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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
아즈마 히로키 지음, 이은미 옮김, 선정우 감수 / 문학동네 / 2007년 6월
평점 :
이 책은 서브컬처인 오타쿠 문화를 어떻게 보고 이해할 것인지, 그리고 그 오타쿠 문화가 다른 문화들과 얼마나 유사성을 지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타쿠계 문화의 구조에 1970년대 이후의 포스트모던의 본질이 잘 나타나 있으며, 이 동등한 관계성은 양자 모두를 이해하고 결론적으로 60년대 또는 70년대 이후의 문화적 세계를 폭넓게 파악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오타쿠계 문화의 기원은 2차대전 후 5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미국에서 수입된 서브컬처로 시작됩니다. 오타쿠계 문화의 역사란 미국 문화를 어떻게 국산화하느냐 하는 환골탈태의 역사였는데, 이는 일본의 전통이 메이지유신 이후, 2차세계대전 이후 소멸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오타쿠계 문화의 일본에 대한 집착은 전통을 바탕으로 성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전통이 소멸한 뒤에 성립한 것인데, 바꾸어 말하면 오타쿠계 문화의 배후에는 패전이라는 심적 외상, 즉 일본이 전통적인 주체성을 결정적으로 잃어버렸다는 잔혹한 사실이 감춰져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미국적인 현실과 잃어버린 일본의 전통은 오타쿠계 문화에서 기묘하게 왜곡된 일본의 이미지, 중학생의 교복을 입고 점성술을 외치며 마법의 지팡이를 든 무녀와 같은 하이브리드적인 상상력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미국산 재료로 만들어진 의사 일본이라는 개념으로 생긴 왜곡된 상상력, 이런 하이브리드적 문화를 일본적인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으면 오타쿠계 작품을 수용할 수 있고 그 조건에 과도하게 동일시하면 오타쿠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오타쿠계의 작품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며 오타쿠 혐오가 됩니다. 작중 '세이버 마리오네트J'라는 SF코미디에서 나오는 '진짜로 보이는 가짜와 본적 없는 진짜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주제는 오타쿠들의 세계관을 아주 잘 우화하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가짜(미국화된 일본)를 받아들일 것인가, 또는 본 적 없는 진짜(개항 이전의 일본)을 받아들일 것인가?
오타쿠계 문화의 포스트모던적 특징으로 두가지 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하나는 2차창작의 존재입니다. 이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예견한 문화산업의 미래, 오리지널과 복제의 중간형태인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던 문화의 작품은 한 사람의 작가에 의해서가 아닌 무수한 모방이나 표절의 연쇄, 그것이 다시 오리지널에 영향을 끼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문화의 변화는 오타쿠계 문화에서도 나타나는데 초기 오타쿠 문화인 건담의 경우 건담팬들은 건담의 세계를 정밀조사하고, 연표의 정합성이나 메카닉의 리얼리티를 고집하는 이른바 건담에서의 세계 전체, 데이터베이스를 바라보는 관점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90년대의 에반게리온의 경우 더 작은 이야기들에 주목합니다. 에반게리온 이후는 더욱 작은 요소들로 나뉜 것을 선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요소들끼리 영향을 끼치고 새롭게 조립됩니다. 이른바 모에 요소라는, 데이터베이스의 여러 요소들이 하나의 관점을 결정하게 됩니다.
또 하나는 오타쿠들의 행동을 특징짓는 허구 중시의 태도입니다. 이런 행동은 오타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모라토리엄이나 퇴행으로 여겨지게 되고 논란거리가 되곤 하는데, 실제론 오타쿠가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기보다는 사회적 현실이 부여하는 가치규범과 허구가 부여하는 가치규범 중 어느 쪽이 인간관계에 유효한가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결과입니다. 이 특징은 프랑스의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지적한 '커다란 이야기의 조락'에 대응하는데, 근대국가의 발달시에 생겨난 '커다란 이야기'란 시스템이 현대에 들어 붕괴했다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국가의 전통, 이데올로기, 이성의 이념이라는 큰 이야기의 실추는 오타쿠 문화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오타쿠적인 이야기소비, 허구중시는 소비사회적 냉소주의가 철저화된 형태로서 발달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코제브의 헤겔독해입문에서 전후 미국에서 대두한 소비자의 모습을 동물이라고 부르는데, 이와 같은 강한 표현이 쓰인 것은 헤겔철학의 독특한 인간 규정과 관계가 있습니다. 헤겔에 의하면 인간이 인간적이기 위해서는 주어진 환경을 부정하는, 자연과 투쟁하는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이에 반해 동물은 항상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살고 있으며, 따라서 소비자의 필요를 그대로 충족시키는 상품에 둘러쌓여 있고 미디어가 요구하는 대로 바뀌어가는 전후 미국의 소비사회는 그의 용어대로라면 인간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동물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굶주림도 투쟁도 없는 대신 철학도 없다고 코제브는 말합니다.
책의 제목처럼, 오타쿠 문화는 동물화하고,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에서 사람들은 동물화합니다. 이는 미국식의 소비주의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오타쿠 문화에서 케릭터가 수많은 요소로 분해되고 자신이 원하는 요소만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현대의 사회 또한 그런 요소를 찾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특징만을 골라 아이를 입양할 수도 있고, 집창촌에서 자신이 원하는 부류의 이성을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원한다면 하루만 데이트를 할 수도, 언제든지 원하는 음식만을 골라 먹을수도 있습니다. 소비자의 요구는 세밀히 분화되어 기계적으로 충족되도록 날마다 개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개구리나 매미처럼 콘서트를 열고 새끼동물이 노는 것처럼 놀며 다 자란 짐승이 하는 것처럼 성욕을 발산하는 세계가 될 것이다. - 코제브
포스트모던 이전의 인간은 이야기적 동물입니다. 그들은 인간 고유의 삶의 의미에 대한 갈망을 인간 고유의 사교성을 통해 충족할 수 있었지만 포스트모던의 인간은 의미에 대한 갈망을 사교성을 통해 충족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을 동물적인 욕구로 환원함으로써 고독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작은 이야기와 큰 이야기 사이에 연계도 없고, 전체적으로 누구의 삶에도 의미를 주지 않는채 표류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체제 정비나 이성, 생산의 우위로 나타난 커다란 이야기들은 현대에 이르러 커다란 사회규범이 약화되고 사회 전체의 결속이 약해집니다. 이 책은 오타쿠 문화를 통해 우리 문화 전체를, 혹은 우리 문화 전체를 통해 오타쿠 문화를 비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독한 폐쇄성의 사회에도 간혹 그것을 뛰어넘고자 하는 문화와 사상이 있고, 오타쿠 문화에서도 작중에 등장하는 YU-NO라는 작품처럼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자유롭게 분석하고 비평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