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종교 - 종교는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백중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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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국가들의 헌법에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정교분리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가 종교활동을 하고 특정 종교단체를 지지하는 행동을 하거나, 종교단체가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법으로 금지하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정교결합체제가 지닌 폐해를 수없이 목격해온데 대한 교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의 사상과 행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교의 특징과 다수의 투표권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의 특징상 그 관계를 칼처럼 구분하기란 사실상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정교분리는 정부의 노골적인 행동을 지탄하는 정도에서 그치거나, 특정 종교단체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그 신도에게 명령하는 것을 자제하는 정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자 백중현은 한국의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그런 최소한도의 선을 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종교의 권력화는 정치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백중현은 1990년대 초 개신교의 ‘김영삼 장로 대통령 만들기 운동’을 계기로 정치권과 종교라는 주제를 연구했습니다.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역대 모든 대통령과 그 주변 핵심인물들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한국 3대 종교인 개신교, 불교, 천주교가 그 주인공들이며, 그중에서도 개신교는 가장 많은 사건과 논란거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한말 불안정한 정치 상황 속에서 치외법권적 특권을 누리고 있었던 개신교는 광복 이후 미국의 종교라는 점에서 더욱 권력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영어를 할줄 아는 한국인들 상당수가 개신교였기 때문에 미군정 하에서 개신교는 큰 성장을 이룹니다. 이어 등장한 이승만은 개신교에 특혜 정책을 쏟아냈는데, 국기에 대한 경례를 개신교식으로 바꾸고 군종제도를 도입해 개신교에게 독점권을 줍니다. 첫 민간방송국으로 기독교방송CBS를 인가하는가 하면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합니다. 6.25를 거치며 북한 개신교인들이 대거 월남하면서 개신교는 뿌리깊은 반공, 친미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이승만 당시 천주교인들은 장면을 지지했는데, 이승만은 이를 견제하고자 천주교인들을 탄압했습니다.

군사정권과 개신교의 밀착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바로 '교회 내 군사 용어'다. 지금은 많이 순화되긴 했지만, 군사 용어는 여전히 교회 내에서 폭넓게 쓰이고 있다. 새벽기도 총진군, 전도 특공대, 구국 기도회, 영적 전쟁 등이 그런 경우다. 교회의 행사를 군사적 방식으로 전개한다는 점에서 군과 교회의 밀착 관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미국 외싱톤한인교회 김영봉 목사는 "한국 교회가 군사 문화에 만연되어 있다"면서 담임목사 명령 한 마디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상명하복 문화'와 '군사용어'를 들었다. - pp.122~123

개신교만 가능했던 군종제도 덕분에 군에서는 개신교인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배경을 등에 업은 박정희는 체제 유지를 위해 반공, 친미를 외치며 개신교를 포섭했습니다. 개신교는 박정희의 지원 하에 전군 신자화 운동과 대형 집회를 할 수 있었고, 많은 신도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시작된 산업화로 인해 교회는 도시로 유입된 농민들을 위로하며 공동체를 제공해주었고, 그 결과 여의도순복음교회 같은 초대형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박정희는 형평성 차원에서 불교에게도 지원을 했는데, 석가탄신일을 공휴일로 지정했고, 문화재보호법을 통해 불교를 지원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후반부에 들어서 군사정권에 맞서는 종교인들의 저항운동이 생겨나 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핵심에 자리잡게 됩니다. 천주교와 불교 그리고 진보적 개신교인들은 민주화운동에 가세했습니다. 전두환은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자 종교계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불교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전두환은 32,000명의 군인을 동원해 5,731개 사찰에 일제 수색을 벌여 불교판 삼청교육대를 보낸 10.27법난을 일으켰습니다. 전두환의 탄압 이후 불교는 신자가 40%나 감소해 교세가 급격히 기울게 됩니다. 불교와 달리 개신교는 신군부 세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세계복음화대성회 등 대형 집회를 연달아 개최해 권력과 가까운, 이른바 '잘 나가는' 종교임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국가 신도는 신사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규제, 천황의 사제 역할, 국가신도의 의식 창출과 후원, 일본과 해외 식민지의 신사 건립, 취학 아동들에 대한 신도 신화에 입각한 교육과 그에 따르는 강제적인 신도 의식 참여, 그리고 타종교집단의 확립된 신도 신화의 일부 양상들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에 근거한 그들에 대한 박해를 포괄하는 체제적 현상이었다. -《전쟁과 선》p.44

천주교의 박종철 고문사건 성명으로 시작한 6월 민주항쟁은 전두환을 자리에서 끌어내렸습니다. 노태우는 전두환의 10.27법난을 해결하기 위해 불심을 달래야 했고, 전통사찰보존법을 만들어 불교를 지원했습니다. 5.18 이후 개신교는 반공, 친미 성향의 보수 개신교 세력과 평화, 반미 성향의 진보 개신교 세력으로 분리되었는데, 노태우 시절부터 등장한 남북 평화통일 분위기는 진보 개신교 세력에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이에 대항해 개신교 보수연합단체인 한기총이 출범했습니다. 한기총은 노태우 정권의 지원 하에 성장해 대북, 대미 관계에 대한 사회적 발언권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개신교 세력은 장로 대통령 만들기 운동을 시작했는데, 대형 교회 중심의 인원수와 조직력은 실로 대단했고, 그 결과 김영삼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김영삼 집권 당시엔 불교가 탄압을 받았습니다. 육군 17사단 훼불 사건, 육군특수전학교 인분투척 사건등이 발생했고,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란 이유로 기념관과 고궁등에 있는 연못에서 연꽃을 뽑아버렸습니다. 70년대에 민주화운동의 성소가 기독교회관이었고 80년대의 성소가 명동성당이었다면, 2000년대에 들어서는 조계사가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김대중 취임 초기부터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들에 대한 공금 횡령, 성추행 사건, 세습문제 등에 대한 방송 보도가 나가면서 보수 개신교는 김대중 정권과 갈등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햇볕정책으로 인해 보수 개신교가 가진 반공 정체성과 양립할 수 없었고, 보수 개신교는 조선, 중앙, 동아라는 보수 언론과 연대를 모색하며 反정부 운동을 펼칩니다. 보수 개신교의 반정부 투쟁은 노무현까지 이어집니다. 노무현은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했고, 국가보안법과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고자 했는데, 이는 보수 개신교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학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개방형 이사제 도입, 이사장 친인척의 이사 비율 축소 등의 내용을 담은 사립학교법 개정은 당시 중학교 123개, 고등학교 165개의 사학을 가지고 있던 개신교 입장에선 종교탄압으로 비춰졌습니다.

종교 단체 기부금 내역 공개, 종교인 과세 등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보수 개신교 밑바닥까지 '노무현 정부가 개신교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정서가 팽배해졌다. 김지방은 이를 개신교의 권력화와 연결시켜 분석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 교회는 오히려 자신들이 지난날 누렸던 특혜가 점점 위협받고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다. 그러니 정치권 동향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정치인들이 교회의 힘을 인정하고 두려워해주길 은근히 기대한다. 이런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정권에 불만을 품게 된다. 대형 교회 개신교계 인사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反기독교 정권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 p.218

개신교가 김대중과 노무현 시절을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렀던 만큼, 또다시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총력전에 나섰습니다. 김진홍 목사가 만든 뉴라이트와 한기총은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 이명박 당선의 일등공신이 됩니다. 한신대 교수 강인철은 개신교 유권자수를 본 결과, 무려 587만표가 움직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를 거치며 개신교는 여전히 파워 넘버1임을 입증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종교법인법과 종교평화법은 개신교의 눈치를 보느라 법안 통과를 미루고 있습니다. 또한 차별금지법은 두 차례 추진되었지만 보수 개신교의 반대로 무산되었는데, 종교, 사상, 성적 지향의 차별금지 조항 때문에 타종교나 이단을 비판할 수 없고, 종북 세력을 비판할 수 없으며, 동성애를 죄라고 가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백중현이 보여주듯이 종교는 외부의 영향력 없이 오롯이 존재하기 힘듭니다. 정치권력자들의 종교성향 또는 종교탄압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정치권력이 종교를 신경쓰는 이유는 종교가 매주 수백만명의 신도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 학습하고 교제하는 사회활동인 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종교 역시 그 영향력을 통해 정치권력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종교가 정치권력화되기 쉽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종교의 미래는 동성애 허용이나 낙태문제와 같은 교리에 반하는 문제들보다는, 권력화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달려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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