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애국주의 - 언론의 이유 없는 반일
최석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종합적으로 따지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길을 걸어도 일식집을 찾아볼 수 있고, 유니클로의 세일에 지갑을 열고,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 중 한곳으로 일본을 꼽습니다. 수많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의 나라로 관광을 떠나고, 서로의 제품을 사용하며, 서로의 음식을 즐기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일본과 관련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격정을 내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시대에 뒤떨어진, 환영받지 못한 행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반일(反日)은 없어진 듯 보이면서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반일감정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최전선에 언론이 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이《교육과 사회체제》에서 '아이들은 자기네 나라가 치른 전쟁은 모두 방위를 위한 전쟁이고, 외국이 싸운 전쟁은 침략 전쟁이라고 생각하도록 유도된다.'라고 언급한 것처럼, 잘못된 민족주의 사상의 교육은 잘못된 시민을 양성하며 그 결과 국가적으로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현재 많은 한국 언론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된 반일감정의 재생산 역시 이런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한국 언론은 상대방의 명백한 잘못을 비판하는 건전한 회의주의적 태도를 보여주기보다는, 수많은 오보와 편견을 바탕으로 왜곡된 보도를 함으로써 언론의 기본적인 사명마저 저버릴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언론의 태도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역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종래의 좌우 대립을 전제로 말하자면, 일본의 인터넷 언론은 분명히 우경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개의 언설은, 한국과 중국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바탕으로 보수파 잡지 및 미디어의 '중국위협론' 따위의 언설을 조잡하게 재구성하여 인터넷 공간에 유입시켰다는 측면이 강하다.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p.114 

저자는 언론의 생리를 파악하는 사람은 언론보도의 이면(裏面)을 바로 볼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그런 소수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책에선 일본과 관련된 언론의 다양한 오보와 편향성을 지적하고 있는데, 저 또한 책을 보기 전까진 기사를 통해 막연히 일본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된 기사들이였습니다. 일본이 막걸리 상표를 선점했다는 보도, 이승엽과 관련된 보도, 남대문 전소 현장에서 일본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했다는 기사 등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키지만, 놀랍게도 사실이 아닌 보도들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이 기사를 보면서 느꼈던 일본에 대한 반감은 언론이 의도하고자 했던 가짜 반감이며, 잘못된 반감이였던 것입니다.

처음 '막걸리'의 일본인 선점 기사가 나오고 많은 사람이 분노하는 반응을 지켜보다 다음 날인 11월 3일 일본 특허청에서 직접 확인을 해보았는데,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고 말았다. 상표를 등록한 것은 일본 고베에 있는 한국 기업이었고, 등록자 역시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한국인이었다. - p.46 

인터넷 언론이 잘못된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가장 큰 원인은 돈입니다. 인터넷 신문사에게 있어서, 기자에게 있어서, 방문자 수는 곧 돈을 의미합니다. 방문자 수를 노린 기사의 제목은 충격, 경악 등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문구로 치장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일본과 관련된 소재는 네티즌들을 자극하기에 더없이 좋습니다. 인터넷기사의 경우 속도가 생명이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된 정보인지 아닌지 검토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불명확한 보도나 자의적 해석에도 개의치 않고 기사를 내는 것은 당장의 돈벌이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결국 이러한 행보는 언론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가중될 것이며 결국 언론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인터넷기사 뿐 아니라 주류 신문사들마저 오보를 낼 뿐 아니라 이에 대한 정정마저 없다는 것입니다.

반일감정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는 것은 결국 반일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자는 반일이 필요한 사람들로 북한, 한국 정부, 정치인, 기업인 등을 꼽고 있습니다. 정부, 정치인, 기업인들에게 반일이란 아이템은 그야말로 만능에 가깝습니다. 정부는 반일감정을 이용해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고, 정치인들은 반일감정을 이용해 국민들의 시선을 사며, 기업은 반일감정을 이용해 돈을 법니다. 애국심은 사상이 아니라 상술이며,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런 애국심을 조장하는 행동들에 대해서 우리는 새뮤얼 존슨이나 오스카 와일드의 조언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이나 정부, 정치인, 기업인들이 애국심 마케팅을 펼치는 것은 오히려 비애국적인 행동이며 시민들이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론이 언론으로서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비단 일본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문제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국가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반일감정과 더불어 애국심에 기대며 살아가는 언론은, "두유노우김치?"가 더이상 자랑스러운 한국의 문화를 물어보는 단어가 아니라 외국인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조롱의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반일과 쇼비니즘에서 벗어나 편견과 선입견이 없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기자가 쓰는 언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워싱턴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같은 기자를 키우는 것은 한국의 언론계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 던져진 숙제일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