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원의 육체산업 - AV 시장을 해부하다
이노우에 세쓰코 지음, 임경화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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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성인 비디오, AV에 대한 반응은 다양합니다. 여전히 대부분은 쉬쉬하는 반응이지만, 어느정도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심지어〈거침없이 하이킥〉같은 TV프로그램에서는 성인비디오를 개그코드로 승화시켰으며, 그에 대한 반응도 긍정적이였습니다. 또한 요근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아청법에 대한 논란이 주요 이슈화되고 있는데, 아청법이 옳네 그르네를 떠나서 음란물에 대한 것들이 공론화되고 있다는 점은 이 또한 성인비디오에 대한 영향력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 음란물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마도 일본AV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서양의 성인비디오가 더 영향력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성인비디오가 영향력이 작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일본의 AV산업의 실태를 알아보는 것은,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성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2002년 기준으로 1조엔 규모의 시장, 현재 환율로는 13.7조원 규모의 일본AV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그 중 흥미로운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갈수록 공격적인 성행위를 묘사하는 비디오가 잘 팔리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분석, AV 여배우들이 배출되기 쉬운 환경적 분석 등이 있습니다. 리처드 윌킨슨이 쓴《건강불평등》에서 특정 질병의 사망률은 그 사회 특유의 구조를 반영한다고 말한 것처럼, 성인 비디오에서 나타나는 결과들 역시 그 사회의 구조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성인 비디오는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에서 안보 투쟁을 다루거나, 〈검은 눈〉에서 미군기지 문제를 다루는 등 포르노 영화라는 이름 아래 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적인 요소가 배제된 성인 비디오와 폭력은 물감이 물에 풀리듯이 쉽게 융합되었고, 폭력성 강한, 그것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나 강간 등 여성을 힘으로 정복하는 성인 비디오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공업화에 따른 도시 인구 집중과 가족 형태의 변화로 자녀 양육 방식, 특히 남자아이의 양육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핵가족이라는 가족 형태가 선을 보이면서 형성된 남녀의 성별에 따른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잠을 자기 위해 밤늦게야 귀가해 잠깐 집에 머물거나 지방으로 전근이라도 가게 되면 아버지 홀로 떠나는 것이 당연시되다 보니, 어머니가 혼자 가사와 육아를 맡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에서 아들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지나친 애정을 받으며 자라는 환경에 놓이게 됩니다. 많은 어머니들은 자식 교육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현대판 맹모라는 야유까지 받으며 자녀 양육에 헌신했는데, 이는 자식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변명에 지나지 않았고, 아이들은 어머니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자녀들은 학원에 가야 하고, 미래 또한 이미 다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런 자녀들은 어머니의 애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키워갔고, 그 부정적 이미지는 모든 여성에게 확대되어 남존여비 사상이나 여성을 멸시하는 사고를 갖게 됩니다.

심리학자 기시다 슈도는 《어머니에 대한 환상》에서 '남자아이가 어엿한 남성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규범 지키기를 강요하는 어머니에 맞서며 그 갈등을 극복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인 오코노기 게이고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그 애정의 정신분석》에서 '어머니의 과잉보호 아래 자란 아이들은 어머니에 대한 일체감의 환상이 환멸로 끝날 때는 환상을 품었던 만큼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크다. 그 결과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여성에까지 번지게 되는데 이런 심리가 여성에 대한 지나친 공포나 멸시를 낳는다'고 말합니다. 기시다 슈는 《성적 유환론 서설》에서 마더 콤플렉스, 즉 모자간의 분리가 안된 남성은 성관계 시 상대 여성 안에 자신을 성 불능으로 만드는 어머니의 이미지가 끼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것을 뿌리치려고 하며, 정서적으로 상대 여성을 배제하려고 하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변한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AV 여배우들이 자라온 삶의 과정을 보면 사회의 어두운 면을 알 수 있습니다. AV 여배우 중에는 중산층 가정 출신이나 음악을 하거나 명문대 출신인 이른바 지식층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AV 여배우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며, 양녀로 들어간 집에서는 양부에게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기도 합니다. AV 여배우 42명의 인터뷰를 담은 나가사와 미쓰오가 쓴 《AV 여배우》를 보면 부모가 이혼을 하거나, 부모가 자식에게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행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하면 자기평가가 낮아져 매춘부와 같은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학자 해리 할로가 《사랑의 발견》에서 '그 하나의 관계, 최초의 관계는 다른 모든 관계들을 휩쓸어 침수시켜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중요한 관계이다. 최초의 애착이든, 상호 작용 관계든, 사회에 대한 연결점이든, 뭐라고 부르던 간에 이 최초의 관계가 그토록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머니보다는 아이 쪽에 더욱 절실한 문제이다'라고 지적하듯이 AV 여배우들이 어렸을때 받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경험은 인생에 있어서 치명적으로 작용합니다.

"난 그저 따뜻한 온기를 원했을 뿐" - A양 

해리 할로가 《사랑의 발견》에서 '어떤 끔찍한 상상도 이 살아 있는 원숭이 어미보다 더 사악한 대리모를 창조해 내지 못할 것이다. 어떤 형태의 사랑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어미 원숭이들은 제 새끼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이러한 감정의 결핍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하듯이, 이러한 불행은 되풀이됩니다. 그리고 이 불행이 AV 여배우를 낳는데 큰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AV산업을 지탱합니다. 또한 AV산업이 요구하는 비디오의 장르는 그러한 트라우마를 해결하기는 커녕,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추세에도 그에 역행하는 회사 또한 있습니다. 여성인 가와무라 미호가 대표로 있는 무빅스(MOVIX)가 그 사례인데, 무빅스의 팸플릿을 보면 남성과 성행위하는 장면은 하나도 없으며, 아름다운 여성의 나체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세미 누드입니다. 무빅스는 상품으로서의 성인 비디오가 아닌 작품으로서의 성인 비디오를 만드는 것을 추구하는데, 좀 더 아름다운 영상, 노골적인 성행위 장면이 없는 성인 비디오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꽃가게 앞에 앉아 꽃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의 목덜미를 찍는 식의 에로스를 추구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회사는 현재 폐업했지만, 성인 비디오의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일본AV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습니다. 일본AV를 편집한 영상이 june과 fimm의 모바일로 서비스되고 있고, 스카이라이프의 미드나잇 채널은 일본의 JAM TV와 전략적 제휴에 들어갔습니다. SOD는 한국, 대만 등의 해외 진출을 시작했고, 한국 현지법인을 설립한 곳도 있습니다. 미드나잇 채널의 이강복 국장의 말처럼, 일본 AV가 우리의 현실이 됐습니다. 언제 어느곳이나 포르노는 존재합니다. 분명한 것은 음란물에 대해 무언가를 변화하고 싶다면, 먼저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5조원의 육체산업》은 쉽게 접할 수 있는 개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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