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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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돌아다니던 중 인상깊은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왕으로서의 삶과 현대의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삶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현대인의 삶을 택할 것이라는 글이였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로 구성된 계급의 꼭대기에 있는 과거의 왕보다 평범한 현대인의 삶이 더 가치가 있다고 한 답변은 우리 인류가 그동안 달성한 진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쁘게 달려오면서 많은 것들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바쁘게 달려왔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 또한 존재합니다. 만약 그 잃어버린 것이 우리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행복한 삶에 필수적인 요소라면 어떨까요? 저자 버트런드 러셀은 현대사회를 조명하면서 좀 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제안합니다. 그 사회는 바로 사람들이 현재보다 게으른 사회입니다.

생명체에게 있어서 진화라는 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 사람들이 가진 노동에 대한 인식 또한 먼 과거와 비교해봐도 크게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엔 소수의 사람들만이 잉여 자원을 가질 수 있었고, 그로 인한 여가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여가를 가질 수 없는 환경이였기 때문에, 근로는 바람직하다는 사상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런 사고는 계속 이어져 현대인들에게 힘 닿는 데까지 노동할 것을 요구합니다. 심지어는 지쳐 쓰러질때까지 일하라고 요구하는 직업도 있는데, 이런 직업은 때론 유망직종으로 분류되며 이상적인 배우자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소비사회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기 때문입니다. 러셀은 이에 대해 이익을 낳는 것만이 바람직한 행위라는 시각이 모든 것을 전도시켜 버렸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현대의 노동윤리는 금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금전적으로 풍족한 사람들마저도 여가를 즐기지 못하게 만듭니다. 역사적으로 여가를 즐길 수 있었던 사람들이 남겨놓은 것들이 우리 사회의 기반임을 감안하면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도 남아 있습니다. 현대의 기술은 여가를 소수 특권 계층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공동체 전체가 고르게 향유할 수 있는 권리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러셀은 기술의 혜택을 더 많은 부를 생산하는데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여가를 위해 사용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러셀은 놀랍게도 4시간 노동제를 주장합니다. 사회를 현명하게 조직해서 적정한 양만 생산한다면, 하루4시간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러셀의 주장은 일견 유토피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주장에 호응해 20세기 초에 실제로 노동의 변화를 이끈 시기가 있었습니다. 노동자계급에 있어서 가장 큰 진보는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라고 외치며 대중여가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계몽된 산업가들이 받아들인 자본주의 사상이 있었습니다. 이 사상은 사람들이 충분하게 가질수 있는 수준 이상의 무한경제성장을 추구한다면 자연이 파괴될 것이라는 존 스튜어트 밀과 사이먼 패튼 등의 사상과, 서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가를 노동시간 단축의 형태로 가질 것이냐, 실업의 형태로 가질것이냐라고 말한 달버그의 사상 등을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이 사상은 실제로 기업들에 의해 실천되었고 노동시간이 6시간까지 단축되기도 했습니다. 후버 행정부 뿐만 아니라 미국 제조업 협회, 노동 총연맹, 각종 유명 언론과 기업인들도 6시간제 도입에 지지를 보내고 미국 전역에 확대되어 1932년에는 전체 노동자 25%이상이 이 운동의 덕을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5년 동안 실제 경험으로 증명해 왔다. 노동시간을 줄이면 효율성과 노동자의 직업 정신이 매우 향상되며 사고와 보험료율도 매우 개선되고 단위당 생산 비용도 매우 낮아져서, 우리는 각각의 노동자에게 8시간제 때 지급하던 것과 비슷한 수준의 보수를 6시간제에서도 지급할 수 있다. -《8시간 VS 6시간》p.69 

현대사회가 적은 노동으로도 충분히 생필품을 공급할 수 있는 상황에서, 러셀은 노동을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더 나아가 노동이 만들어내는 부에 집착하기보다는 더 많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돈에 구애받는 사회에선 돈과 관련된 지식과 행동만이 대접받습니다. 현대사회는 돈을 많이 벌어다주는 지식이 최고의 지식이며,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최고의 직업인 것입니다. 하지만 러셀은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돈과 관련이 없는 지식도 유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사색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선 여가가 필요합니다. 과거 여가를 즐길 수 있었던 소수의 사람들이 현대사회의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만약 현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다면 미래는 아마 더 찬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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