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파시즘 - 선(禪)은 어떻게 살육의 무기가 되었나?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 지음, 박광순 옮김 / 교양인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기원전 6세기에 태어난 석가모니 붓다의 말이 쓰여진《법구경》130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폭력을 두려워하고 평화로운 삶을 사랑한다. 이 이치를 자기 몸에 견주어 남을 죽이거나 죽게 하지 말라." 그 외에 다른 경전을 봐도 불교에서 살생을 금지하는 계율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불교의 무아관과 생사불이론은 왜곡되어 전쟁 이데올로기로 변했습니다. 저자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불교 간의 유착관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불교가 다른 세계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대량 학살을 부추기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정당화해 왔다는 불편한 현실입니다.

일본의 불교는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태동하던 순간부터 함께였습니다. 일본 불교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사실상 국가 종교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때문에 일본 선불교는 오랫동안 국가를 위해 이데올로기적인 경찰 역할을 해 왔습니다. 국가의 모습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불교의 모습도 국가가 요구하는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일본의 선불교는, 깨달은 사람들은 선악뿐만 아니라 생사도 포함해 모든 이원성을 초월한다는, 8세기 중국의 선불교에서 유행했던 도덕률 폐기론자들의 주장을 물려받았습니다. 선불교는 상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죽음도 불사하는 의무감이라는 미덕을 강조했고, 폭력을 성스러운 의미로 가득 채우면서 문화적 당위 명제로 만들었습니다. 선불교의 권위자 스즈키는 선 특유의 직관적인 이해 방식으로 인해 거의 모든 철학과 도덕론에 극히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선은 영혼의 불멸이나 정의, 신성한 길, 혹은 윤리적인 행동과 관련해 그들과 언쟁을 벌일 필요가 없으며, 단지 한 사람이 도달한 결론이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그 결론을 가슴에 품고 전진하라고 촉구할 뿐이다. 선은 행동을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일단 결심을 하면 가장 효과적인 행동은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선은 진실로 사무라이 무사의 종교다. - 스즈키 

스즈키 선사의 말처럼, 일본은 뒤돌아보지 않고 군국주의로 전진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메이지 시대 말기 이래 아나키즘이나 공산주의 등을 상대로 한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제도권 불교의 지도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군국주의로의 전환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국내에서든 국외에서든 근본적으로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전체주의 사회를 만들어내려는 반동적인 운동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주류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은 반공의 깃발 아래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하고 국가주의를 받아들였습니다. 다른 나라의 군국주의처럼 일본의 군국주의의 성장도 군 내부의 반대를 포함한 국내의 반발을 억압하며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암살 사건들에 대해서 불교계는 지지를 보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불교의 교리는 일본 군국주의의 목적과 동일시되어야 했고, 제도권 불교 지도자들은 대승불교의 계율을 왜곡해서 퍼뜨렸습니다.

조동선종의 총무원장이자 소지사의 주지였던 세키젠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평화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이상이다. 평화는 인간 최고의 이상이다. 일본은 평화를 사랑한다. 우리는 평화와 근본적인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우리가 속해 있는 국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만일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국가를 잊는다면 진정한 평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조국에 대한 의무를 잊어버린다면 우리가 인류에 대한 사랑을 주장하는 방식에 관계없이 진정한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전쟁에 참여하기는 해도 언제나 일본의 전쟁은 평화의 전쟁이다." -《전쟁과 선》p.125 

선불교 교리의 몇몇 주요 측면은 일본 군인 정신의 중심부에 있었습니다. 그중 주요한 것은 바로 생사일여의 깨달음이였습니다. 생과 사는 동일하며, 생명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서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고귀한 정신을 획득할 수 있다는 선의 생사관은 곧 군인들 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 전체의 생사관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군인들의 목적이 살아남아서 고국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장에서 죽는 것이라는 이 사고방식은 군 지휘관들에겐 매력적인 사상이였습니다. 군인들은 자신의 목숨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에, 적의 목숨도 가볍게 여겼습니다. 이는 난징대학살 등 민간인 대규모 학살극으로 이어졌고, 일본군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압도적인 비율로 적군 포로를 많이 죽였다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일본군은 포로가 되는 비율이 2차대전 국가들 중에서 매우 낮았는데, 포로가 되기 전에 단체로 자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차 대전의 막바지에 패색이 짙어질 무렵의 일본은 국가 전체가 대량 자살을 통한 나라의 구원이라는 이미지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불교가 제공하는 무아의 이데올로기는, 자살 특공대라는 현상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했습니다. 이런 성향은 군인뿐 아니라 일본의 민간인들에게도 있었습니다. 일본의 군사 지도자들은 수백만 명의 민간인들을 전투에 소집함으로써 고의적으로 일본인들을 죽음으로 인도했습니다. 이런 행위는 정치적 엘리트의 자기 중심주의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꺼이 일본 국민의 압도적 다수를 희생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도자들은 불교의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생사관을 국민들에게 강요함으로써 연합군에 죽음으로서 맞서 싸우라고 지시했지만, 막상 천황과 그의 최측근, 대본영의 군 참모들은 약 6~7천명의 조선인 강제 노역자들을 동원해 만든 거대한 방공 터널 속에서 전쟁이 종료될 때까지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대담하게 적을 죽이고 적의 것을 훔치고 약탈하는 것과 전법에 따라 정복할 때까지 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는 것은 기독교도의 행위고 사랑의 행위다. 이런 일들은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 마르틴 루터 

불교 지도자들은 일본의 군국주의에 사상적 바탕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군국주의에 뛰어들어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 식민지에 대한 불교 전도 사업인데, 일본의 주요 불교도들은 중국과 아시아 나머지 지역의 불교는 후진적이고 수동적이며 사회적 요구에 무관심한 반면에, 일본 불교는 능동적이고 사회 참여적이며 과학적이기 때문에 일본 불교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참된 불교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일본의 참된 불교를 아시아의 민족들, 심지어 서양인에게까지 전할 의무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식민지 곳곳에 전파된 일본의 불교 사원은 그 지역의 일본군들에게 든든한 사상적 뒷받침이 되었습니다. 불교 지도자들은 전쟁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노력함으로써 전후 일본에서 좌익 정당이 성장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이들은 우익 단체의 기반이 됨으로써 애국심을 고취하고, 일본이 전쟁당시 잔혹 행위를 저지른 것이나 침략 전쟁에 참여했다고 암시하는 것을 모두 교과서에서 제거하려 했습니다.

일본의 불교계가 보여준 이 역사적인 사례들은 종교가 어떻게 군국주의 파시즘의 광기와 유착해 대량 학살과 집단 자살의 혼돈으로 빠져들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불행한 사례가 특별한 사례는 아닙니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 불교의 형태는 무엇보다 우리나라에 먼저 있었습니다. 근대 일본불교의 구조적 특징은 사실 불교의 전래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는데, 신성 왕권에 강력히 집중된 국가를 건설하는 원인으로 기능했던 정치,종교적 이데올로기로서 유용한 호국불교의 모습인 것입니다. 일본에서 나타나는 불교의 국가에 대한 복속은 한국 불교의 모방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군국주의에 휩쓸린 일본 불교의 지도자들은 동양과 서양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들도 자신들이 속한 사회와 시대의 가치관과 편견에 손쉽게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깨달았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너무 평범한 행동을 보여줬습니다.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것은 바로 승려들의 그 평범한 악 이었습니다.

종교학자 마틴 마티는 종교 옹호자들은 대개 종교에 뒤따를 수 있거나, 종교가 만들어낼 수 있는 골칫거리를 축소하며, 진리 추구를 기본적인 주제로서 소중히 여기려 한다면, 신문이나 텔레비전 방송에 계속 등장하는 종교의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종교의 많은 형태와 표현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게 된다는, 목숨을 빼앗는다는 특징입니다. 안타깝게도 적어도 현대사에서 다수의 종교 지도자들이 마티의 지적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저자는 현재까지도 이루어지고 있는 성전이라는 형태의 살육을 이해하고, 줄이기 위해선 종교학자들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역사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심리학자, 정치학자, 경제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지원과 관심이 있어야 종교가 수 천년동안 외쳐왔지만 한번도 지켜지지 않았던 것,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윤리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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