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내일 - 쓰레기는 어디로 갔을까
헤더 로저스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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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강대한 문명은 거대한 유적을 만들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중국인들은 만리장성을, 크메르인들은 앙코르와트를 후세에 남겼습니다. 그 시대를 상징하고, 천년 넘게 이어져올 유산을 유적이라고 한다면, 우리도 거대한 유적을 이미 완성시켰습니다. 지평선 너머까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유적, 쓰레기 입니다. 현재 전세계인들은 한사람당 하루에 7kg의 쓰레기를 버림으로서 이 거대한 유적을 완성시켰습니다. 계속 소비하고, 계속 버립니다. 낡은 물건은 버리고 신제품을 사는 것이 훨씬 돈이 덜 들기 때문입니다. 쓰레기에 관해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들이 자본주의의 불행한 부산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들은 사실 자본주의의 성공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쓰레기는 완전히 실현된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입니다.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기 전의 쓰레기들은 모두 자연에 환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였고, 20세기 초만 해도 많은 부분의 쓰레기들이 자체적인 재활용 시스템을 통해 해결됬습니다. 당시의 재활용 제도를 역사학자 리처드 와인스는 확대된 재활용이라고 표현했는데, 농작물은 도시로 배달되어 팔렸고, 분뇨와 찌꺼기는 농촌에 팔렸습니다. 도시에서 나오는 찌꺼기를 이용해 돼지를 키우는 방식은 가장 흔한 음식물 쓰레기 처리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에 선모충병이 확산되고, 1953년에는 수포성피진이라는 돼지수포병이 발병하자 보건당국은 찌꺼기를 돼지에게 먹이는 일을 완전히 금지했습니다. 찌꺼기를 익히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건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도시에는 점점 쓰레기가 쌓여 갔고, 각종 전염병과 악취라는 결과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시민협회들은 쓰레기와 불결함이 사회 혼란과 분명히 연관이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하며 경고했지만, 지도층은 새로운 산업 경제에서 경제적 양극화를 문제의 원인으로 바라보지 않고, 도덕적 차원에서 슬럼 거주자의 사망과 고통에 접근했습니다. 쓰레기의 범람을 정신적 타락과 연관 지은 것입니다.

하지만 곧 공학자들, 지방정부, 그리고 기업 소유주들은 깨끗한 거리는 곧 이동이 편리해짐을 뜻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공장과 사무실과 시장에 쉽게 갈 수 있으며, 이 모두는 경제가 움직이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입니다. 따라서 도로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어느 때보다 더욱 긴급한 사회적 의제가 되었습니다. 이전의 중류계급과 엘리트들은 높은 세금으로 공공도로와 대로를 관리하는 데 저항했지만, 인식의 변화 이후 공공서비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개혁적인 정부와 손을 잡았습니다. 시 공무원들은 거리를 청소하는 일꾼들에게 지역의 기업에게 중요한 도로를 자주 청소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외딴 지역의 거리나 노동계급과 이민자 거주지의 도로는 우선순위에 들지 않았고 청소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빈민, 노동계급, 이민자 거주지에는 여전히 쓰레기가 굴러다녔습니다.

당시 등장한 위생공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는 상당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스스로를 중립적이고 정치를 넘어서는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엔지니어들은 공적인 비판을 벗어났지만, 이 전문기술자들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았습니다. 막강한 기업인들의 영향력을 통해 쓰레기 처리 분야에 자신들의 세계적인 관점을 불어넣었습니다. 기업의 이익이 엔지니어링 문화를 형성했고, 실무자들이 공공선이나 도덕적 청렴을 자유시장 경제 발전보다 우위에 두지 못하게 합니다. 엔지니어들은 쓰레기의 개념화를 날이 갈수록 거대기업의 이익과 기대를 반영하게 되었는데, 이 현대의 쓰레기 전문가들은 쓰레기를 완전히 다른 물질이자 더는 사용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병적으로 자원을 낭비하는 시장 시스템에 대한 위생공학자들의 묵인 덕분에 대중은 나날이 많아지는 쓰레기의 의미를 의심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점점 더 소비하고 점점 더 많이 버렸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자기가 버린 쓰레기를 직접 해결해야 했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 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진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치단체의 기반시설이 생겨나면서 치우는 행위는 공적인 것이 되었고, 쓰레기는 대중의 눈과 의식으로부터 사라져버렸습니다.

1939년 세계박람회 개최지도 쓰레기를 매립한 땅에 세워졌다. 박람회 주제는 '내일의 세계를 건설하며'라는 문구였다. 이는 박람회 역사 최초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슬로건이었다. 분명히 미래는 쓰레기 위에 건설될 것이었다. 과거의 죽은 상품들을 기초로 미래 상품을 쌓아올린 자본주의의 기념탑을 보며 발터 벤야민은 박람회를 보며 "상품 숭배를 위한 성지 순례지다" 라고 평가했다. - p.124 

경제발전의 흐름 속에서 생산성은 점점 늘어갔고, 더 많은 제품이 생산됩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소비가 뒷받침되야 했습니다. 더 많은 소비를 위해선 기존 제품을 빨리 쓰고 버려야 했기 때문에, 제품을 만들때 제품의 수명을 짧게 만드는 노후화가 중요해졌습니다. 내재화된 노후화의 정점은 일회용 제품이었는데, 청결과 편리라는 매력적인 두 가지 기치를 내걸고 시장에 나타났습니다. 1961년에는 처음으로 일회용 기저귀를 선보였고, 질레트는 일회용 면도기 디자인을 꾸준히 발전시켜 일회용 면도기를 기존 면도기의 대용물로 대체시킵니다. 심지어 알루미늄 컴퍼니 오브 아메리카라는 회사에서는 귀찮게 설거지할 필요 없이 쓰고 나서 그냥 버리면 되는 프라이팬을 출시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단체들도 있었지만, 거대기업들은 비영리단체를 조직해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기업들이 후원하는 비영리단체는 쓰레기 논쟁의 용어를 바꾸어놓음으로써 정치적, 문화적 의미를 완전히 변화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들 캠페인은 나날이 늘어가는 쓰레기가 개인의 나쁜 습관에서 비롯된다고 대중을 교육했고, 기업 규제와 먼 입법을 중시했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보람이 있어서 미국에서는 1957년에 버몬트 법이 철회되었고, 포장재의 사회적 억제가 사라지게 됩니다. 기업들은 그들의 위대한 문화적 발명품, 쓰레기를 지켜냅니다.

절약과 저축은 오늘날 시민권 가운데 가장 나쁜 것일지도 모른다. 부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기계를 돌려야 한다. 기계가 돌아가야 사람들이 노동을 하고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량한 시민은 낡은 것을 고쳐 쓰지 않고 새것을 산다. 찢어진 구두는 버려야 한다. 꿰매면 안 된다. 자동차가 말을 듣지 않으면 하치장에 갖다 버려라. 새는 냄비, 고장난 우산, 가지 않는 시계는 청소부에게 주어라.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기계를 돌려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거대한 생산품을 소비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 리처드슨 라이트 

이러한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방법에는 투기, 소각, 매립 등이 있는데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매립입니다. 톤당 비용이 가장 적게 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매립에도 여러 단점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매립지에서 나오는 매립가스는 지구의 기후를 변화시키는 주요 원인입니다. 매립가스는 메탄을 함유하고 있는데,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열을 가두는 효과가 21배나 큽니다. 위생적인 매립시스템이 도입되었지만, 매립 시스템은 쓰레기 문제의 단기적 해결책일 뿐입니다. 지금은 유독하지 않아 보일지 몰라도, 플라스틱, 솔벤트, 페인트, 배터리, 그 밖의 유해물질을 담은 채 포장된 매립지는 마치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매립지는 기껏해야 50년을 견딜 수 있으며, 매립지 한 군데가 폐쇄되고 30년이 지나면 그 소유자는 더 이상 오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며 그 책임은 사회에 돌아옵니다. 오늘날 쓰레기 수출은 세계 규모로 이루어집니다. 공산품이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될 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 폐기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땅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와 멀어지기 때문에, 선진국 소비자들은 쓰레기 처리의 환경적 악영향을 더욱 눈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대중들에게 널리 지지를 받은 재활용은 분명 소각이나 매립보다 환경적으로 훨씬 건강한 것이지만 이 또한 여러 제약이 있습니다. 분류된 모든 폐기물이 실제로 재생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금속류와 유리를 착실히 분리하고 나서도 이를 구매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분리수거된 많은 물자가 곧바로 소각로나 매립장으로 가서 처분됩니다. 2000년 기준으로 알루미늄은 54퍼센트, 유리는 26퍼센트, 종이 40퍼센트, 플라스틱은 5퍼센트의 재활용율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재활용은 소각이나 매립으로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재활용을 통해 보존되는 에너지는 매립지에 쓰레기를 버리는 평균 비용의 5배의 가치를 지니며 처녀자원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기도 합니다. 재생 알루미늄 캔은 생산할 때에 비해 에너지가 96퍼센트나 적게 들고, 재생 펄프는 물이 58퍼센트 적게 들고 대기오염 물질을 74퍼센트나 덜 만들어냅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원천축소나 재사용과 달리, 재활용은 소비 수준을 줄이지 않으면서 기존의 생산 과정에도 거의 충격을 주지 않기 때문에 선호하는 방식입니다. 쓰레기를 줄이는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대규모 실업과 그에 따르는 가난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폐기물의 재사용이 생산직 일자리를 없앤다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은 것입니다. 재활용은 실제로 노동수요를 증가시켜, 매립이나 소각 방법에 비해 톤당 10배가 넘는 일자리를 만들어냅니다. 실제로 2000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재활용으로의 변화는 90명이 일자리를 잃은 반면 9000명이 새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재활용은 소규모 사업의 기회를 창출하고, 숙련 노동의 필요성을 높이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합니다.

재활용은 상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지만, 문화적인 잣대로 볼 때 더욱 강력한 개혁을 대중이 외면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재활용은 소비증대를 정상으로 받아들이게 하며,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에서조차 환경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합니다. 버려진 쓰레기가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경제의 산물은 아닙니다. 쓰레기에서 얻는 이익은 불평등하게 분배되지만 환경오염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자연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쓰레기는 생산의 파괴적 여파를 보여주는 축소판입니다. 우리가 쓰레기라는 일상의 물질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다른 영역의 생태 위기를 해결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편리, 소비 사회의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고 기존의 관습을 유지하는 해결책입니다. 기술적 해결책은 단기간에 효과가 있는 듯 보일 수 있으나, 쓰레기를 양산하는 기반구조를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인 해결책으로는 알맞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낭비하는 방식은 단순히 유기적인 인류 발달의 정상적인 결과가 아닙니다. 쓰레기의 양산은 자연법칙이나 알 수 없는 근본적인 흐름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의 산물이며 사회적 힘의 산물입니다. 결국 대량생산 구조를 재편하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변화해야만 쓰레기가 줄어들 수 있음을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쓰레기는 버리면 사라지는 것처럼 인식할 수 있지만 , 쓰레기는 곧 버린 사람의 발 밑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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