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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원조 - 아프리카 경제학자가 들려주는
담비사 모요 지음, 김진경 옮김 / 알마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지난 10년간 Live 8, 밀레니엄개발목표, G7 정상회의, 밀레니엄 챌린지 어카운트 등으로 인해 수백만 달러의 돈이 아프리카를 위해 일하는 구호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많은 미디어들도 아프리카를 도와줘야 할 도의적 의무가 있음을 상기시키는데, 이러한 도움에는 한 가지의 믿음이 전제화되어 있습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하고, 그 방식은 반드시 원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십 년간 이루어진 개발원조는 오히려 원조를 받는 국가의 국민들로 하여금 훨씬 더 빈곤한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아프리카에 대한 선진국의 원조 사업들을 비판하는 글을 쓴 사람이 저자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 책처럼 단호하게 반대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아마도 그동안 아프리카 경제에 대한 공개적 담론을 백인 남성 경제학자들이 주도한데 반해, 잠비아에서 태어나 흑인 여성으로서 경제학자가 된 저자의 특별한 이력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대규모 원조는 1929년 영국에서 식민지 영토에서의 정치적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시작된 마셜플랜의 성공은 유럽 외의 지역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태동하게 했습니다. 유럽의 재건이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자 원조 지역으로 아프리카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고, 투자자본이 경제성장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시각이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국내 저축 및 민간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물적 자본과 인적 자본이 부재한 상황에서 해외 원조는 더 많은 투자를 유발시켜 더 큰 경제성장으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비춰졌습니다. 그 이후 냉전시대에는 선진국에게 원조는 새롭게 발견한 이타주의와 자국의 전략적인 지정학적 영향력을 고수하려는 엄청난 이익을 결합시킨 수단이 되었습니다. 냉전시대에 원조는 세계를 자본주의 또는 공산주의로 만들기 위한 핵심적인 수단이 되었기 때문에, 원조의 필요성은 그 나라가 원조를 받을 만한지 또는 정권이 어떤 성향을 띠는지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쪽 진영과 동맹을 맺을 의사가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1975년 이후 원조가 대규모 공공기반시설 투자에서 농업과 농촌 개발, 단체 예방접종 프로그램, 영양실조 환자들을 위한 식량보급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1980년대 말이 되자 신흥시장국들의 부채는 1조 달러에 달했고, 역으로 빈곤국에서 부유한 국가로 흘러 들어가는 총액은 매년 150억 달러에 달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1970년대부터 아프리카에 제공된 3000억 달러 이상의 원조금은 사실상 거의 이룬 게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정학적, 전략적 경쟁관계와 경제적 이득의 맥락에서 볼 때, 이것의 가장 주된 원인은 원조의 많은 부분이 아프리카대륙의 개발 성과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서구의 입맛에 맞는 이런저런 유형의 정권을 세우고 유지시키는 데에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 폴 카가메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 계획은 마셜플랜이 유럽에서 성공을 거둔 것에서 고안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이 둘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마셜플랜이 진행되는 동안 그 어떤 국가도 원조 유입금이 GDP의 3퍼센트를 넘지 않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아프리카는 GDP의 거의 15퍼센트에 달하는 개발원조금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마셜플랜은 한정적이여서 5년 뒤에는 지원이 끊겼지만,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은 적어도 50년 동안 지속적으로 원조금을 받아 왔고 만료일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아프리카 정부들은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인 자금 계획에 대한 동기부여도 없고, 개발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볼 이유도 없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전쟁으로 황폐화된 유럽 국가들은 당시 적절한 제도들, 숙련된 대국민 서비스, 원활히 운영되는 기업체, 효율적인 법적 사회적 제도들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었고 전후에 필요했던 것은 이러한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자금이었습니다. 즉 마셜플랜은 재건의 문제였지 경제개발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아프리카는 사실상 개발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는 개발기구들이 독재적이고 부패한 정부로 소문난 가장 타락하고 무책임한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계속해서 원조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프리카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속 가능한 장기적인 경제성장과 빈곤 퇴치이지만, 이는 부패가 만연해 있는 환경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목표입니다. 원조 덕분에 수원국들은 부패가 부패를 낳는 원조의 악순환에 빠르게 빠져들게 됩니다. 해외 원조는 언제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을 제공함으로써 부패한 정부를 지탱해줍니다. 타락한 정부는 법치, 투명한 공공제도의 설립, 시민의 자유 수호를 방해함으로써 빈곤국에 대한 국내외의 투자 매력을 떨어뜨립니다. 심화되는 불투명성과 점점 줄어드는 투자는 경제성장을 감소시키고, 이는 더 낮은 취업 기회와 빈곤의 증가를 불러오기 때문에 이처럼 늘어나는 빈곤에 대한 대책으로 공여국들은 또 다시 많은 원조를 하게 되고, 하강하는 빈곤의 소용돌이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듭니다. 사실상 이 순환은 저개발을 영속화하고, 경제적 실패를 확정짓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부패를 양산하는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조제공은 계속 이루어집니다. 개발기구들은 단순히 차관을 제공해야 하는 압박감이 있습니다. 세계은행은 만여명의 직원이 있고, IMF는 2,500여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여기에 다른 유엔기구와 NGO, 민간 자선단체와 정부의 원조기구 직원들까지 더하면 50만 명 가량이 됩니다. 원조를 제공받는 관리들의 생계와 마찬가지로 원조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생계도 원조에 달려 있습니다. 또한 회계연도에 대한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데, 조금이라도 지출되지 않은 금액이 있으면 이후의 원조 프로그램이 대폭 삭감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공여국들 역시 돈을 퍼주지 않으면 빈곤국들이 빚을 되갚지 못하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공여국들의 재정 상태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또 다른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국가에 대량의 돈이 유입되면 아무리 경제가 탄탄하다 해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상당한 규모의 원조금이 마구잡이로 유입된다면 국내 저축과 투자 감소, 인플레이션, 수출 감소와 같은 문제들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결국 원조는 선진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걷어 과거 식민지의 엘리트 계층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원조제도에 새로운 방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국을 위시한 투자국들은 에너지자원을 받는 대가로 공공기반시설을 건설해주는 교환 시스템을 제공하고, 이런 방식은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공공기반시설을 통해 무역이 발생하고, 무역을 통해 빈곤탈출에 힘을 쓸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두고 선진국이 도덕적 책임감을 느낀다면 숙고해야 할 문제는 원조가 아니라 무역임을 여러 수치들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조를 포기하고 채권발행과 무역을 택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원조를 택한 국가들에 비해 빠른 성장과 빈곤탈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가 대출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금융대출을 해주는 혁신을 일으킨 이래 전 세계 43개국에서 이러한 모델을 채택합니다. 이러한 소액금융에도 반대의견은 존재하는데 높은 이자, 빚을 굴려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가는 방식을 부추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어떤 대출에도 적용되는 일반적인 사안이며,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은 소외되어 있던 빈곤층들이 금융 역학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역을 함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프리카의 주요 수출품들인 농업의 경우 선진국의 상품들과 경쟁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OECD 회원국들은 거의 3000억 달러를 자국의 농업 보조금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OECD국가들이 모든 개발도상국에게 제공하는 총 원조금의 세 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아프리카는 이 같은 구속적인 무역 엠바고 때문에 연간 5000억 달러 정도의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조를 중단하면 당장에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이 아사할것과 같은 이미지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아프리카에서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동안 유입된 원조금을 구경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결여되어 있는 것이 바로 정치적 의지입니다. 선진국들의 정치인들은 부양해야 할 원조산업이 있고, 농민들을 달래야 하며, 선거구민들의 분노를 풀어주어야 합니다. 때문에 아프리카의 종말에 대해서까지 걱정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며, 차라리 원조금 수표에 서명하는 일이 훨씬 더 쉽습니다. 또한 아프리카 지도자들에게도 원조 모델을 버려야 할 동기가 전혀 없습니다. 때문에 아프리카의 변화에 대한 과제는 선진국 시민들의 몫입니다. 실제로 아프리카 성장기회법안이 탄생한 계기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위해 무역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의회에 청원한 6만명의 미국 시민들의 힘이였습니다. 아프리카 개발의제를 활성화하는데 필요한 것은 이러한 유형의 행동주의입니다. 아프리카 개발의 난관을 해결하려면 개발에 어떤 효과가 있고 없는지에 대한 새로운 의식 수준과 더욱 폭넓은 개혁과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눈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속담처럼,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고기 잡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