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최고의 과학사기사건, 필트다운
에르베르 토마 지음, 이옥주 옮김 / 에코리브르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1912년, 런던 남부 서식스주의 필트다운 마을 근처에서 고대의 유물이 발견됩니다. 인간의 두개골 모양과 원숭이의 아래턱 모양을 지닌 화석인류가 발견된 것입니다. 필트다운 이전의 화석인류는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그리고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발견된 원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세개의 화석인류에 모두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네안데르탈인은 너무나 상스러워 보였고, 크로마뇽인은 너무 현대인과 가까웠으며, 자바의 원인은 유럽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대중들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 필트다운 화석은 영국인에게 특히나 의미가 있었는데,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은 모두 프랑스, 독일, 벨기에, 크로아티아 등 유럽 본토에서만 출토된 화석인류였기 때문입니다. 옆나라 프랑스가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모두를 발굴한 상황이다 보니 영국인들의 자존심은 손상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이 필트다운의 화석은 영국에서 출토된 데다가 아주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마스크를 가진, 그야말로 사람들이 기다리던 이상적인 화석이였습니다.

1912년 필트다운인의 발견은 유럽의 선사시대 고고학과 인간 고생물학이 활성화되고 있던 매우 특별한 상황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지질학적으로 매우 오래된 인간 존재에 대한 생각은, 필트다운보다 1년 전에 발견된 독수리 부리 형태의 가공 부싯돌의 발견과 더불어 부상합니다. 이 부싯돌은 고대에 영국의 동쪽을 완전히 잠식했었던 바다의 연안 침전물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제3기 인간의 실존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필트다운이라는, 인간의 두개골과 원숭이의 아래턱을 지닌 이 화석은 매우 오래된 적당한 장소에, 고생물학적이고 선사학적인 맥락에서 아주 논리적인 순서로, 적절한 순간에 나타난 것입니다. 아주 오래된 인간, 제3기인의 실존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필트다운인은 그야말로 완벽했기 때문에, 영국의 많은 유명한 학자들이 이 발견에 열렬한 환호를 보내게 됩니다. 인류의 기원을 새롭게 밝히는 혁명적 사건이었던 데다가, 심지어 최초의 인간이 영국인이라는 국수주의적 만족감까지 제공해줬기 때문입니다.

필트다운인의 발견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고생물학자들과 동물학자들에게 논쟁을 일으켰는데, 미국자연사박물관의 게릿 밀러, 파리 자연사박물관의 마르슬랭 불 등 많은 학자들은 두개골과 턱이 같은 지역에서 발굴되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둘의 조합에 강한 의구심을 표명합니다. 그들은 순수한 해부학적 논리를 따라간다면 두개골과 턱이 각기 다른 존재에 속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평가는 필트다운인이 발굴됬을때 해부학적으로 중요한 부위인 턱의 앞부분과 턱관절 부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논쟁은 뇌 용량에 대한 부분인데, 이 또한 두개골 부분이 전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필트다운인의 공식적인 발표회가 이루어졌고, 영국 학자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지지를 표명합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1915년에 두번째 유적을 발견해 이를 필트다운2 라고 명명했고, 심지어 필트다운인이 사용했을것이라고 추정되는 엄청나게 큰 납작한 뼈 조각, 훗날 크리켓 배트라고 불리우는 화석도 발견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필트다운인을 보기위해 대영박물관으로 갔고, 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학계도 의견이 크게 양분되었는데, 게릿 밀러와 알레스 흐르들리카, 앨번 마스턴 등과 같은 소수의 학자들만이 견해를 고수했습니다.

필트다운 발견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이 사건을 정교하게 검사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X선 분광사진기 분석, 전자현미경 사진, 방사선 측정과 탄소14를 통한 연대측정 등 현대적인 기술이 도입되면서 점차 필트다운에 대한 공격이 시작됩니다. 케네스 오클리는 뼈의 서로 다른 연대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불소 함유량을 통한 상대적 연대측정법을 적용하려고 시도했고, 결국 필트다운의 발견 중 크리켓 배트가 위조라는 것을 밝혀냅니다. 위너는 과망간산염 포타슘으로 필트다운의 턱뼈의 이빨을 만들어내 턱뼈가 가짜일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합니다. 결국 대영박물관 가빈 디비어의 지시로 검사를 시행했는데, 필트다운인이 만들어진 위조라는것이 밝혀집니다. 이는 공식 보고서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고, 필트다운인이 발견되었을때 만큼의 소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40년간 최초의 인간이라는 자리를 지킨 필트다운인이 사기라는 충격은 그동안 지지해왔던 학자들은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결국, 의회에서 누가 책임을 지느냐는 문제가 불거졌고 위조의 장본인을 찾아나서게 됩니다.

필트다운인 위조에 쓰인 기법은 매우 정교했고, 그 위치선정 또한 높은 고고학적 지식을 요구했기 때문에 우연히 만들어질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때문에 최초의 발견자 찰스 도슨을 비롯해 필트다운인을 발표했던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 당대 내로라 하는 최고의 지질학자, 고생물학자, 해부학자, 동물학자, 박물관 관리자들이 범인으로 의심받았으며, 심지어 셜록 홈즈의 각가 아서 코난 도일, 프랑스의 사상가 테야르 샤르댕 신부 등도 용의선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대영박물관의 광범위한 공식조사에도 불구하고 위조범을 찾지 못했습니다. 주요 용의자들의 관련 서류는 모두 폐기된 상태였고,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었습니다. 결국 현재까지도 필트다운의 위조범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필트다운 사건은 어쩌면 누군가 장난으로 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당시 영국의 정세와 고고학적 발견의 필요성 등의 환경을 감안하면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필트다운이 발견되었을 때, 마르슬랭 불은 "오직 신념만이 구원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필트다운의 경우에, 신념은 순식간에 이성을 압도하고 말았습니다. 대영박물관이 필트다운 화석을 조사하는데 있어서 방해를 한 이유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당시 수많은 전문가들이 있었지만 필트다운의 진실은 40년동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인류학 역사상 최고의 과학사기사건이라 부를 만한 필트다운 위조사건은, 과학자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에 대한 불신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과학이 만들어낸 사기사건을 해결한 것 또한 과학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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