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선
브라이언 다이센 빅토리아 지음, 정혁현 옮김 / 인간사랑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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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 중 우리는 기독교와 불교를 사랑의 종교, 자비의 종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사랑의 종교와 자비의 종교는 사랑과 자비만을 낳지 않았습니다. 종교는 폭력도 낳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종교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폭력의 역사가 씌여졌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일본 불교 소토선의 승려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는 종교와 폭력의 역사 가운데 최근의 역사,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와 종교가 어떻게 결탁했는지, 사랑과 자비의 논리가 어떻게 폭력을 정당화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불교는 6세기 중반 한국에서 전래된 이래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불교는 도쿠가와 시대에 그 세력이 절정에 달했으며, 사실상 국가 종교 역할을 수행합니다. 일본정부는 기독교를 축출하기 위해 불교 촉진책을 펼쳤고, 사찰의 구조를 피라미드식 형태로 만들어 중앙 사찰에서 모든 종단을 통제하는 체제를 확립합니다. 불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승려들은 정부의 충직한 부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본불교의 특징은 사실 불교의 전래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한국의 호국불교는 신성 왕권에 강력히 집중된 국가를 건설하는 원인으로 기능했던 정치,종교적 이데올로기로서 유용했습니다. 일본에서 나타나는 불교의 국가에 대한 복속은 한국 불교의 모방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1868년 천황에게 권력이 넘어가자 새 정부는 칙령을 공표해 불교 탄압책을 폈습니다. 이는 불교가 한국,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적인 권력을 불교에서 천황으로 집중시키기 위함이였습니다. 칙령을 통해 전국의 신사에서 거의 대부분의 불교 승려들을 몰아냈습니다. 정부의 탄압에 대해 불교계는 당시 자금이 부족하던 정부에 자금을 지원해 회유책을 폈고, 반기독교 운동과 같은 민족주의에 공조함으로서 생존을 모색합니다. 메이지 정부는 명목상 종교의 자유를 부여했을 뿐, 어떤 종교의 추종자라도 민족적 도덕성과 애국주의에 반드시 맹세하게 했습니다. 일본의 종교 신도는 종교학자의 표현대로 본질적으로 민족주의가 새롭게 날조한 종교였으며, 불교는 이러한 신도에 편입됩니다.

국가 신도는 신사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규제, 천황의 사제 역할, 국가신도의 의식 창출과 후원, 일본과 해외 식민지의 신사 건립, 취학 아동들에 대한 신도 신화에 입각한 교육과 그에 따르는 강제적인 신도 의식 참여, 그리고 타종교집단의 확립된 신도 신화의 일부 양상들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에 근거한 그들에 대한 박해를 포괄하는 체제적 현상이었다. - p.44 

일본이 군국주의 국가로 변모하고 전쟁을 일으키면서 불교계에선 신불교 운동이 전개됩니다. 이 운동은 일본은 세계 유일의 참된 불교 국가이며 동양의 몰락에 대한 책임이 일본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 불교가 아시아의 모든 불교 중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일본의 불자들은 중국과 한국의 불자들을 깨어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논리를 폄으로서 전쟁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합니다. 이런 변화 덕분에 일본 불교는 견원지간이였던 기독교와 화해합니다. 일본 불교와 기독교는 힘을 합쳐 전쟁을 야기한 애국주의를 찬양했고, 죽음과 파괴를 미화시킵니다. 러일전쟁 당시 지휘관들은 종교의 신앙과 전장에서의 용맹성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종교는 칼보다, 총알보다 효과적인 학살무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해 주류 종교계는 모두 애국적인 충성을 바쳤지만, 사람들의 생명을 희생하는 제국주의적인 정책을 펴는 정부에 반대하는 소수의 승려도 있었습니다. 조동선종의 승려 우치야마 구도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며 천황을 암살하려 했고, 불교부흥청년연맹과 같은 양심적인 종교인들의 조직이 반전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소수에 불과했고, 정부는 이런 저항을 효과적으로 차단했습니다. 결국 청일전쟁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주류 종교계는 이데올로기적인 지지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전쟁에 관여합니다. 당시 종교계의 입장은 D.T.스즈키가 말한 짧은 대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종교는 무엇보다 국가의 존속을 추구해야 한다.'

조동선종의 총무원장이자 소지사의 주지였던 세키젠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평화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이상이다. 평화는 인간 최고의 이상이다. 일본은 평화를 사랑한다. 우리는 평화와 근본적인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우리가 속해 있는 국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만일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국가를 잊는다면 진정한 평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조국에 대한 의무를 잊어버린다면 우리가 인류에 대한 사랑을 주장하는 방식에 관계없이 진정한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전쟁에 참여하기는 해도 언제나 일본의 전쟁은 평화의 전쟁이다." - p.125 

전쟁이 끝난 직후에도 종교계는 전쟁에 종교가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불교계가 전쟁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것은 전쟁이 끝나고도 시간이 흐른 1987년에 와서야 공식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군국주의에 사용되었던 종교의 이데올로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상급자에 대한 규율과 복종 그리고 충성이라는 전쟁 이데올로기는 고스란히 기업의 문화로 변모해 전후 산업계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대량학살을 벌일 수 있는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학교를 통해, 기업을 통해 전파되고 유지되며 우리의 피에 흐르고 있습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인류는 바로 이 순간에도 종교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엔 성스럽거나 거룩한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유명한 저작《만들어진 신》에서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오히려 윤리 또는 철학 체계로 볼 수 있고 그래서 내가 분노를 표현할 주 공격대상이 아니다' 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도킨스가 보기에 불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선 인류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낮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가 말하듯이, 그런 불교마저도 광란의 역사에 얼마든지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교가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원인 중 하나로 일본에서는 승가가 독립성을 유지하는데 불가능했기 때문에 군사정부들이 국가적인 필요에 따라 종교적 수행을 규제하고 종속시켰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폭력의 역사를 비춤으로서 군국주의와 민족주의, 애국심과 같은 전쟁의 이데올로기는 불교의 자비와 비폭력에 관한 가르침에 대한 배신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불자들에게 교리들을 윤리적 결과를 통해 사고하며, 부처의 본래 가르침에 의거해 검토할 것을 촉구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불교가 전파된 이래 단 한번도 본모습 그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석가모니 자신은 국가의 이상적인 형태로 공화제를 찬양했지만, 불교는 불교가 전파된 나라에서 공화제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저자는 불교가 그 초기의 가르침에 충실한 채로 남아 있었다면 불교는 그것을 받아들인 나라들 속에서 번창하기는 커녕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불교의 모든 윤리적 행위의 바탕에는 보편적 사랑과 자비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의 근본적인 가르침대로라면 전쟁이라는 인간의 대량살상 행위에 참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의 이름을 외치며 총을 잡고, 언제든지 적이라고 설정된 대상을 향해 살인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불교가 진정한 자비의 종교, 평화의 종교가 되고자 한다면, 이런 모순속에 해답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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