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생활 B형 2014.12
주부생활 편집부 엮음 / 더북컴퍼니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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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양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엔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하는 출석체크 이벤트를 정주행합니다. 그리고 매년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말이 되면 하는 습관이 있는데, 바로 이 잡지《주부생활 12월호》를 사는 일입니다. 12월호 외의 주부생활은 구입하지 않는데, 그 말은 12월호를 구입하는 목적이 명확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바로 12월호 부록으로 나오는 내년 가계부를 얻기 위함입니다. 부록을 얻기 위해 잡지를 사는 것이 주객전도가 된 느낌이기도 하지만, 부록이었던 파*드 택틱*나 메*녀, 동급*, Ho*m2 같은 부록을 얻기 위해 V챔프, PC 파워진, PC player 같은 지금은 없어진 잡지들을 사기도 했던걸 생각하면, 과거에 그런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시간을 헛되이 보내선 안 된다고 교육을 받습니다. 어렸을 적에 누구나 만들어봤을 방학 시간표 만들기가 그런 학습의 흔적입니다. 시간 엄수에 대한 학습은 자체적으로 규범화되어, 심할 경우 스스로 종속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수십 년 간을 시간 엄수의 생활 속에서 살다가 은퇴해 자유를 되찾은 노인들이 그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때론 다시 자신을 규칙이란 족쇄 속에 종속시키고자 하는데, 에리히 프롬은 이런 경우를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불렀습니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상황이 오히려 그에겐 부담으로, 저주로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가계부를 쓰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가계부를 쓰는 습관은 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장려되는 행위이며 학습입니다. 돈의 흐름을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생활을 규범화하고 규제하고 억제하는 것입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 빚을 만들지 않는 경제생활을 위해서라는 목적을 내세울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기록화 함으로서 삶을 다듬는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은 “이번 달엔 돈을 많이 썼다”고 자책하는 부정적인 자신을 목격할 뿐이지만, 그 부정적인 면은 적은 수입, 상승하는 물가, 미래를 개개인이 대비해야만 하는 사회, 정규직이더라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두려움 등에 적응한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는 흔한 모습입니다.

디지털 시대가 시작되면서 가계부 활동도 다원화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로, 모바일로 가계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종이를 선호합니다. 자신의 차변대변 현황을 언제나 원할 때마다 볼 수 있는 자유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저렴한 가계부들이 많은 상황에서 부록 가계부를 얻기 위해 잡지를 사는 행위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늘 들기 때문에 매년 여러 가계부들을 살펴보지만, 아직까지 제 마음을 변화시킬만한 건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더 싸고 좋은 가계부가 존재하고 제가 찾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탐색비용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올해도 저는《주부생활 12월호》를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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