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뎐 - 시대를 풍미한 검은 중독의 문화사
양세욱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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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먹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짜장면입니다. 배달음식의 대명사가 바로 짜장면이며, 중국음식이란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국에서 짜장면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한국인의 대중적인 음식인 짜장면은 단순히 면과 춘장으로 이루어진 음식이 아닙니다. 짜장면에는 한국 근현대사 과정과 한중교류의 지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저자는 단순한 음식으로서의 짜장면을 넘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짜장면의 문화사를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서 짜장면의 의미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합니다.

쌀과 달리 밀은 밀가루로 채취하는데 있어서 정교한 기술과 많은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밀가루 음식은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근대 기술이 도입되기 전까지 면은 번거로운 음식이였기 때문에, 국수는 잔치의 음식이였고 축제의 음식이였습니다. 이는 한국에서 국수를 결혼식과 동일시해서 부르는 관습이나 일본의 한 해의 마지막날에 국수를 먹는 풍습 등을 통해 잘 알수 있습니다. 짜장면의 성공 뒤에는 국수가 가지고 있는 잔치와 축제의 음식이라는 상징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면은 또한 그 특유의 생김새로 인해 독특한 재미를 더해주기도 합니다.

관건은 입술이다. 밥이나 빵을 먹을 때는 입술을 쓸 일이 없다. 입술을 사용하는 음식은 오직 가늘고 긴 면 하나뿐이다. 노출된 성기인 입술은 인체에서 가장 많은 감각세포들이 집중되어있는 부위이다. 빨고 스치고 문지르는 동안 입술에 멀티 오르가슴을 전해주는 음식이 면인 것이다. - p.109 

짜장면의 원류는 중국의 가정식 음식에서 비롯되었는데, 삶은 면에 볶은 면장과 야채를 얹어 비벼 먹는 음식으로 '장을 볶은 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름은 작장면입니다. 중국음식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작장면도 지역별로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작장면이 한국으로 건너오게 된 것은 임오군란때 중국인들이 장기 체류하면서 화교가 생성됨으로서 비롯됩니다. 여러 작장면 중 우리나라의 짜장면과 가장 유사한 형태가 북경과 산동식 작장면인데, 한국에 진출한 화교의 90%정도가 산동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짜장면이 현재의 한국화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작장면의 면장에 캐러멜 소스를 섞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1948년 화교 왕송산은 영화장유라는 식품 회사를 창업하고 사자표 춘장이라는 제품을 출시합니다. 이 춘장이 보편화되면서 단맛이 없고 짠맛이 강했던 작장면에서 윤기가 나고 단맛을 내는 짜장면이 됩니다.

 

짜장면의 성공요인은 여러 개가 있습니다. 짜장면이 보급될 당시,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외식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식은 아직 가정의 음식이였고, 일식은 국민정서상 받아들이지 못했으며, 양식은 너무 비쌌습니다. 반면 중국식당은 값이 저렴하면서 집에서 먹기 힘든 별식이였기 때문에 외식장소로 급부상했습니다. 모택동의 공산당이 중국을 지배하게 되자 귀향할 수 없었던 화교들 중 많은 수가 중국 음식점으로 전업해 중국 음식점 수가 많이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밀가루 원조와 정부의 혼,분식 장려 운동 또한 짜장면의 성공에 기여했습니다. 혼,분식 장려 운동으로 쌀 중심의 식습관이 크게 변했습니다. 1970년부터 등장한 철가방과 배달문화는 짜장면을 확고한 한국식 문화로 정착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1980년대를 기점으로 외식 문화의 꽃이라는 짜장면의 위상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중국음식점 경영자의 국적이 화교에서 한국인으로 점차 변화했습니다. 정부 또한 외국인 토지 취득 및 관리에 관한 법을 시행하면서 태화점, 공화춘 등과 같은 유명한 고급 중식당들이 문을 닫게 됩니다. 중국인들과 교류가 단절되면서 중국음식은 고유의 특징을 잃게 됩니다. 영업전략은 단가를 낮추는 쪽으로 진행되었고, 배달만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88년 올림픽을 전후로 외식장소로 한식, 일식, 양식이 점차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외식문화의 정상에 있었던 짜장면을 필두로 한 중국음식은 평범한 음식이 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맛의 하락입니다.

 

짜장면 맛있는 집이 없는 건 당연한 거야. 좋은 춘장이 없으니까. 지금도 집에서 춘장을 만들어 먹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춘장을 상업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캐러멜 넣은 강력한 공장 춘장의 맛을 못 이겨. 불행한 거지. 된장찌개 맛있는 집들 생각해봐. 그런 집들은 다 이유가 있어. 어느 절에서 스님이 만들어놓은 메주를 쓴다거나 고향집 할머니가 직접 만든 된장이라거나. 아직까지 좋은 된장을 찾는 사람이 있고,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좋은 된장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명맥이 유지되는 거잖아. - p.184 

정부의 정책, 한국인의 인종차별 등으로 화교들이 떠나가면서 중국식당은 과거의 모습에서 변화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식당엔 중국인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요리들이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인들이 먹지 못하는 중국음식이 된 것입니다. 이는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서 한식당에 들어갔는데 전혀 듣도보도 못한 요리가 한국음식이라고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중국식당의 요리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중국음식에 대한 편견인 느끼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해 줍니다. 하지만 중국요리는 느끼한 음식만 있지 않습니다. 수없이 많은 종류를 가진 중국요리엔 끓이고, 삶고, 찌고, 데치고, 굽고, 졸이고, 버무리는 음식들이 가득합니다. 한국의 중국식당들은 중국과 교류가 끊김으로서 중국음식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고, 한국화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중국음식의 한국화는 정체를, 퇴보를 야기했습니다. 이는 세계 어디서나 싸고 다양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중국음식이 한국에서는 비싸고 천편일률적이고 맛없는 음식으로 변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음식의 본질은 섞임과 나눔이다. 모든 음식은 퓨전 음식이며, 음식의 역사는 퓨전의 역사이다. 우리의 혀는 익숙함과 새로움의 경계에서 방황하며 음식의 유혹을 좇는다. 음식은 복잡한 통관 절차나 입국 심사 없이 국경을 넘나든다. 짜장면과 중국음식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 p.256 

하지만 중국과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반세기 이상 정체되었던 중국음식에 변화의 바람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정말로 중국인들이 평소 먹는 중국음식이 한국에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한국인들이 먹었던 중국요리, 짜장면 또한 중국으로 진출했습니다. 한국식 중화요리를 팔고 있는 중국식당이 늘어나고 있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짜장면을 찾는 중국인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변화의 바람은 긍정적입니다. 짜장면은 근현대 한중교류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음식입니다.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음식이 된 짜장면은 먼 미래까지 한중교류의 산 증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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