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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픽 - 운전습관과 교통체계에 숨겨진 인간의 비이성적 본성 탐구
톰 밴더빌트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 김영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운전을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방향지시등을 켠 채로 계속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이나, 전화하는 사람, 심지어 컵라면을 먹으면서 운전하는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도로 위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들은 다양한 의문을 가지게 만듭니다. 왜 평상시에는 점잖고 자상한 사람이 운전대만 잡으면 돌변하는가? 왜 내 차선만 막힐까? 왜 정체가 생길까? 나는 정말 운전을 잘 하는 것일까? 저자는 다양한 사회학, 심리학적 방법 등을 사용해 운전자들의 습관과 교통체계에 숨겨진 인간의 비이성적인 본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운전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말을 흔히 하곤 합니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운전자들은 운전대를 잡으면 돌변합니다. 안타깝게도 변화는 부정적인 형태로 향합니다. 이러한 이유는 운전자들이 야누스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운전자의 환경은 필립 짐바르도의 표현을 빌리자면, 썩은 사과상자와 같습니다. 자동차의 경우 외부와 차단되어 있고 익명성을 가지며, 다른 운전자와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운전할 경우 우리는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언어로 소통하지 못합니다. 운전대 앞에 앉은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의 뒤통수만 바라보는 식으로 달려가는데, 이러한 환경은 커뮤니케이션 부재 현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또한 운전자는 자동차가 곧 자신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옆좌석이나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 흥분하지 않을 상황이 오더라도 운전자는 흥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인지 알 수 있는 표시와 인간적인 접촉 기회를 없애면 인간은 말 그대로 비인간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운전자가 화를 내는 상황은 대부분 운전자의 운전 미숙이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운전자의 절대 다수는 자신의 운전 실력을 평균 이상이라고 대답합니다. 심리학자는 이러한 인간의 과대평가 현상을 낙관적 편견이라 부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운전자에게 민폐를 끼치는 운전자의 대부분은 평소에 자신이 운전을 잘한다고 과시하는 운전자들입니다. 운전자가 자신의 운전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이유는 운전 실력을 정확히 평가할 실력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고속도로는 운전자의 평판을 평가하는 제도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실력에 피드백을 받고, 개선할 기회가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근거해 미국에서는 드라이브캠 이라는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운전자의 운전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실력을 개선시켜주는 서비스입니다.
운전은 1500개 이상의 작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기술인데, 뇌 수술 전문 외과의를 뺀 나머지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복잡한 것이 바로 운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전을 아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는 운전을 과잉 학습 행동이라고 부르는데, 일단 익히고 나면 습관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운전은 엄밀히 말하자면 눈앞의 고릴라를 보지 못하고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눈과 마음이 운전중에 보여주는 다양한 착시 현상과 방심은 운전을 많은 사람들이 접하기 쉽게 해주기도 하지만, 예외적 사건이 발생했을 시 대응하기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운전자들의 심리가 만들어내는 효과는 교통정체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운전자가 무심코 스마트폰을 잠깐 본 시간 때문에 파도 현상이 생겨 도로가 정체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통정체에 대응하기 위해 도로를 더 넓히고, 더 많이 건설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체를 사라지게 하지 못합니다. 도로의 추가 건설은 새로운 자동차 수요를 불러와 통행량 증가로 이어집니다. 주차 문제 또한 교통정체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데, 통계를 보면 자동차들은 운행시간만큼의 시간을 주차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차와 관련된 문제는 거리에 주차공간이 부족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료 혹은 저렴한 주차공간이 너무 많다는 데 있습니다. 무료 혹은 저렴한 주차공간이 있기 때문에 운전자들은 그러한 공간을 찾아 낮은 속도로 시내를 돌아다니며 이러한 행동이 교통정체를 발생시킵니다. 개인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개별적인 행동이 집단에는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하는 사례인 것입니다.
정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차선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가 추돌 사고를 덜 내는 대책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운전자들이 교통사고를 덜 내게 하려면 좀 더 안전한 시스템 구축을 하면 된다고 직관적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시스템이 실제로는 더 안전하고, 우리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시스템은 실제로 더 위험합니다. 교차로 시스템은 로터리 시스템보다 위험하며,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어 있는 것이 더 위험합니다. 도로에 설치된 수많은 교통 표지판들은 대부분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한 신호들은 운전자들의 심리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차선이 없는 도로가 오히려 안전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몬더만은 알데하스케의 중심 도로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그는 그 거리를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을 없앤 것이다. 차도와 인도를 완전히 분리하면 운전자는 '차도 공간은 모두 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속도를 내 운전하게 된다. 그러나 그 길이 나만의 길이 아니라 내 차 앞으로 얼마든지 어린이가 지나다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서행하게 된다. 몬더만은 물리적 강제로 감속 효과를 유발하기보다는 심리적 교통 진정 대책으로 알려진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 p.429
도로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현상들은, 인간 내면의 축소판을 보여주며, 우리 사회의 일면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교통량이 적은 도로변에 사는 사람들이 실제로 더 많은 교통량을 유발하는 반면, 교통량이 많고 시끄러운 도로변에 사는 사람들은 더 적은 교통량을 유발하는 모습은, 결국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방법으로서 자동차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부패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교통사고가 많고, 남성 운전자가 여성 운전자보다 위험하고, 검은 차가 흰색 차보다 위험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을 원하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저자의 질문처럼 자동차 운전자는 왜 자전거나 오토바이 운전자처럼 헬멧을 착용하지 않을까요? 저자는 자동차라는 교통 수단이 현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 지금, 도로에 내재된 비이성적인 부분을 개선함으로써 좀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제의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