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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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야구경기를 볼때 투수가 삼진을 할 때마다 아나운서가 "헛스윙, 삼진입니다. 삼성하우젠" 과 같은 광고를 한다면 어떨까요? 긍정주의를 설파하는 자기계발서에서 주장했던 '마음만 먹는다면 그 순간 놀이공원의 인기 놀이기구에 있는 긴 줄의 맨 앞에 서 있을 수 있다'는 황당한 말이 사실이 된다면 어떨까요? 전체 평균 5등급 이하의 수능성적 통지표에 유명 재수학원의 광고를 넣으면 어떨까요? 학교 교과서에 넣을 에너지과목의 교과과정을 석탄 혹은 석유회사의 지원을 받아 제작하면 어떨까요? 이런 황당한 주장들은 이미 행해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의 온라인 입장권 구매사이트에서는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어조로 줄의 맨 앞으로 가는 허가증(Front of Line Pass)을 149달러에 구매하라고 줄기차게 권하고 있습니다. 야구경기에서 홈런을 칠때마다 광고를 넣을수도 있고, 맥도널드 광고와 함께 할인권이 붙은 성적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시장경제를 가진 시대에서 시장사회를 이룬 시대로 휩쓸려 왔습니다. 시장사회는 시장가치가 인간활동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간 일종의 생활방식입니다.

마이클 센델이 2005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런저런 모임에서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다. 노래방에서 그는 비틀즈의 '사랑을 내게 사줄 순 없어'(Can't Buy Me Love)를 열창했다. 지금 이 책은 정말로 그 노래와 관련된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p.327

현대사회에서 거의 모든 가치는 돈과 시장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돈으로 우정을, 사랑을, 그외 다른 가치들을 살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책에서 나오는 여러 사례들은 기존의 돈으로 살수 없었던 가치들마저 돈으로 살수 있게 된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지던 시장이던 동등한 입장료를 내고 같이 비를 맞아가며 응원했던 스포츠경기장은 스카이박스가 생김으로서 같은 시민으로서의 연대감에 단호히 선을 그었고, 줄을 선 순서대로 즐긴다는 놀이공원의 원칙은 돈만 지불하면 먼저 즐기게 됨으로서 파괴됬습니다. 시민 누구에게나 무료로 제공하는 야외공연과 의회 공청권이 지닌 평등성은 돈만 지불하면 대리로 줄을 서는 사업이 탄생함으로서 사라졌습니다. 현재 돈으로 살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가치들을 돈으로 사는 시대의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이미 돈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런 부분을 비판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센델은 질문합니다. 공공과 개인 관계에서 시장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가? 어떤 재화가 비시장가치의 지배를 받아야 할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돈의 논리가 작용하지 말아야 하는 영역은 무엇일까?

시장주의자들은 비시장가치를 시장가치로 전환할 경우 생기는 효율성, 사람들의 의욕을 증진시키는 인센티브 효과 등을 주장하며 이런 변화를 환영합니다. 예를들어 이미 우리사회에도 많이 정착된 '선물을 현금으로 주기' 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효율적 자원분배입니다. 실제로 선물로 받는 경우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기가 돈으로 사는 것보다 만족감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선물의 현금화는 상대방을 생각하며 선물을 고르는 마음, 애정 등과 같은 선물이란 가치가 변질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누구도 손해보지 않는 아주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시장은 재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 다른 것보다 기준이 높은지, 혹은 더 가치가 있는지 따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섹스를 하거나 간을 이식받는 대가로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여기에 동의한 성인이 기꺼이 팔고자 한다면, 경제학자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얼마죠?"일 뿐입니다.

현재 많이 사용되는 인센티브 또한 이런 가치의 변화를 만듭니다. 아이가 책을 한권 읽을 경우 돈을 주는 것, 담배를 끊을 경우 보상금을 주는 것, 마약중독자들에게 임신하지 않도록 하는 것 등의 인센티브의 선택 유도는 시장거래 측면에서 보면 양쪽 모두 이익을 얻고 사회적 효용은 증가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누구도 손해보지 않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논란이 제기됩니다. 인센티브 제도는 때론 예상치 못한 결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어린이집에 관한 한 연구는 시장 인센티브가 비시장 인센티브를 밀어내거나 잠식하는 현상을 보여줍니다. 어린이집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따금 부모들이 아이들을 늦게 데리러 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이집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벌금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아이들을 늦게 데리러 오는 경우가 더 늘어났습니다. 경제학의 이론대로 인센티브는 사람의 긍정적 반응을 유도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금전적 지불 방법을 도입한 것이 규범을 바꿈으로서 예상과 다른 결과로 나타납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늦게 데리러 온 부모들은 죄책감을 느꼈지만, 이제 부모들은 늦게 데리러 오는 것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누릴 수 있는 서비스로 생각했습니다. 비시장 규범의 영향을 받는 환경에 돈이 도입되면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시켜 도덕적, 시민적 헌신을 밀어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핵 폐기장 후보지 가운데 스위스 중부에 있는 인구 2100명의 볼펜쉬셴이라는 작은 산악마을이 거론되었다. 근소한 차이로 거주민의 과반수인 51퍼센트가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마을 사람들의 시민적 의무감이 핵 폐기장 유치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누른 것이다. 여기에 경제학자들은 감미료를 제시했다. 각 주민에게 매년 보상금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지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금전적 제안을 거절했던 주민의 83퍼센트는 자신들은 뇌물에 매수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p.161 

돈이 비시장가치를 잠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도덕적 쟁점은 두가지 반박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공정성에 관한 반박입니다. 가난, 협박 등과 같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과정에서 가치가 변화했기 때문에 잘못이라는 관점입니다. 집세를 낼 여력이 안되는 사람들에게 집을 통째로 광고판으로 바꾸는 경우, 출산할 수 있는 권리를 파는 경우, 난민을 받을 권리를 다른나라에 파는 경우 등과 같은 도덕적 쟁점에서 공정성에 대한 반박은 집 주인이, 임산부가, 가난한 나라가 돈을 위해 이런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공정성에 대한 반박은 심각한 불평등으로 생겨난 불공정한 거래 조건에 따른 재화의 거래에만 반대할 뿐, 장기거래든 대학입학거래든 배경이 공정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가치의 상품화에 대해서는 반대근거를 제시하지 못합니다. 두번째는, 부패에 관한 반박입니다. 공정성에 관한 반박과는 대조적으로 재화 자체의 특성과 규범에 초점을 맞추고 재화의 도덕적 중요성에 호소합니다. 권력이나 부에 차이가 없는 경우에도 돈으로 사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는 관점입니다. 자기 의지로 성을 파는 고급 매춘부, 혹은 장기판매나 아동판매 등은 그것이 경제적인 문제도, 자유권에 대한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쟁점을 부각시킵니다.

성행한 상업주의에서 나타나는 도덕적 문제에 대해 시장주의자의 관점, 공정성에 대한 반박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두가지 모두 시장의 거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 경우 어느쪽 입장에 서더라도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듭니다. 이런 경우 부패와 타락이라는 도덕적 어휘가 필요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삶The good life 이라는 관념에 호소해야 한다고 센델은 말합니다. 상업주의가 침투했다고 해서 모든것이 변질되고 파괴되는 것은 아닙니다. 경찰차에 기업광고가 붙어도 경찰의 기능은 수행할 수 있고, 혈액을 사고 판다고 해서 혈액이 부족해지거나 질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업화는 사람들에게 하여금 가치의 의미를 바꿔서 생각하게 하고 기존의 목적을 훼손하고 공통성을 잠식합니다. 돈만 있으면 야구경기장의 스카이박스 안에서, 놀이공원 줄의 맨 앞에서 다른 사람들과 분리됩니다. 결국 시장의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모든것을 사고 팔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도덕적 재화가 있는 곳에서 살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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