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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ㅣ 동양고전 슬기바다 5
추적 지음, 백선혜 옮김 / 홍익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고전(古典)은 위대하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영향을 끼쳐 온 고전들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 탁월한 대중성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정신을 꿰뚫고 있다.
고전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여타 책과는 사뭇 다르다.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고 기억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내게 전달해준다. 그것은 마치 완성된 하나의 요리를 먹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서도 요리의 가치가 있는 식재료를 받은 느낌이다. 그 풍부한 만족감은 고전이란 것이 단순히 말뿐인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게 해준다. 더 도약할 수 있는 느낌, 사색에 잠길 수 있게 하는 고전의 힘은 그야말로 위대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책읽기엔 문제점이 있다. 이번에 느낀 거지만, 나의 책 선정은 지나칠 정도로 외국서적에 치중되어 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 내 방의 책장을 보면 거진 60여권의 책이 모두 외국인의 책이다. 외국도 거의 대다수는 서양인의 서적이고, 동양인의 서적이라곤 무함마드 유누스나 달라이라마 정도랄까, 누가 보면 편애하고 있다고 말해도 변명거리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동양서적의 수준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정치, 사회적으로 끼친 영향력은 고려하지 않고 순수한 학문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성리학만 해도 영남학파의 이기이원론이나 기호학파의 기발이승일도설 등 사람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고자 했던 철학적 수준은 서양의 그것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도 동양의 학문이 18세기까지만 해도 더 앞서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나도 그것을 인정하기는 하나, 근래의 현대 사회문제에 관련된 책은 개인적 취향일지도 모르지만 단연 서양쪽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18세기 이전의 동양서적을 접하게 된 것은 비록 타의로 접하게 되었지만 꽤 흥미로운 인연이 아닌가 싶다. 근래의 한국서적들에 흥미를 잃어버린 나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자극이 될지도 모른다.
명심보감은 요근래의 책과 비교하자면 자기계발서에 비교될거 같다. 실제로 자기계발서 부류의 베스트셀러였던 시크릿이나 그 외 유명 서적들 대부분은 명심보감과 같은 고전을 바탕으로 씌여져 있었다. 서점에서 슬쩍 봤을때의 기억으로는 손자병법의 글귀에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명심보감 또한 그 이전의 고전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모아놓은 책이니, 성질적으론 동일한 성질의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 부류의 책은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런 책의 효과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선해야 한다는 것 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선해지라는 책을 접함으로 인해서 마음을 다짐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각종 심리학적인 실험만 봐도 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쉽게 변하는지 알 수 있다. 대중효과만 고려해도 이런 책을 주변에서 읽어주고 실행해주기만 해도 덩달아 행동이 변화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명심보감은 오랜 세월 입증되어 온 책이다. 순수하게 이 책만의 영향력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 문화가 오래 지속되어 왔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의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수많은 사상의 바탕이 되어 준 고전이 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유별나게 뛰어난 부분이 있다. 고전의 영향력은 엄청나지만, 그 영향력이 꼭 좋은 방향으로만 흐른다고는 할 수 없다. 독재정치를 옹호할 수도 있고, 현대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있고, 과격한 민족주의를 옹호함으로서 전체주의, 파시즘으로 치닫는 사상도 있었다. 결국 과거 사상의 변화에 큰 틀이 되었을 뿐 고전이라는 것이 현재의 사회에 적용시키기엔 무리인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 명심보감은 그러한 느낌이 놀라울 정도로 적다.
특정 사상을 연호하거나 과학적 발견을 말하는 책이 아니니만큼 책의 내용이 무난하기 때문인 것도 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야 말로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진리인 것이 아닐까? 이러한 오랜 세월 속에서도 아직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때로는 짧은 성찰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위대한 것이 아닐까? 남녀평등시대에 과거 남성우위의 사상은 고쳐야 할 점임은 분명하다. 허나 그 외의 부분, 효, 예, 인, 덕 등과 같은 미덕들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영원한 동물적인 미덕이 아닐까. 비록 현대의 급격한 서구화에 효와 같은 덕목에 대한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서양과 동양에서 효를 하는 방식에서의 차이였지 결코 효라는 미덕의 부정은 아니였다. 늙었을 때 노인을 모시지 않아도 노인끼리 자립해 나가는 모습이 옛 동양적 사고관에서는 부정적으로 비춰졌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효라는 미덕의 부정은 아닐뿐더러 요새는 오히려 그러한 부분을 우리 사회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변화하고 있다. 물론 이 말이 은퇴후에 경제적 능력이 없는 부모를 내버리는 짓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효는 살아있고, 다른 미덕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하다면, 이 명심보감의 교훈도 계속 살아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