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 이민에 대한 미국 사회의 편견과 신화
아비바 촘스키 지음, 백미연 옮김 / 전략과문화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왔듯이, 세계적으로는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의 이동이 시작되었고,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민문제라는 새로운 세계적 논쟁거리를 만들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민논쟁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이민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그리고 그에 기초한 이민정책의 형성과정과 결과를 보여줌으로서 이민과 관련된 여러 사회적 문제에 대해 고찰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런 미국의 이민문제는 한국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미국의 이민자중 상위 10위권 안에 한국인(2005년 기준 672,000명)이 있으며, 또한 이민을 받는 나라로서 이민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민논쟁에서 이민에 대한 신화들이 몇가지 있는데, '이민자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이민자가 임금을 하락시킨다', '이민자들은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공공서비스를 다 써버려 미국경제를 고갈시킨다', '이민자는 동화되기를 거부한다. 따라서 미국의 국민적 정체성을 훼손시킨다', '우리는 이민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불법이민에 반대한다'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주장들의 오류를 지적하며 이민자는 문제의 원인이 아닌 결과물이라고 말합니다. 이민에 대한 잘못된 관점은 이민자들은 투표권을 포함하여 모든 미국 시민들이 항유하는 많은 권리들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공직자들과 일반 대중들, 미디어는 아무런 반격도 할 수 없는 이민자들을 주변화시키고, 비난하고, 처벌하고, 차별합니다. 비시민은 손쉬운 목표물이자 편리한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여러 형태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세계체제는 무장을 하게 된다. 빈곤과 싸울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체제는 가난한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다.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이민자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주장은 제한적 이민정책의 주장 중 하나인데, 이는 미국인의 일자리라는 개념에 오류가 있습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국가 정체성을 가진 일자리라는 것은 이미가 퇴색되었으며, 많은 산업에서 사용자들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고용합니다. 또한 국내에서 빈곤과 불평등을 만들어냄으로서 지속적으로 이민자들을 유입시키고 취약하게 만드는 정책을 지지함으로서 비용을 절감합니다. 노동자와 정부들은 부족한 일자리를 유인하고 보존하기 위해 더 낮은 세금, 낮은 임금이라는 친기업적 환경을 제공함으로서 바닥을 향한 경주라는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전 지구적 불평등을 유지하고 이용함으로써, 고이윤 저비용이라는 모델을 이끌어 왔습니다. 기업은 경제적, 법적 보호 수단이 없는 노동자들이 많을 때 이득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는 이민이 사회의 불평등 증가의 원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미국에서의 불평등을 가속화시키는 글로벌 경제의 재조정이 이민의 증가에 기여했습니다. 즉, 불평등의 증가는 이민노동자에 대한 수요를 창출했고 이민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민에 대해서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대단히 모호합니다. 이민법은 법을 위반한 사람들에 대해 말할 때 일반적으로 마음속에 떠올리는 그런 법과는 아주 다르기 때문입니다. 법을 위반하는 것은 공격, 절도, 살인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데, 즉 위해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법의 위반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일부 미등록 이민자는 불법으로 국경을 넘지만, 사실 많은 이민자는 국경을 넘기 위해 합법적 허가증을 얻고, 임시체류비자를 갖고 미국에 입국합니다. 그 비자가 만료되었을 때,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불법 이민자가 됩니다. 일부 시민은 이민자가 왜 법을 지키지 않는지, 적절한 서류를 제출하지 않는지 혹은 비자를 갱신하지 않는지, 시민이 되지 않는지, 합법 이민자가 되지 않는지를 궁금해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흑인들이 스스로 노예제에서 합법적으로 해방되지 못했던 그 이유와 동일합니다. 법이 다른 사람들은 누리고 있는 권리를 일부 집단에게는 허용하지 않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계속에서 무엇이 권리를 누릴 자격을 갖게 되는가에 대한 가치적 논쟁이 야기됩니다. 모든 사람은 인간이기 때문에 권리를 갖는지, 아니면 시민으로 규정된 집단으로 제한되어야 하는지, 그러하다면 시민인지는 어떻게 결정하는지? 혹은 인종적인지?

최초의 법들은 노예제를 지지했고 시민권을 백인에 한정했습니다. 이후에도 법은 폭력적인 사적 제재와 인종차별정책을 정당화했는데,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제한적 이민법 또한 자의적 태도에 기초하여 법적 지위를 규정하고 차별화합니다. 아직도 인종에 따라 이민여부가 고려되는 우생학적 요소가 있으며, 때론 정치적인 요소 때문에 법은 어떤 사람을 합법으로 할지, 불법으로 할지 정하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미국에서 쿠바인이라면 '젖은 발, 마른 발' 정책을 통해 자동적으로 난민지위가 주어지고 입국이 허용되지만 멕시코나 아이티인의 경우는 그 존재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관광비자를 제외하고는 미국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81세의 아이티인 침례교 목사인 조지프 단티카에게 일어났던 일은 합법과 불법 이민자를 구분하는 희한한 명부를 입증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단티카는 미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유효한 복수 입국비자를 가지고 있었다. 2004년 10월 아이티인 무장 폭력배들이 그의 집과 교회에 침입해 요구한 돈을 내놓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며칠동안 숨어지낸 후 단티카는 자신의 비자를 갖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가 마이애미의 이민국을 통과할 때, 그의 비자는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받았으며 입국 도장도 받았다. 그 뒤에 이민국 관리가 얼마나 미국에 머무를 것인가를 물었다. 그가 아이티로 돌아가면 죽을 것 같아 정치적 망명을 요청할 생각이라고 말하자, 그는 바로 체포되었다. 4일 후 그는 크롬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 - p.236

사람이 직립하게 된 이후 사람은 전 세계를 이동해왔으며 국경이나 이주의 흐름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몇 백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민은 나라와 지역간에서 현대적 관계와 경제적 불평등의 역사에 의해 구조화되고 있습니다. 불평등한 경제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민문제에 대해 현재는 높은 담을 쌓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2005년 생긴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역외국경 작전협력을 위한 관리처, 줄여서 프론트엑스 라는 기관을 들 수 있습니다. 20대의 비행기와 30대의 헬기, 100척 이상의 배를 보유한 이 최첨단 기관은 기존 난민방어의 개념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경선을 자국 영토 밖으로 이동시킨다는 획기적인 개념입니다. 프론트엑스는 성공적으로 방어를 수행해 2006년 3천여명에 달하는 익사자를 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또한 미국은 2006년 멕시코와의 국경에 1125km의 최첨단 철조망을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전체 국경선 3360km중 33%에 해당하는 엄청난 길이입니다. 철조망이 설치되지 않는 지역은 사막이거나 산이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1998년부터 2004년 사이 국경에서 1954명이 국경을 넘다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20년간 처벌적이고 위험하고 착취적인 정책은 이민의 감소를 가져오지 못했으며 그 반대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반이민자 정책이 가혹해질수록 이민은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이민은 흔히 부와 풍요, 기회, 안전을 얻기 위한 개인의 문제로 이해하기 쉽지만 이민의 주요 원인은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문화적 구조 속에서 파악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민문제의 해결은 높은 벽을 쌓고 더욱 차별하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결국 보다 평등한 세계경제체제를 만들어야 하며, 사회안전망과 사회적 분배 문제, 제3세계의 빚 문제 등 국제적 정책의 변화 방향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현재 한국에서도 논의되고 있는 이민노동자,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문제 등 시민권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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