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만들기 - 모더니즘의 성공과 20세기 미술시장의 해부, 개정판
마이클 C. 피츠제랄드 지음, 이혜원 옮김 / 다빈치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화가의 이름, 피카소는 그야말로 20세기의 대표적 서양 화가이자 조각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피카소의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실력이 곧 세계적인 유명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피카소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위해선 단순한 예술가로서의 능력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저자인 피츠제럴드가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이 바로 그 차이점입니다. 피카소를 단순히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가 아니라 세계적인 화가로 만들어준 사람들, 피카소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들. 바로 화상들입니다.

앙드레 르벨은 1903년에 '곰의 가죽'이라는 그룹을 만들어서 미술품 수집이라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르벨은 미술작품을 투자, 투기의 대상으로 생각했으며 당시 신인 작가들이였던 아방가르드 작가들, 특히 피카소의 작품을 수집했습니다. 이 그룹은 10년이 지나면 무조건 팔겠다는 생각으로 수집을 시작했고, 10년 후 '곰의 가죽' 경매는 엄청난 이익을 낳았습니다. 앙드레 르벨이 설립한 미술 작품 투자 조합 '곰의 가죽'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을 지원함으로써 그들의 작품에 대한 시장의 수요와 작가 개인의 명성을 쌓는 데 기여했지만, 결과적으로 경매 이후의 미술작품의 가격을 자신들의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올려놓게 됩니다. 미술품 수집이라는 분야를 정립한 '곰의 가죽'의 경매는 문화적인 의미는 물론 정치적인 의미까지도 부여했으며, 사람들은 경매에서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작품이 비싼 값에 팔린 것이 곧 그들의 작품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익이 남을 가능성이 없는 전시를 열려고 하지 않는 화상들에게는 '상업성이 곧 작품성'인 것이다. - p.36

주류 미술의 미적, 경제적 합류가 이루어지면서 화가들의 그림을 구입해주는 화상의 존재는 무엇보다 중요해졌습니다. 피카소는 작가의 명성이 만들어지는 이면에는 평단의 인정과 상업적인 성공이라는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처럼 사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피카소의 돈에 대한 욕망은, 작품의 예술적인 가치와 상업적인 가치의 조화를 훌륭하게 양립시켰습니다. 팔기 위해서 그린다고 공공연히 말하던 피카소는 미술품을 거래하는 화상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으며 성공을 거머쥐었고, 화상들은 작가들의 작품을 공급함으로써 미술 시장을 특정 화가 위주로 개편했습니다.

작가와 화상의 관계만큼은 아니지만, 작가에게는 평론가들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화상이 작가를 키우기 위해 평론가들과 협력하는 것은 흔한 일이였고, 피카소 또한 이를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피카소는 가난했던 무명 시절부터 평단의 인정과 상업적인 성공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했고, 호의적인 전시평을 써준 평론가들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한 점씩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대중은 권위있는 평론가들의 평론을 신뢰하며, 이러한 신뢰는 곧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평론가들은 단순히 피카소의 작품을 홍보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피카소의 작가 생활은 물론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이였던 초현실주의의 발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브라크가 "이 그림을 쳐다보고 있으면 밧줄을 삼키거나 등유를 마시라고 강요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라고 말했을 정도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작품인데, 브르통의 찬사 덕분에 상당히 비중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 p.245

성공한 미술계의 거장, 피카소를 만들어낸 마지막 주인공은 미술관이였습니다. 1930년대에 여러 미술관에서 열린 일련의 피카소전은 여러 면에서 피카소의 전속 화상이였던 로젠버그와 피카소가 10여 년 전부터 추진해 온 '피카소 홍보 프로그램'의 결정판이었습니다. 전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이어지는 대규모의 피카소전은 대중들에게 현대의 미술 거장, 피카소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켜줬습니다. 이런 전시전은 사진 작가 브라사이가 표현했던 대로 일종의 신격화였습니다. 그런 이미지야말로 작가에게, 그리고 화상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였습니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유독 화려했던 피카소의 성공은 이러한 미술 시장의 변화, 발전의 흐름을 완벽하게 주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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