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밤문화 - 낮과 다른 새로운 밤 서울로의 산책 서울문화예술총서 1
김중식.김명환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한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밤문화는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구한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밤문화의 역사와 종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술과 춤, 사창가 문화에서 새로운 복지로서의 밤문화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밤문화의 변화가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구한말부터 박정희정권에 이르기까지 밤문화는, 술과 여자, 노래와 춤으로 대변되는 향락의 문화였습니다. 구한말부터 1930년대까지는 기생문화로, 당시 사회에서 기생들의 역할과 의미 등을 알수 있습니다. 기생들이 조합을 결성해 사회 일원으로서 당당히 활동하고,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들과의 사랑이야기와 은신처 제공 등을 제공한 반면 밤과 낮이 엄격히 구분되는 사회였기도 합니다. 1930년대부터 광복전후까지는 청계천 남쪽의 명동, 충무로를 중심으로 한 일본식 카페문화와 한국식 선술집 문화로 나뉩니다. 당시 젊은이들은 일본인 주류의 카페거리로 나가 촬스톤이란 댄스를 추며 밤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광복이후 밤문화는 문화인들이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양술인 맥주, 양주가 보급되며 맥주바 등의 고급술집이 선보였고, 곡식주 금령을 통해 막걸리 주류의 문화에서 소주 문화로 변화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춤과 노래를 중심으로 즐겼는데, 당시 유행했던 카바레와 고고클럽은 젊은이들과 여성(주로 유부녀)의 해방구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카바레에 빠진 여성들로 인해 사회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으며 제비족이란 단어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밤문화의 주류는 여전히 상류 권력층, 부유층이 주를 이루었으며 군사독재시절 요정정치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통금으로 인해 통금이 해제되는 새벽 4시까지 마시는 통금형 상품이 등장하기도 했으며 종로3가, 청량리588 등이 번성합니다.

 박정희정권이 물러나고 전두환정권이 들어서며 통금이 해제됩니다. 이는 전두환정권의 민심책이였으며 시민들은 통금으로 인해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야간 포장마차가 등장했고, 야간 관광코스도 등장했으며 야간 결혼식마저 등장합니다. 이는 국민들이 얼마나 통금 해제를 목말라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후 서민의 밤문화라 불리우는 라디오 드라마와 TV가 보급되기 시작하며 시민들은 점차 생활속에서 밤을 즐기기 시작합니다. 밤문화는 소수의 향락문화에서 대중의 여가문화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서울은 그야말로 방의 도시다. - 백승만,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경제위기 이후 밤문화는 10%(일급 도우미를 확보한 마담들이 전체 술값의 10%를 가져가는것) 룸살롱과 상류층 점유화 현상, 여성의 몸을 사는 주색문화에서 보는 주색문화로 변모합니다. 현대에 들어 PC방, 노래방, DVD방.. 수많은 방문화가 한국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가장 최근의 방문화중 하나인 찜질방은 이러한 방문화의 총집결이라 부를 만하며 찜질방은 그 특징으로 인해 부와 지위, 세대와 남녀구분을 탈피하는 민주주의적 요소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은밀스러운 행위인 수면마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찜질방의 공간은 새로운 변화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밤문화는 대중의 술문화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술에 대한 관념이 많이 누그러지는 것이 특징인데, 술이 덜 깬채 출근하는 것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남자의 49%, 여자의 41.9%가 문제없다고 답변했으며 직속상관의 경우 30%이상이 이러한 경우를 모른체 넘어가는 것으로 조사됬습니다. 이는 비정상적인 생활, 노동강도에 대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청산해야 할 음주문화 때문에 병들어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술을 마시는 주도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생활문화 전체가 병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박재환, 《술의 사회학

현대에 들어 서울은 24시간 활동하는 도시, 낮과 밤이 공존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더욱 다양한 밤문화를 원합니다. 술집, 극장, 대형마트, 찜질방 뿐만 아니라 지속적이고 여유로운 휴식의 밤문화를 요구합니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인사동, 청계천, 대학로 등이 문화지구로 지정되는 등의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문화지구로 지정된 이후 오히려 문화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부작용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문화지구 지정 이후 부동산값이 폭등했고, 2003년 문화지구 지정 당시만 해도 인사동에는 172개의 골동품점, 87개의 표구사, 108개의 화랑이 있었지만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높아진 임대료를 내지 못한 대부분의 전통가게들은 문을 닫고, 카페와 중국제 기념품가게 등이 들어섰습니다.

 현대의 밤은 문화 복지, 문화 민주주의를 앞세운 새로운 밤의 가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자정 이후에도 계속되는 야경, 문화시설물은 전체의 18.8%에 달합니다. 서울은 바쁘고, 복잡하며, 고유의 이미지를 빠르게 뒤엎고, 변화하는 고정되지 않은 곳이 되었기 때문에, 서울에선 다양한 문화가 생겨나기 쉽고, 마찬가지로 소멸하기 쉽습니다. 600년 도읍의 역사를 지닌 서울은 이것이 한국의 문화다 라고 대변할 수 있는 많은 밤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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