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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대한 오해와 편견
토머스 조이너 지음, 지여울 옮김 / 베이직북스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자살에 대한 혐오는 굉장히 뿌리가 깊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에서도 노예제를 옹호하고 살인을 옹호했지만 자살은 옹호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자살을 대하는 문화는 각종 문화작품에서도 나타나고 있고, 현재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런 뿌리깊은 치욕이 덧씌워져 있는 자살은 그 행동에 대한 두려움과 무지가 바탕이 됩니다. 저자는 자살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두려움은 남겨두고, 그 무지를 깨우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살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깊고 옳게 이해해야만 자살의 원인을 없애려 노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여러 판단을 내립니다. 이러한 판단은 그 사람에 대한 이해, 그 사람의 주변환경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됩니다. 자살은 약한 사람이 택하는 방식이라거나, 누군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거나, 계획성 없는 사람이라거나, 자살하는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다거나, 자살하는 사람은 대개 유서를 남긴다거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묘사에서 비롯된 모방자살이 있다거나, 어린이는 자살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판단은 오해와 편견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책에는 많은 사례와 연구사례가 소개되고 있는데, 이러한 결과들은 평소 생각해왔던 자살과는 매우 다릅니다.
자기통제와 자살에 대한 문제는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취급된다.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살펴볼 때 자살률이 높은 아시아의 몇몇 나라에서는 자기통제는 상호의존에 비해 부차적인 문제로 여겨진다. 이런 사실은 사회심리학 분야에서 누차 입증되어 왔다.(키타야마, 마커스, 쿠로카와, 2000년) 자아통제감이 자살을 주도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면 이런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는 문화에서, 즉 미국과 호주에서 자살률이 다른 나라보다 높게 나타나야 한다. 또한 이런 문화 내에서도 자아통제를 잃은 좌절감으로 자살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회적 연계와 상호의존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문화에서 오히려 자살률이 더 높다. - p.97
보통 자살자 하면 흔히 옆에 술이 묘사되는데, 이러한 술도 자살과 별 연관성이 없다고 합니다. 자살 당시 알코올이 검출된 경우는 전체의 3분의 1 정도이며, 검출된 경우에도 대부분 알콜농도 0.08%를 밑돈다고 합니다. 0.08%은 운전을 해도 좋다는 최대 한계 기준입니다. 알코올 섭취와 자살과의 상관관계에서 더 알 수 있는 사실은, 맥주나 와인과 같은 술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독주의 경우는 확실한 연관성이 있으며, 더 놀라운 사실은 자신의 음주 습관보다 더 큰 영향력이 있는 지표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피실험자의 어머니가 독주를 마시는 음주 습관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아버지가 술을 과도하게 마시는 경우 문제가 될 수 있기는 하지만, 다른 남자들이 많이 술을 마신다는 점에 비추어 생각할 때, 그 뒤에 숨은 상황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과도하게 술을 마신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 일이 적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 뒤에 심각한 문제가 숨어 있을 소지가 크다는 것입니다.
보통 술 말고도 자살하는 사람을 묘사할때 꼭 들어가는 것이 유서인데, 실제로 자살자의 25%정도만이 유서를 남긴다고 합니다. 또한 유서의 내용도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그런 유서와 많이 달랐습니다. '자살 연구 기록'의 연구에서 한가지 실험을 했는데, 사람들에게 자살을 가정하고 유서를 써보라고 했을 경우 실험에서 가상으로 작성된 유서와 비교하여 실제 자살한 사람이 남긴 유서는 문장이 짧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유서에서 나타나는 자살 심리의 특징은 사회적으로 잘려버린 외로움과 인지 제한의 심리 상태를 뜻합니다. 일반적인 유서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자살하는 사람들의 유서는 가상의 유서보다 두배 이상 긍정적인 감정 표현이 나타난다는것도 주목할 만 합니다.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자살하려는 결심을 한 경우 일종의 평온과 안정감을 맛보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남자는 삼십 대였는데, 단촐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유서를 써서 책상 위에 남겨두었더군요. 유서에는 이런 말이 있었어요. '나는 다리까지 걸어갈 생각입니다. 가는 길에 한 사람이라도 내게 미소를 보내준다면 나는 뛰어내리지 않을 작정입니다.'" 이 남자는 결국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아무도 이 남자에게 미소를 지어주지 않은 것이다. - p.253
자살률을 감소시키는 원인을 살펴보면, 지극히 간단한 것임에도 영향을 끼치는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1963년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영국의 자살률이 3분의 1가량 감소했는데, 이렇게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원인은 1963년 영국에서 국내에서 사용하는 가스를 코크스 가스에서 천연가스로 교체했다는 것이 원인이였습니다. 코크스 가스는 흡입할 경우 천연 가스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데, 가스의 종류를 바꾼 이후로 자살률이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1998년 9월 16일 영국에서는 처방전 없이 구입하는 약품에 대해 약국에서는 서른두 알, 다른 소매점에서는 스물네 알 단위로 포장하도록 법이 바뀌었습니다. 집에 보관하는 약품의 양을 줄여 자살할 수 있는 잠재 수단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이 법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4년 영국 의학 저널에서 호튼과 연구진은 법이 바뀐 이듬해 아세트아미노펜이나 살리실산염의 고의적인 과다복용에 의한 자살이 22% 감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자살하려다 저지당한 사람이 그 다음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해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저지당한 사람은 다른곳에 가서 다시 자살할까? 아니면 이런 금지가 좀더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올까?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고심한다. 사람들이 단순히 다른 곳으로 가서 다시 자살하려 한다면 다리에서 뛰어내리지 못하게 막는 방지책은 아무런 효과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던 사람이 한번 제지를 당하고 나서 다시 자살하려 하지 않고 생산적인 인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수십 년간 자살 방지용 방책이 설치되지 않아 매년 다리에서 뛰어내려 사람들의 목숨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우리는 도덕적 분노를 느껴야만 한다. 답은 우리가 도덕적 분노를 느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리에서 자살하려다 제지당한 실험대상의 95%가 자살하지 않았다. - p.235
저자는 자살의 가장 큰 원인으로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된다는 의식, 아무데도 소속되지 않는다는 심리 이 두가지라고 말합니다. 이런 생각을 오랫동안 품고 살아온 사람은 삶에 대한 애착을 잃어버리고 죽고 싶다는 욕망이 생성됩니다. 이러한 견해는 프로이트나 헨리 머레이, 존 카시오포의 견해와 비슷합니다. 자살률을 낮추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자살을 방지하는 각종 법률과 장비들 뿐만 아니라 관심 편지 연구에 나온 결과처럼 단순히 컴퓨터로 프린팅된 단체메일로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자살의 기로에 있는 사람은 삶과 죽음에서 계속 갈등하고 있습니다. 이는 금문교에서 뛰어내리고도 목숨을 건진 극소수의 사람들의 이야기로도 알 수 있는데, 물에 떨어지기 전의 4초동안 뛰어내린 일을 더할 수 없이 후회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