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 이펙트 -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있었던 고문사진의 유출은 미국사회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 줬습니다. 육군 예비군 조 다비의 고발은 사담 후세인에게서 해방된 이라크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주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맡고 해외로 파견된 그 훌륭한 젊은 남녀들이 저지른 비인간적인 행태를 폭로했습니다. 그 사진들에서는 벌거벗은 남자들이 피라미드를 이루어 높이 쌓여 있었고, 미군병사들이 그 위에 서서 웃고 있는가 하면, 한 여군은 벌거벗은 수감자의 목에 개줄을 묶어 끌어당기고 있었습니다. 벌거벗은 수감자들은 담배를 피우는 여군 앞에서 자위를 하도록 강요당했고, 동성애 자세를 강요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비인도적인 사고가 나자 부시정부와 일부 언론에서는 일부 개인의 자질적인 악이 원인일 뿐, 대부분의 병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모든 책임을 아부그라이브의 7인의 헌병들에게 돌렸습니다. 하지만 저자인 필립 짐바르도는 이런 원인이 결코 유별난 개인의 악에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분석도구들을 제시하는데, 그 중 하나는 저자를 유명인으로 만들었던 70년대의 스탠퍼드 모의 교도소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 : SPE)이 있습니다. 2주동안 평범한 대학생들을 모아 임의로 교도관과 수감자의 역할을 했던 이 실험은, 단 하루만에 심리학 실험에 참여하는 대학생에서 진심으로 교도관과 수감자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교도관이 된 학생들은 첫날밤의 점호때부터 교활한 창의력을 보이며 창조적인 악을 만들어냅니다. 실험에선 다양한 형태의 교도관과 수감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SPE에서 교도관은 착한 교도관, 주어진 일만 하는 교도관, 나쁜 교도관의 타입으로 나뉘는데, 이런 성향은 개인적 관계에서의 차이는 만들어낼지 몰라도 결국 어떤 형태의 개인도 평범한 대학생을 교도관과 수감자로 만든 악을 만들어내는 시스템 자체는 붕괴시키지는 못합니다. 결국 2일만에 정신질환을 보이는 수감자가 생기고, 6일만에 실험은 종료됩니다. SPE에서는 시스템이 사람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도록 하는 구조가 다수 도입됩니다. 그런 구조는 탈개인화, 비인간화, 적 이미지, 집단 순응 사고와 같은 개념을 도출시키는데 유용합니다. 교도관이 사용하는 선글라스, 제복, 곤봉, 수감자가 박탈당하는 이름, 수감자의 번호, 무의미한 잡일 등은 하루전만 해도 자신과 동일한 평범한 대학생들이였던 상대방에게 권력을, 폭력을 사용하게 해 줍니다. 이불에 묻은 가시를 털게 하는것과 같은 무의미하고 무분별한 잡일을 독단적으로 시키는 것이야말로 이런 상황에서는 교도관의 권력의 필수적인 요소가 됩니다.

누구든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상태에 있을 때 그곳이 바로 그의 감옥이다. - 에픽테토스 

이런 구조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에 있어서도 익숙한 것들인데, 군대에서의 갈굼, 훈련소 및 유격훈련에서의 이름 대신 번호로 부르는 행위 등은 탈개인화, 비인간화를 촉진시켜 평상시라면 상상하기 힘든 구조를 만들어내고 받아들이게 합니다. SPE 뿐만 아니라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 솔로몬 애시의 줄 서기 연구, 평범한 고등학생들을 전체주의에 물든 단체로 만든 제3의 물결 연구, 권위의 힘은 복종의 범위 뿐 아니라 현실을 규정하고 습관적인 사고 방식과 행동방식을 바꿀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제인 엘리엇의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한 갈색눈과 파란눈 연구, 자연스레 우생학을 주입시킴으로서 나치의 최종 해결책과 같은 정책을 쉽게 지지할 수 있다는 연구 등은 시스템이 사람을 충분히 악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부당한 체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체제에 협력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악에 참여하는 것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 마틴 루터 킹. Jr 

그렇다면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들을 바라보기 위해선, 개인의 자질보다는 그 악을 만드는 상황적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아부그라이브 교도소는 굉장히 빈약한 시설이였고, 도시와 가까이 있어 언제든지 로켓포 등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병사들은 숙소가 없어 감방에서 잠을 잤고, 하수시설은 고장나 화장실이 번번히 막히곤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이라크전쟁이 가속화되고 테러전 양상으로 바뀌면서 미군은 테러조직의 정보를 캐기 위해 대량의 민간인을 잡아들입니다. 결국 아부그라이브의 구금 시설에 수용된 수감자는 최대 수용 인원을 훨씬 초과한 반면, 교도관 인력과 자원은 부족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미국 정보기관이 목록에도 없는 이라크인을 고문도중 죽이고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 모습은 병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오히려 공식적인 고문조건을 제시함으로서 결국 아부그라이브 교도소는 교도관들에게 있어 가학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혹하는 최적의 장소가 됩니다. 인간은 분별없는 이데올로기를 위해서, 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사람들을 죽이라는 카리스마를 지닌 권력자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의 인간성을 송두리째 던져버릴 수 있음은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아부그라이브 사건은 단지 비정상적인 개인의 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적 과정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 슐레진저의 보고서 

이런 가학적 고문을 가한 병사들의 과거를 살펴보면, 시스템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나타납니다. 사건의 중심인물로 지목된 칩 프레더릭의 경우,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였고, 성장과정에서 어떤 이상적 징후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과거 근무 기록은 탁월하고 훌륭한 업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1년의 군복무중 유일한 오점은 집합시간에 한번 늦은 경우가 전부였습니다. 그는 세번의 육군유공훈장, 네번의 육군예비군훈장, 두번의 국방훈장, 예비군M등급 훈장, 하사관전문성개발훈장, 육군공로훈장, 두번의 육군예비군해외교육훈장, 대테러세계전쟁훈장, 대테러세계전쟁원정훈장을 받은 병사였습니다. 하지만 아부그라이브의 시스템, 미국의 이라크전쟁에 대한 시스템은 그를 누구에나가 모범적인 병사에서 악당 병사로 변모시킵니다. 그와 6명의 헌병들은 고문사건의 범죄자로 지목되었지만, 다른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고문사건들은 무엇이 더 악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관타나모의 수감자들에게 일어난 학대 행위의 규모는 육군성명서에 따르면 600건이 넘지만, 200여 건은 조사가 이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말로써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교사에게 자신이 학생에게 저지른 끔찍한 일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는 자아 도취제에 지나지 않다고 매슬랙은 지적한다. 권위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행동을 통한 불복종이 필요하다. - p.645

하지만 이런 구조에서 상황적 변수를 바꾸면 충분히 선한 행동으로 유도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런 도덕성의 변화를 자동차의 기어 변환 장치에 비유하는데, 어떤 경우에 중립에 놓인다고 상상해본다면, 그와 같은 상황에서 도덕성 이탈이 일어납니다. 자동차가 비탈길에 있는 경우 기어를 중립에 놓으면 차와 운전자는 모두 비탈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갑니다.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90퍼센트의 신학생은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설교를 하러 바삐 가느라 착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는, 눈앞에 있는 기회를 그냥 지나쳐버렸습니다. 하지만, 신학생들이 시간이 많을수록 멈춰 서서 돕는 확률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시간 압력이라는 상황 변수의 변화는 누가 돕고 누가 수동적인 방관자가 되는지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런 긍정적 행동을 만들어내는 변수의 증가는, 곧 사회적 선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래리 콜버그는 도덕적 갈등의 맥락 안에서 갈등에 대해 숨김없이 논의하는 도덕적 교육의 장이 개인의 도덕적 발달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가장 중요한,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상황적 힘 앞에서 누구나 공통적으로 그런 단점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야말로 해로운 영향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고, 사람과 공동체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효과적인 전략을 발전시키는 첫 단계입니다. 존 달리와 빕 라타네가 연구한 살인사건과 38일의 방관자 사건에서 이런 사건의 결과를 학생들에게 교육시키면 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보다 두배 이상 타인에게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탈개인화, 비인간화, 적 이미지, 집단 순응 사고, 도덕적 이탈, 사회적 촉진과 같은 개념의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악을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했는데, 이와 관련해 저자는 이런 악을 극복하기 위해 평범한 영웅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평범한 영웅이라는 말은, 사회의 불의에 대항하는 영웅같은 사람은 절대 특별한 것이 아니고, 상황적 힘에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누구라도 쉽게 영웅이 될 수도 있고 악을 자행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상황적 힘을 사회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아부그라이브의 고문관이 될 수도 있고, 1989년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17대의 탱크 앞에 혼자 몸으로 맞선 무명의 저항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와 같은 사건들을 바라볼때 그것은 '썩은 사과'가 문제가 아닌, '싱싱한 사과'도 썩게 만드는 '썩은 사과상자'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일부 사람들을 사회적 병리학으로 나아가게 하는 상황적 힘과 시스템적 힘을 제한하고 억제하고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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