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컬처 -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
데이비드 캘러헌 지음, 강미경 옮김 / 서돌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저자는 미국사회에 만연한 거짓과 편법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의 경제생활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호황기는 소비자 수요를 늘리고 수많은 신규 사업 기회를 창출했습니다. 그와 함께 새롭게 대두한 냉혹한 성과주의는 경제생활 뿐만 아니라 미국인의 가치관을 바꿨습니다. 거짓과 편법이 점점 많아지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구조의 변화와 그러한 변화가 지배하는 새로운 규칙과 직결됩니다.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체계는 그 어느 때보다 큰 보상을 눈앞에서 흔들어대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오늘날의 기업 문화는 극심한 수준의 경쟁을 요구하고 또한 미화합니다. 그런 가운데 성공하는 계층은 중요한 분야에서의 정부 규제를 무력화하며 경제적 살인을 저질러놓고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법을 뜯어고치고 있습니다. 미국은 순수한 시장경제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만 했지 야비함이 삶의 질과 직업윤리에 미치게 될 영향이나 인색함이 가져올 극심한 압력은 전혀 계산에 넣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압력을 가하면서 정직성과 경제적 안정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이 돈을 선택할 것입니다.

미국의 중요한 미덕인 '야망'이 미국의 중요한 악덕인 '일탈 행위'를 조장한다. 성공해야 한다는 도덕적 명제는, 가능하면 공정한 수단을 사용하겠지만, 필요한 경우 나쁜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압력을 행사한다. - 로버트 머턴 

인간은 경제와 법에만 지배받지는 않습니다. 편법을 사용할지 말지를 놓고 고민할 때 우리는 눈앞의 이익과 손해에 대한 판단에만 기대지 않습니다. 때론 우리의 가치 체계에 근거해 결정을 내립니다. 생존이나 큰 이익을 위해 속임수가 보편화되거나 필요한 체계 안에서는 잘못을 저지르기가 쉽지만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정직하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25년간 미국 사회의 가치는 이전세대보다 더 무자비한 가치 체계를 가지는 쪽으로 변화했습니다. 돈과 지위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출세하기 위해 부정직하게 편법을 동원하는 행동이 용인되는 분위기가 갈수록 고조되는 추세입니다.

이런 경우는 변호사, 운동선수, 회계사 등의 직업에서 더 많이 발생합니다. 변호사의 경우 수익을 올리기 위해 고객을 위해 일한 시간을 조작하는데, 시간을 반올림하는 경우부터 복사를 하는 시간, 심지어는 일하지 않는 시간까지 청구서에 포함하기도 합니다. 레오나 헴슬리는 자신의 변호사 제임스 스피오토가 청구서에 하루에 43시간씩 4년을 일했다고 기재한 사실을 발견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운동선수의 경우 근육을 키우기 위해 사용되는 스테로이드계 약물을 많이 사용합니다. 최고의 선수들과 그렇지 않은 선수들의 연봉차이가 극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선수들은 이러한 약물의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1995년 각 분야에서 최고에 속하는 운동선수 1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5년동안 매 경기 이길수만 있다면 5년이 지난 후 부작용 때문에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약물을 복용하겠다고 응답했습니다.

1990년대 들어 호황이 계속 이어지면서 체계를 깊이 썩어 들어갔고, 그 안에서 최고 경영진은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수익 보고서를 조작했습니다. 회계사들은 엉터리 보고서를 눈감아주었고, 주식 분석가는 주식의 가치를 과장해 투자자들의 매수를 유도했습니다. 존경받는 CEO, 회계사, 주식분석가들이 이러한 유혹에 넘어간 이유는 특별히 악하고 탐욕스러워서가 아니라 체계가 그런 행동을 용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체계는 기업과 월 스트리트의 한줌밖에 안되는 내부 엘리트들에게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부를 안겨주었지만, 그 대가는 미국 서민층이 짊어져야 했습니다.

과거 세대보다 사람들이 더 탐욕스러워졌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탐욕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데 있다. - 앨런 그린스펀 

이런 성공에 대한 속임수의 용인은 동시에 삶의 패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지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보통사람이 권력형 사기를 당해 피해를 입어도 강건너 불구경하는 경향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오히려 피해를 피해자 탓으로 돌립니다. 예를들어, 기업스캔들이 터졌을 때 많은 논객이 엔론과 월드콤 등 부패한 기업에 투자했다 손해 본 사람들을 멍청하다고 비웃었습니다. 엔론 직원들이 회사주식을 떠안고 묶여있는 동안 최고 경영진은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처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때마저도 언론에서는 이러한 견해를 똑같이 되풀이했습니다.

이런 속임수 문화의 발달엔 정부의 규제 약화가 큰 역할을 합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증권거래위원회 의장으로 발탁된 존 샤드는 주식규제법, 기업정보공개법, 중개회사규제법을 철폐함으로서 기업이 관련된 대형 회계 부정의 물결에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규제기구 철폐와 예산 삭감은 국세청의 세금관리 능력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1990년대 후반 들어 국세청의 감독 기능은 형편없이 약화되었습니다. 결국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갈수록 교묘한 방법을 동원해 탈세를 자행했습니다. 2002년 국세청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납세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사람이 250만명에 육박합니다. 또한 부자일수록 국세청의 시달림을 덜 받습니다. 1988년 이후 가난한 납세자들에 대한 감사 비율은 33퍼센트 증가한 반면, 부유한 소득자에 대한 감사 비율은 90퍼센트 감소했습니다. 2001년의 경우 소득 수입이 3만달러 미만의 경우 47명중 1명꼴로 감사를 받았지만 소득 수입이 10만 달러 이상의 경우 145명중 1명꼴로 감사를 받았고, 변호사나 의사는 233명중 1명꼴이였습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3분의 1에서 많게는 절반가량이 조세의 공정성을 믿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응답자의 절반이상이 조세 체계와 관련해 가장 화가 나는 점은 세 부담이나 세금의 복잡성이 아니라 일부 부유층이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고도 무사한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1989년에 열린 레오나 헴슬리의 탈세 혐의 재판에서 코네티컷 그리니치의 방 28개짜리 저택을 관리하는 헴슬리의 수석 가정부는 법정에서 자신이 부유한 호텔 경영주와 나눈 대화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세금을 많이 내시겠네요?" 가정부가 이렇게 묻자, 헴슬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는 세금 같은거 안내. 하찮은 사람들이나 세금을 내지." - p.197

이런 속임수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중, 고등학교에서도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SAT에서 추가 시간을 얻기 위해 돈을 내고 가짜 정신진단서를 얻고, 시험도중에 불법을 저지르고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것을 보며 아이들은 속이지 않으면 당한다는 것을 어릴때부터 배웁니다. 학교에서 유명한 상습 사기꾼들은 아이비리그에 가고, 사기를 폭로한 학생은 집단괴롭힘을 당합니다. 대학교에서도 베낀 보고서 때문에 졸업학점을 받지 못하더라도 기부를 하면 졸업을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속임수가 만연한 문화의 부작용으로 사회의 사회계약이 무력화되는 점을 지적합니다. 질서정연한 민주주의 사회가 유지되려면 사람들의 권리와 책임을 알게 모르게 규정하는 사회계약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하고, 아울러 사회계약이 사회 전반에 걸쳐 공정하게 적용된다는 사람들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은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끼고, 규칙을 깨는 사람은 상을 받을 때 사회계약은 효력을 상실합니다. 현재의 미국은 화이트칼라 범죄자들이 처벌받기는 커녕 거리를 활보하고, 부자들은 탈세를 일삼는데도 무사하고, 기업은 돈으로 정치인을 매수하고, 아이비리그는 부자 부모를 둔 덕분에 편법으로 입학한 학생들로 넘쳐난다고 지적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장에 나가는 사람은 근로계층 자녀들이고, 조세 감면이 있어도 보통 시민에게 돌아오는 몫은 땅콩 몇 알 정도에 불과합니다. 구조조정이 단행되면 된서리를 맞는 사람은 사다리의 맨 밑에 있는 근로자들입니다. 2001년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체계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많다는 점은 여러가지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속임수 문화는 한번 방향이 정해지면 그 축을 바꾸는 것은 여간 힘든것이 아닙니다. 다들 속임수를 사용해 이익을 챙기는 와중에 속임수를 쓰지 않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일견 멍청해 보입니다. 심지어 그것이 단순히 손해 정도에 그치지 않고 생존에 위협이 된다면,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그런 행동을 쉽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결국 우리가 변화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위해서 정부가, 기업이, 그리고 시민운동을 통해 지원해야 하고 무엇보다 윤리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의 삶에서 돈과 지위가 최고의 선이 아닌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치팅 컬처를 벗어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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