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축의 발명 - 미국의 북한 이란 시리아 때리기
브루스 커밍스 외 지음, 차문석 외 옮김 / 지식의풍경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의회 연두교서에서 이라크, 북한,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명명합니다. 또한 2003년엔 미국과 시리아의 관계가 격돌의 길에 들어서자 백악관 대변인인 애리 플라이셔는 시리아를 불량배 국가라고 불렀고, 리비아나 쿠바와 함께 악의 축의 2진 선수라고 말합니다. Axis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할 때 그 연설은 굉장히 대담했습니다. 악의 축이라는 단어에 내재된 의미를 고려하려면 조지 레이코프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미국이 악을 지정할 수 있고, 악을 징계하여 쳐부술 자격이나 권한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은 선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내재된 선과 악의 프레임은 연두교서 이후 이라크전을 가능케 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자들은 미국에게 악의 축으로 낙인찍힌 국가들의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현대사, 대미관계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 어떻게 악의 축이 발명되었는지를 추적합니다.

포크의 멕시코 공격에서부터, 남부의 섬터 요새 폭격, 메인호와 루시타니아 호의 침몰, 진주만, 한국전쟁, 통킹 만 사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등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결심했건 하지 않기로 결심했건 간에 미국 대통령들은 그래도 적이 먼저 움직일 때까지는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부시는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역대 대통령들의 모든 격언을 위반했습니다. 진주만 공격이 있기 열흘 전에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은 루스벨트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어찌하면 우리를 위험에 과대하게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일본인이 먼저 공격하는 입장에 처하도록 계략을 구사할 수 있겠는가?"고 질문받은 것을 기록으로 남겨놨고, 후에 스팀슨은 후에 의회 조사에서 "적이 주도권을 쥐고 달려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위험했을지라도 우리는 일본인들이 먼저 공격하도록 함으로써 모든 이의 마음속에 누가 침략자인지에 대해 의혹이 남아 있지 않는 것이 미국 국민들에게서 완벽한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바람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 진술한 바와 같이 월등한 힘을 가진 국가는 더 허약한 측으로 하여금 먼저 공격하게 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루스벨트와 스팀슨으로 시작되는 역대 정치인들이 선호했던 전략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2년 9월에 발표한 국가 안보 독트린을 통해 미국인이 얻은 것은 선제 핵공격이였고, 미국 자신과 그 동맹국들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 해당하는 확산 금지 였고, 펜타곤의 수십억에 이르는 밝혀지지 않은 예산이었고, 세계에서 악을 제거한다며 사람을 암울하게 만드는 미래로 향하게 하는 끝없는 전쟁의 청사진이였습니다. 이 독트린이 선언된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 국장인 콘돌리자 라이스는 선제공격이 미국에게 좋긴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침략의 구실로 선제공격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함으로써, 우려하던 동맹국들의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습니다. 라이스의 견해에 따르면, 선제공격은 예상되는 자기방어, 즉 먼저 공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나라를 공격할 수 있는 미국의 권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비공식적으로는 2000년 이전에도 확인할 수 있는데, 앨리슨의 극비 문서에 따르면 미국의 기본 정책은 아시아와 다른 장소에서 우위에 있는 소련의 힘을 견제하고 함락하는 것이므로, 한국에서의 유엔 작전들은 소비에트 통제 하에 있는 지역에 비공산주의적 침투가 가능한 단계를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NSC81 문서에 따르면 소비에트와 중국의 개입 위협이 없다면 맥아더에게 북한으로 진격할 권한을 부여해 사실상 북한 공격을 승인해놓기도 했습니다.

북한과 미국은 평화를 향한 길에 들어선 적도 있습니다. 북한의 군산복합체를 통솔하고 있는 조명록 장군은 빌 클린턴을 방문해 상대방에 대하여 적대적 의지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서면 서약을 협상했고, 클린턴은 북한이 모든 중장거리 미사일을 포기하는 댓가로 원조를 해주겠다는 거래에 서명하려 했습니다. 올브라이트 국무부 장관은 김정일에게 마이클 조던이 사인한 농구공을 선물했고, 김정일은 선물받자 마자 공을 밖으로 들고 나가 드리블해 보고 싶어했습니다. 이러한 협정은 윌리엄 페리, 웬디 셔먼 등이 10년동안 북한이 다양한 협정을 체결하도록 설득한 노고의 결과물이였는데, 그 동안 우익 공화당원들의 비방, 인신공격, 통일교의 워싱턴타임스가 자주 들려준 왜곡되고 신경질적인 비난에 맞선 결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자 이러한 정책은 급변합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고문단은 이러한 변화에 공적으로는 회담이 당혹스러웠다고 평가했지만 사적으로는 부시 대통령에게 악담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뉴욕 타임스의 데이빗 생어는 한 기사를 통해 북한이 하나 또는 두 개의 원자 폭탄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성명을 기정사실로 둔갑시킵니다. 이 기사에서 말하는 증거란, 영변 핵 단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핵연료를 플루토늄으로 전환시킬 때 나오는 크립톤85의 수치가 높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크립톤85 방출이 정상적인 환경수치를 넘어서지 않을 정도의 소량으로 우라늄을 농축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하나 또는 두개의 폭탄이란 정보는 1993년의 정보 평가서에서 비롯되었는데, 정부의 북한 전문가들을 소집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핵을 제조했다고 생각하는지 의중을 털어놓도록 하여 작성된 보고서였습니다. 절반의 사람들이 핵을 제조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통해 확률은 50대 50이라고 말한 것이 기정사실화된 것입니다. 그 후에 잠정적인 보전책으로 미국이 제공해 오던 난방용 중유 공급을 중단했고, 북한은 그에 대응해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고,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한국에서의 위험은 북한의 기만과 도발, 새로운 한국 전쟁의 초기 단계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미국의 오래된 전쟁 계획, 부시의 새로운 선제공격 독트린 등이 합쳐진 것에서 유래합니다. 부시 독트린은 북한이 위기를 일으키면 핵 선제공격을 한다는 기존의 계획과 결단을 합쳐 놓고 있는데, 2002년 대통령 결정명령 17호가 누출되었을때, 북한이 선제공격의 과녁으로 올라가 있다는데서 그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시의 정책은 남한과의 관계도 얼어붙게 만들었는데, 노무현의 보좌관들은 부시 행정부에 미국이 남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공격한다면 남한과의 동맹을 깨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거의 성공할 뻔한 클린턴과 부시의 차이는, 부시가 두 국가 사이의 반목을 끝내기를 거부한다는데 있습니다. 결국 커밍스가 바라보기에 20세기 후반부터 표출된 북한의 핵 문제란 기본적으로 미국의 핵 위협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이 북한과의 평화 협정 체결을 통한 전쟁 종식을 꾀하지 않자 북한이 생존 차원에서 추구하게 된 것이 핵이라는 것입니다. 소련의 붕괴와 1991년 걸프전의 승리로 악마로 변장시킬 주적이 사라지자 미국은 역사를 무시한 채 역사로부터 북한을 뽑아내었으며, 북한이 악의 축으로 발명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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