖추었는데, 판매는 잘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p.149

이런 이십대들의 배경에는, 오직 취업이란 목표만을 위해 자기계발을 계속하는 이십대의 모습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이십대는 취업을 위해 외국어공부, 학점관리, 자격증 취득, 인턴, 봉사횔동, 공모전 참가, 외모 가꾸기, 자기소개서 작성 연습 등 엄청난 양의 자기계발을 해야 합니다. 평소 좋아하던 악기를 배워본다던지, 좋아하던 작가의 소설책을 읽는 것은 자기계발의 영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가고싶은 회사의 토익 기준이 900점 이상이라면, 890점이란 성과는 자기계발에 실패한 영역입니다. 이 모든 자기계발은 곧 자기 자신의 통제, 시간관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더 노력한 사람이 성공해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시간관리를 더 잘 해온 사람은 사회적 우대를 더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덜 노력한 사람에 대한 차별은 정당화됩니다. 이 노력의 영역은 언제나 상대적입니다. 사장님이 A라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에게 성희롱을 한다고 해도, B라는 아르바이트생이 성희롱을 이겨낸다면, A 역시 성희롱을 참아야 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희생하는 자기통제형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이십대의 박탈감과 불안감은, 모두를 가해자로 만들고, 또 그래서 모두 피해자가 됩니다. 불공정성이 유지되는것은 모든 사회적 구성원이 구조를 지탱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이런 구조를 접하고, 훈육될 수 있는 최초의 시스템은 수능입니다. 수능을 통해 학생들은 누구는 일류가 되고, 누구는 삼류가 된다고 재단당합니다. 대학교는 이름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고, 대학교 내에서도 학과별로 순위가 매겨집니다. 학벌의 낙인은 죽을 때까지 지속됩니다. 서울대를 나온 사람은 그 후에 공부를 안해도 평생 공부 잘한 사람이 되고, 지방대를 나온 사람은 그 후에 엄청난 공부를 해서 지식을 쌓아도 평생 공부 못한 사람이 됩니다. 매년 수능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이 있는 것처럼, 수능은 정말로 목숨보다 중요합니다. 수능을 통해 모든 학생들이 열등감에 시달립니다. 서울대 학생들도, 하버드 유학파 앞에서는 별 수 없습니다. 수능을 통해 모든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상처를 얻기 위해 새로운 재단 기준, 취업을 통해 달려갑니다.

간단히 말해 만약 모든 사람이 '그들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기'를 확실히 하기 위해 바쁘다면, 누가 집을 청소하고, 저녁을 짓고, 아기에게 귀저기를 채우고, 아이들을 양육할 것이며, 공장에서의 노동은 말할 것도 없이, 누가 거리를 청소하고, 택시를 몰며, 쓰레기차를 채울 것인가? 모든 돌보는 일은 개인이 자기형성의 더 커다란 일, 즉 항구적으로 다듬어진 예술작품으로서의 삶의 비전을 추구할 때, 무의미하고 저열한 가치로 평가된다.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지배적인 자아에 대한 소설은, 그러한 이상이 노동에 대한 일의 우위를 내포하고, 타인의 노동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반박 불가능한 자아의 육체적 나약성까지 부정하는 이중부정을 함축하고 있다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기계발의 덫》p.269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 하고, 취업도 더 잘된다는 연구결과는 분명 문제의 초점을 개인보다 환경, 사회에 맞춰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자기계발의 논리 앞에서 모든 불공정함은 자신이 극복해야 할 문제가 되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자신의 대학이름을 듣자마자 자신을 재단하는 현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대학을 듣자마자 다른사람을 재단하는 현실 앞에서 모든 아이들은 자기방어를 해야하고, 남을 비웃어야 합니다. 노예들은 자신의 쇠사슬을 자랑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이십대들은 사회의 선택을 받기 위해 무가치한 자기계발들을 열심히 하면서 자신의 쇠사슬을 갈고 닦고, 다른 노예의 쇠사슬이 더럽다며 자신의 상품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패배한 자들에겐 무자비한 멸시를, 차별당하고 패배하지 않기 위해선 극한의 자기계발을 하는 이십대에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여유는 없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라 부릅니다. 우리 사회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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