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은 끝났다 - 어느 명문 로스쿨 교수의 양심선언
브라이언 타마나하 지음, 김상우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 배우자를 평가할 때 '사짜 직업'이 최고의 배우자감이라는 이야기를 흔히 하곤 합니다. 물론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자의 인간 됨됨이지만, 사짜 직업이 보증하는 경제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조건임은 사실입니다. 의사, 판사, 목사, 검사, 회계사 등과 마찬가지로 변호사 또한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입니다. 저 또한 故 조영래 변호사같은 삶을 동경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변호사는 성공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저자 브라이언 타마나하는 미국의 변호사가, 변호사를 키우는 로스쿨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닷컴버블 시절, 변호사는 가장 잘나가는 직업 중 하나였습니다. 기업들은 변호사들을 서로 모셔가고자 했고, 변호사들의 연봉도 자연스레 크게 증가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은 변호사가 되고자 했고, 경제학의 논리에 따라 로스쿨은 고비용화됬습니다. 문제는 닷컴버블이 끝난 이후 지속적으로 변호사의 수입이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은 점점 비싸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로스쿨들은 높은 취업률을 자랑하면서 졸업생 연봉이 10만 달러를 넘는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졸업생들이 로스쿨을 마치기 위해 들어가는 평균 부채는 10만 달러에 달합니다. 로스쿨 학비는 졸업생 대다수가 졸업 후 얻는 경제적 기회에 비해 너무 비싸졌습니다. 결국 로스쿨의 비용-효과 경제 모델은 붕괴했다는 것입니다.

로스쿨이 고비용화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변호사협회가 요구하는 인가기준이 로스쿨에 막대한 비용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등록금은 계속 상승하고 있는데, 비싼 등록금은 학교 운영비가 아닌 마케팅의 결과입니다. 정교수들의 강의 부담은 줄어들고 연봉은 상승하는 것 또한 학생들에게 기존보다 높은 비용을 부과하게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학자금 대출 프로그램은 의도는 좋았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학생들에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커다란 부채를 안겨주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로스쿨은 미국에서 악화되고 있는 양극화와 중산층 붕괴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법조계의 다양성을 지향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높은 등록금은 중산층과 저소득층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진학을 포기하게 만들며, 저소득층 학생은 실력이 있더라도 금전적 이유로 대학에서 거부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터프츠대의 학부 입학처장인 리 코핀은 2004년 신입생 재정 지원 예산으로 잡혀 있는 780만 달러가 부족하게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만약 합격시킬 경우 1인당 매년 평균 2만 5000달러씩의 장학금이 소요되는 193명의 저소득층 지원자를 과감하게 불합격 처리했다.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p.249 

무엇보다 로스쿨을 압박하고 등록금을 증가시키는 요인은『US 뉴스&월드 리포트』에서 제공하는 대학 순위 평가, 이를 기반으로 한 대학 서열 경쟁입니다. 학생들은 대학 순위 평가를 기준으로 입학을 결정하기 때문에, 학생들을 잡는 대학은 선순환 효과를 일으켜 계속 발전하는 반면, 한번 미끄러지면 계속적인 악순환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순위 평가는 로스쿨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며, 순위를 올리기 위해 왜곡된 보고와 조작 관행이 치킨게임처럼 이뤄집니다. 회계부정을 저지른 엔론 스타일의 기준이 법의 수호자를 양성하기 위한 로스쿨 사이에 하나의 규범처럼 정착된 것입니다. 대학이 순위에 집착하게 되면서 실질적인 교육보다는 명성을 추구하게 되었고, 명성의 추구는 기관만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학생들은 종종 교육의 내용보다는 학점에 더 신경을 쓰며 그에 따라 학교, 전공, 교과과정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더 문제인 점은, 대학서열이라는 것이 정말로 좋은 대학, 학생들이 이로운 선택을 하는 기준이 되기엔 너무 허술하다는 것입니다.

『US 뉴스&월드 리포트』가 해마다 발표해온 영향력 있는 미국대학 순위선정 역사상 가장 논란거리가 된 1등은 1999년의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이었다. 평자들은 칼텍이 전미 최고 대학으로 뽑히자 마치 스티븐 킹이 노벨문학상이라도 탄 것처럼 조소를 보냈다. '캘리포니아의 조그만 공과대학이 어떻게 하버드대나 예일대, 프린스턴대, 스탠퍼드대, 게다가 그보다 더 크고 더 유명한 동부의 맞수인 MIT를 능가할 수 있는가' 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결국 이 잡지는 굴복했다. 이후 선정 기준을 바꿔 칼텍이 독주하던 학생1인당 비용 지출 항목의 배점을 줄여버린 것이다. 이 잡지가 선정 기준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칼텍은 그 후에도 몇 년간 정상을 지켰을 것이다. 칼텍은 바뀐 기준에 따라 10대 대학 명단의 아래쪽으로 도로 미끄러졌고, 아이비리그와 기타 전통 명문들은 한동안 뒤집어써야 했을 망신으로부터 구제됐다.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p.335 

결국 현재의 로스쿨 시스템은 훌륭한 지식인의 양성이라는 상아탑의 가치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대학은 대학순위라는 평판에 집착하며 본래의 목적을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학생들은 취업률 하락과 등록금 빚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헨리 워드 비처는 학교에서 얻는 배움보다는 지위에 더 가치를 두는 현상을 보고 "만일 누군가 대학에 진학했다면, 그는 타이틀을 딴 것이다. 이는 자부심과 허영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 타이틀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된다."고 비판한 바 있는데, 이는 안타깝게도 현재 미국 로스쿨 시스템에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저자가 분석한 미국식 로스쿨 모델의 붕괴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지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제 걸음마를 뗀 로스쿨 제도가 미국식 모델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국 로스쿨 모델의 문제점은 우리나라의 대학 시스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 변호사협회가 요구하는 인가기준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해야만 기사시험을 볼수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유사하며, 대학서열로 인한 등록금 증가 현상이나 학자금대출 문제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시스템의 문제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지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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