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 레이코프는 버클리에서 인지과학 입문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첫 과제를 내줍니다. 그 과제는 바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를 듣고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 입니다. 과연 성공한 학생이 있었을까요? 그는 지금까지 단 한명의 학생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언어는 그 언어 자체뿐만 아니라 언어와 관련된 종합적인 프레임을 가져옵니다. 프레임을 부정하기 위해선 프레임을 떠올려야 하기 때문에, 부정해야 한다는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경쟁자의 프레임을 공격하는 것은 경쟁자의 메시지를 더욱 강화해 줄 뿐이라는 교훈은 그의 프레임 이론이 왜 200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 승리했는지를 효과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프레임은 어떤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종류의 지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코끼리는 긴 코와 귀, 큰 덩치, 아프리카, 서커스 쇼, 화나면 무섭다 등과 같은 여러가지 정보에 의해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런 언어의 숨겨진 은유들은 잘 사용하면 그 언어 자체 외에 자기가 원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화당의 조지W부시가 사용했던 세금구제(Tax relief), 부모동의서(permission slip), 깨끗한 하늘 계획(The Clear Skies Initiative), 부분출산(Partial-birth), 죽음의 세금(death tax) 등과 같은 단어들은 곧바로 프레임을 형성하고 논쟁을 지배하게 됩니다. 이러한 단어는 보수적인 폭스뉴스 뿐만 아니라, CNN, NBC를 포함한 모든 방송사, 심지어 반대파인 민주당 상원의원마저 세금구제와 같은 말을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프레임을 취합함으로서 그 안에 내재된 은유적이고 본질적인 생각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설령 깨끗한 하늘 계획이 사실은 대기오염도를 높이는 정책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일찍이 리처드 닉슨은 그 진리를 뼈아픈 방식으로 깨달았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그가 한창 사임 압력을 받던 당시의 일입니다. 이때 그는 TV에 나와 연설을 했는데 여기서 닉슨은 전국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 순간 모두가 그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 p.24

미국의 정치의 핵심으로 레이코프는 이상화된 가족구조의 두가지 모델을 제시하는데,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부모 모델입니다. 엄격한 아버지 모델은, 세상이 앞으로 위험하고 살기 힘들고, 아이들은 본성이 나쁘기 때문에 선하게 다듬어져야 한다고 가정합니다. 엄격한 아버지는 가족을 지원하고 방어하는 도덕적 권위자로서, 신체적 훈육을 통해 내면적 규율을 달성하고 도덕성과 생활력을 증진합니다. 잘 훈육된 자녀는 자기 힘으로 삶을 꾸리기 때문에 의존적인 자녀들에게는 더욱 엄격한 훈육과 바깥 세상에서 단련될 수 있도록 어떠한 지원도 단호히 끊어야 합니다. 이런 관념을 국가에 투사하면,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사람들을 버릇없게 만들기 때문에 악한 것이며 제거되어야 하고, 강력한 국방으로 국가를 보호하고, 기업활동을 지원하고 형벌을 통해 질서를 수호합니다. 얼마나 부를 쌓느냐가 선한 시민의 척도가 되고, 세금은 선한 사람들에 대한 벌입니다. 그에 반해 자상한 부모 모델은 세상은 기본적으로 좋은 것으로 가정하고, 그렇게 만드는것이 책임임을 가정합니다. 아이들은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부모의 역할은 그것을 공동으로 북돋아 주는 것입니다. 이런 관념을 국가에 투사하면, 공감과 책임이 핵심 가족가치이기 때문에, 사회 안전망과 정부보호, 보통교육, 인프라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 됩니다.

현실의 사람은 이런 엄격한 아버지 모델과, 자상한 부모 모델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모델에 어느정도 능동적이냐에 따라 사람의 이념이 형성되는데, 이런 언어의 프레임을 활용하면 특정 모델에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공화당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선 이런 엄격한 아버지 모델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는것을 터득했고, 테러에 대한 전쟁 프레임 등을 포함한 각종 수사는 자연스럽게 엄격한 아버지 프레임을 작동시켜 대중들에게 정치를 보수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이게 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에 반해 민주당은 그러한 프레임 쟁탈전을 포함한 선거전략에서 실패합니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30~40년 일찍 출발했고, 20억달러가 넘게 두뇌 집단에 투자했습니다. 우익 두뇌 집단은 막대한 포괄적 보조금과 기부금을 받고 있으며, 이 자금은 최신식 건물과 인적 자원을 육성하는데 사용됩니다. 그에 반해 진보적 재단은 사람들을 될수 있는 한 많이 돕는것이 원래 가치이기 때문에 인재 개발이나 인프라 건설에 쓸 돈이 남아있질 않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공론의 선택, 미디어의 영향력적인 면에서 우익 두뇌 집단의 우위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은 TV에 출연하는 지식인 중 80퍼센트가 보수주의 두뇌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데, 연구에 쏟아부은 돈과 미디어에 노출된 시간은 비례함을 보여줍니다. 2002년 우익이 연구비로 지출한 돈은 좌파의 4배인데, 미디어에 노출된 시간 또한 4배였습니다. 투자한 만큼 효과를 거둔 것입니다.

또한 민주당의 선거실패요인으로는 관점의 실패가 있었는데 그것은 계몽주의의 신화로부터 비롯됩니다. 계몽주의의 두가지 신화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존재이므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기만 하면 그들은 옳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는 가정과 "자기 이익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이익에 기초하여 사고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합리주의적 관점이 민주당의 주요 방식이였는데, 2000년 대선에서 고어가 부시의 감세안이 상위 부자들에게만 혜택을 준다는 사실을 되풀이해 강조해도 여전히 가난한 보수주의자들은 민주당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그것은 이익에 따라서 투표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투표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자기 이익에 전혀 관심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최우선적으로는 가치관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있었던 노동조합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는데, 당시 주지사였던 그레이 데이비스는 노동자들에게 훨씬 유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돈을 들여 홍보했고, 실제로 조합원들에게 누구의 입장이 더 유리한지를 물었을때 조합원들은 데이비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 투표할 것이냐는 질문에 조합원들은 슈워제네거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대외 정책의 핵심적 은유는 국가를 사람처럼 보는 것이다. 이 은유는 이라크 국가를 사담 후세인이라는 한 인간으로 개념화하는 말을 통해 하루에도 수백 번씩 사용된다. 우리가 듣는 바에 따르면 이 전쟁은 이라크 민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 한 사람을 대상으로 시작된다. 일반 미국 시민들은 "사담은 독재자야. 그를 막아야 해." 같은 말을 하면서 이 은유를 사용한다. 이 은유는 물론 첫 이틀동안 투하되는 폭탄 3000발이 그 한 사람에게만 쏟아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은폐한다. 그것들은 이 은유 뒤에 은폐되어 있는 수천 명을 죽일 테고, 그 사람들은 우리가 전쟁하는 대상이 아니다. - p.136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과학이고, 언어를 올바로 사용하는 것은 개념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쟁점을 올바른 프레임으로 구성하는 것, 시각을 반영하는 프레임을 짓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어가 결여된 것은 실제로는 개념이 결여된 것이며, 개념은 프레임이라는 형태로 떠오릅니다. 프레임이 있으면, 언어는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TV에서 보수주의자는 이미 프레임으로 개념이 정립된 세금구제 라는 단어를 두 마디 사용합니다. 그러면 프레임이 없는 진보주의자는 그에 반하는 생각을 한 단락짜리 길이로 논설을 해야 합니다. 프레임이 이미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그 프레임을 사용하는것은 대단히 쉬우며 프레임이 없으면 훨씬 많은 힘이 듭니다. 이런 현상을 인지과학에서는 저인지(hypocognition)이라고 하며, 한두 단어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교적 단순하고 고정된 프레임이 결여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저인지상태였기 때문에 민주당은 선거에서 패했다고 레이코프는 지적합니다.

사람들은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자신의 도덕적 정체성과 가치관에 투표한다는 것, 설령 사실에 기반한 통계 자료를 엄청나게 제시하여 논쟁에서 승리하고, 새로운 정책들을 내놓더라도 승리로 연결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가치관을 확립해 정치적 논쟁의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기 때문에, 프레임은 우리의 목적, 계획, 방식, 결과를 결정하며 사회정책과 제도를 형성합니다. 이런 프레임을 재구성하는것이 바로 사회적 변화이며 선거결과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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