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크 선장의 보이지 않는 손 - 알려지지 않은 해적의 경제학
피터 T. 리슨 지음, 한복연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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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에 대한 이미지를 묻는다면, 코믹하고 능글맞은 블랙펄의 선장을 떠올릴 수도 있고, 몸이 늘어나는 밀짚모자 선장이 생각날 수도 있으며, 삼호 주얼리 호를 피랍한 소말리아 해적이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전통적인 이미지라면, 블랙비어드(검은 턱수염)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악명 높은 해적, 에드워드 티치와 같은 해적일 것입니다. 기괴한 외모, 자유분방함, 잔혹함, 보물, 범법자 같은 이미지를 지닌 해적들은 2세기동안 무시무시한 소문을 몰고 다니며 바다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저자 피터 T 리슨은 이런 해적의 전통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해적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피터 T 리슨이 보여주는 해적들은 폭력적인 평화주의자들이고, 이성을 욕망하는 동성애자들이며, 자유주의적인 사회주의자들이였습니다. 또한 자본주의적인 공산주의자였고, 요란하게 자신을 홍보하는 비밀스러운 범죄자들이자, 권위적인 민주주의자들이었습니다. 해적들은 잔인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와 다르게, 역사학자 앵거스 컨스텀에 의하면,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고 무서웠던 해적 에드워드 티치는 로버트 메이너 해군 대위와 마지막 전투를 벌여 죽을 때까지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해적들의 모순적인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그들의 행동을 해석합니다.

해적들은 놀랍게도 오늘날 민주주의라 부르는 체제를 완성했고, 사회복지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독재자를 견제하고 1인 1투표에 근거한 선거를 실시했습니다. 인종적인 평등을 구현했고, 빈부격차를 억제했습니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많은 국가들이 달성하지 못한 이런 가치를 실현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저자는 해적들의 경제적인 동기, 이윤추구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윤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이런 가치들을 언제나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적 특유의 환경과 이윤추구가 만났을 때, 오늘날 우리가 선하다고 인정하는 가치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해적들의 동기는 결코 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벌고자 했고, 남의 돈을 빼앗고자 했을 뿐입니다.

누군가 집에 와서 물건을 가져가려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당연히 싸우겠지요. 바로 그겁니다. 불법 어업의 희생자가 되느니 사냥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 -《해적국가》p.61

당시 뱃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두 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합법적인 상선에서 종사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해적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해적은 언제든 사형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상선을 타지 않고 자진해서 해적선을 탔습니다. 상선은 소수의 선주들에 의해 운영되었고, 그들에 의해 임명된 선장이 전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재자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독재자였던 상선의 선장 역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에 반해 해적들은 투표를 통해 해적선장을 선출했습니다. 선장 뿐만 아니라 사무장 등 선장을 견제할 수 있는 직책도 투표를 통해 선출함으로서 권력을 분산시켰습니다. 권력자들을 견제하는 수단을 가지게 됨으로서 해적들은 월등한 노동환경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1695년에 헨리 에브리 해적 함대는 600,000파운드 이상의 귀금속과 보석을 운반하던 선박을 나포했다. 그 결과 해적 1인당 1,000파운드의 배당금을 받았는데, 이 금액은 당시 경험 많은 상선 선원의 약 40년치 수입에 해당했다. 1721년에 존 테일러 선장과 올리버 라 부쉬 선장의 해적 연합은 단 한번의 공격으로 해적 1인당 4,000파운드의 경이로운 수입을 올렸다. - p.35

해적들을 지켜줄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적들은 스스로를 지키고 돈을 벌기 위해 평등하고 평화로운 정책들을 만들었습니다. 해적일을 하다가 부상을 당할 사람들을 위해 복지기금을 만들었고, 약탈품을 분배할 때 가장 많이 분배받는 선장도 선원 2인분 이상을 받지 못하도록 빈부격차를 최소화했습니다. 열심히 활동하는 선원에게 전투시 가장 좋은 무기를 지급하는 등의 시스템을 통해 평등적 정책을 펼치면서도 경쟁을 독려했습니다. 그들은 망망대해에서 해적선이란 좁은 공간에서 같이 살아가는 가족과 같은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질서를 준수했습니다.

해적들은 본질적으로 범죄자들이었고, 잔혹무도하기도 했습니다. 포로들에게 상상하기 힘든 고문을 가하기도 했고, 무법자답게 전투를 했습니다. 그러나 해적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적기라는 것을 사용합니다. 항복한다면 자비를 베풀지만 저항한다면 모두 죽이겠다는 의사표현은 징기스칸 당시 몽골군이 사용했던 전략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해적기라는 신호효과를 사용해 자신들의 피해를 줄이면서도 이윤을 추구할 수 있었고, 약탈당하는 상선측에서도 목숨을 뺏기지 않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양측 모두가 이득이 되는 해적기의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선 저항할 경우 무엇보다 무자비해져야 했고, 항복한다면 대단히 자비로워야 했습니다.

해적들의 이러한 모든 행위는 이윤창출을 위한 행위이고, 약탈당하는 측에선 대단히 억울한 일이지만 해적들의 행위는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의 이익이 되기도 한다는 사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해적들의 약탈행위 덕분에 상선의 선장들이 가혹한 행위를 쉽사리 하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괴롭혔던 선원이 해적선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적들은 선원들의 평가가 나쁜 상선의 선장들은 가혹한 처벌을 가했지만, 선원들에게 평가가 좋은 상선의 선장들에겐 정중하게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가진 공포라는 이름의 브랜드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줬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악행을 하는 동기를 견제했던 것입니다.

해적들은 또 다른 목적, 즉 착취적인 선장들에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야만적인 고문을 가했다. 해적의 정의를 두려워했던 상선의 선장들은 선원들을 덜 가혹하게 다루게 되었고, 이런 점에서 해적들은 상선 선원들의 복지에 이바지했다고 볼 수 있다. - p.206

비록 범죄조직을 효율적으로 이끌기 위해서였긴 하지만 해적들이 프랑스 혁명이나 영국 의회의 역사보다도 빠른 시기에 확립한 민주적 장치들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해적들은 자유인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느냐는 대답에 경제학적인, 민주주의적인 해답을 내놓은 것입니다. 해적 조직은《파리대왕》의 학생 사회보다 세계 500대 기업에 더 가까웠습니다. 해적들은 경제적 이득을 추구한다면 조직의 부를 최대한 평등하게 분배하고, 권력자를 견제하며, 합리적으로 조직원의 의욕을 고취시키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호라는 배가 운행함에 있어서 해적선이 내놓았던 이러한 교훈은 경청할 만한 내용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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