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이 답이다 - 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떻게 현명한 판단을 내릴까
게르트 기거렌처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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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에서 외야수가 플라이볼을 놓친다면 그것은 에러가 됩니다. 그러나 플라이볼의 낙하지점을 짧은 시간 안에 확실히 예측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선수들은 대부분의 공을 캐치하며, 공을 잡지 못하는 것을 실수로 간주합니다. 비슷한 예는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하고 있는 자동차 운전이 있습니다. 운전은 1,500개 이상의 작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기술인데, 뇌 수술 전문 외과의를 뺀 나머지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복잡한 것이 바로 운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전을 아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야구선수와 운전자의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서 많은 부분이 무의식적인 부분에서, 직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종의 무의식적 지능인 직관은, 스포츠나 예술분야 등을 제외하곤 천대받고 있습니다. 패러다임적 측면에서 현대는 그야말로 이성의 세기, 과학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과학은 끊임없이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을 하고 있고 많은 업적을 이뤘습니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물이나 공기의 운동마저 정확하게 예측하고자 하고 있으며, 이뤄질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과학적 방법론이 기반이 되는 사회가 됨에 따라 모든 것이 과학을 언급하지 않고선 안 되게 되었습니다. 종교적 논쟁도 과학의 입김을 비껴갈 수 없으며, 인문학 논문에서마저도 수학적, 과학적 방법론이 도입되어 각종 수식과 그래프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생각하는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허풍마저 R=VD라는 수식으로 표현되자 그럴듯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은 웃지 못할 코미디입니다.

우리는 곳곳에서 과학을 발견할 수 있고, 그 정보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자 게르트 기거렌처는 묻습니다. 과연 대중들이 과학적 메시지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일기예보에서 내일 비 올 확률이 30퍼센트라고 하면 그것은 무슨 뜻인가?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면 성 기능 장애가 올 확률이 30퍼센트라는건 무슨 의미인가? 이런 과학을 기반으로한 수많은 데이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 지 물어본다면 그 답은 부정적입니다. 즉 우리 대부분은 과학적 신호에 따라 움직이지만, 그 신호가 무엇을 의미하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 상황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험 숙달 능력, 위험의 속성과 정도를 이해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은 다행스럽게도 대중이 우매하거나 미개한 존재라서 그렇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기존 교육시스템에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사회에 진출해서도 쉽게 얻기 힘든 지식이라는 점입니다.

놀라운 점은 이런 과학적 데이터를 해석하는 능력이 소위 전문가라 불리우는 계층들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발표한 9퍼센트의 배당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투자 상담사들에게 물었을 때 절반이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신종인플루엔자에 대한 타미플루의 약효와 선택결정에 대한 논란과 같은 의학적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망률 80퍼센트 감소나 70퍼센트 증가 같은 효과가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 것인지 제대로 인지하는 경우는 의사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이런 과학적 데이터에 대한 인지과정에서 혼란의 원인은 사람들의 지능이 문제라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전문가의 해독능력 및 대중들과의 소통 능력 부재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골드만삭스의 최고재무책임자 데이비드 비니어는 그들의 위험 모델에 따르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25시그마 사건'이 며칠간 이어지면서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25시그마 사건이라면 얼마나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사용된 위험모델에서 3시그마 사건은 2년에 한 번, 5시그마 사건은 이전 빙하기 이후 한 번, 7~8시그마는 빅뱅 이후 한 번 일어날 확률이며, 25시그마는 그 모델로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확률이다. 그러나 그처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일어났다. - p.69 

금융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수학적 모델은 예측 불가능한 금융시장의 위험을 예측 가능한 것인 양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확실성의 환상으로 인한 절대적 확신성은 모든 의혹을 배제하는 위험한 정신적 상태입니다. 복잡한 위험 모델은 극소수의 위험요인을 지니고 충분한 데이터를 지닌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한 세계에서나 가능할 뿐 실제 세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저자는 금융시장과 같은 복잡한 세계에선 가장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n분의 1 방식, n개의 펀드에 똑같이 투자하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분산투자가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방법론이 애용되는 이유는 그 방법론 자체가 가져다주는 안심과 보증 때문입니다.

 

"1969년부터 회사의 투자를 살펴봤습니다. N분의 1 방식을 우리의 실제 투자 전략과 비교해 봤습니다. 단순 어림셈법을 썼다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더군요."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단순한 것이 낫다는 생각에 저는 동의합니다만, 고객들에게는 뭐라고 설명하지요? 고객이 들으면 '그건 나라도 하겠다'고 할 게 뻔합니다." - p.148 

저자는 커다란 항공기 사고로 이어질뻔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사고를 막았던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두 가지의 지적을 합니다. 첫째는 우리는 때로는 직관적으로 행동할 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위급할 때 단순한 방법이 효과적이며 그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가 체크리스트인데, 해야 할 일을 기록하고 한다는 단순한 방법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아툴 가완디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 조종석에선 유용한 체크리스트가 중환자실에선 무용지물이 되기도 합니다. 항공사의 문화는 오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개선하는 반면, 의료계는 오류를 부정적이고 받아들이고 개선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병원이 가진 권위적인 구조, 사고를 숨길 수 있는 시스템, 실패에 대한 소송과 책임의 공포 등은 의사들로 하여금 방어적 의사결정을 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현명하지 못한 판단과 환경을 만듭니다.

 

체크리스트의 시범 사용 기간이 끝나갈 무렵에는 80퍼센트의 직원들이 체크리스트가 사용하기 쉬우며, 실시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고, 치료의 안전성이 향상됬다고 전했다. 그리고 78퍼센트의 의료진이 실제로 체크리스트가 수술실에서 실수를 방지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직원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만약 당신이 수술받는다면, 체크리스트를 사용하길 원합니까?" 응답자의 93퍼센트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체크! 체크리스트》p.211 

기거렌처는 더 많은 정보, 더 복잡하고 정교한 공식을 사용하는 전문가들이라고 해서 더 위험을 해석할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며, 대중들도 위험을 해석할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위험 판단력을 교육하고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위험을 판단하기 위해선 전문가의 권위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태도를 버려야 하며, 확실성이라는 환상을 포기해야 하고, 오류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권위자의 명령만이 들리는 상황에서는 스스로를 믿고 배에 남아있으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바다에 뛰어들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위험과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선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희망적인 것은 스스로 결정하고 생각하고 책임지는 용기는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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