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범우사상신서 9
E.H.CARR 지음, 김승일 옮김 / 범우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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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는 공무원 국사 수험서의 첫 장에서 다루는것은 선사시대가 아닌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이런 역사를 보는 관점은 과거의 사실을 강조하는 랑케, 액턴의 관점과 역사가의 입장을 강조하는 크로체, 콜링우드의 입장, 그 두가지를 절충하는 카의 입장 이렇게 3가지가 제시되지만, 그중 중간적인 입장에 있는 이 책의 저자 에드워드 H. 카가 가장 비중있게 다뤄집니다. 20세기 중반에 나온 이 책이 아직도 주목받고 있는것은, 그의 역사인식론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책을 낼 당시 저자가 반론하고자 했던 논리 또한 아직도 존재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역사를 바라보는데 있어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사실만을 확인한다는 실증주의, 역사는 특수한 것만 다룬다는 개념, 사람은 역사에서 뭔가를 배울 수 없다는 주장, 역사에 나타나는 인물의 사생활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어떻게 내려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공적인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 문제, 역사에서 우연적 사건이 의미하는 것, 역사의 객관성, 역사가는 어디까지가 단일한 개인이고 어디까지가 사회와 시대의 산물인지에 대한 문제, 역사는 문학인가 혹은 과학인가에 대한 문제와 같은 당시에도 지목되었고, 지금도 지목되어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카는 자신의 역사인식론을 펼칩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관계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카의 가장 유명한 문구중 하나인 이 말은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계에 대한 그의 주장입니다. 19세기의 역사가들이 주장했던 틀림없는 사실 이라는 마법의 문구는 실증주의자들로 하여금 사실 숭배를 조장합니다. 로크나 러셀의 경험론적 철학이 이런 역사관과 조화를 이루는데, 이런 경험주의의 인식론은 주관과 객관의 완벽한 분리를 전제로 합니다. 역사란 확인된 사실의 집성으로 이루어진다는 이 주장은 20세기 초에 들어 반대에 직면하는데, 이탈리아 철학자 크로체나 미국의 역사가 칼 베커 등은 역사는 역사가가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이런 두 주장은 역사가 과거에 있느냐, 현재에 있느냐에 대한 논의인데, 카는 한쪽을 다른쪽 위에 올려놓는 것은 불가능하며, 두 논의는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역사가는 이의 없이 산업혁명을 위대하고 진보적인 업적으로서 다룰 것이다. 혁명 도중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들은 초기 단계에서 공업화에 따르는 대가로 불가피한 것이었음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한 대가를 보고 진보를 중단하고 공업화를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고 주장하는 역사가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영국의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소련의 농민집단화 문제에 있어서 잔혹성과 무자비를 공업화의 정책에 따른 희생의 불가피한 부분으로서 논한다면, 나쁜 일에 관대하고 냉소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 pp.122~123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판단할때는 어느 정도의 해석을 전제로 하며, 역사적 해석은 언제나 도덕적 판단, 가치판단을 포함합니다. 역사서에도 그런 가치판단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역사를 쓰는 역사가 또한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역사가의 지식은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닌,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축적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의 저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가의 사회적 배경을 고려해야 합니다. 과거의 사건, 제도, 정책에 대해 판단을 내림에 있어서 이런 해석이 중요한 것은 역사가의 판단 자체가 현재의 가치규범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치규범 속에서 역사가들은 자신들이 품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인지하고, 그것을 초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 왔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 포이어바흐 

과거의 수많은 사실 가운데서 어떠한 것이 역사로서의 가치가 있으며, 그것을 역사로 받아들여야 하느냐에 대해 카는 현재의 상황에 교훈을 주고, 미래를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역사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역사가들은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현재 사회에서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역사적 발견과 주장이 사회의 관심사를 대변할 뿐 아니라 사회의 지적 영향력과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역사는 문학적 탐구가 아닌 과학적 탐구 영역이 되어야 하며 역사 흐름은 다양한 사회 이론과 계량화, 과학 법칙을 통해 현재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지식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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